어떤 말은 끝까지 듣기도 전에 마음이 닫히고,
어떤 말은 별것 아닌데도 오래 남습니다.
그 차이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담아낸 그릇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법원 판결로 의무 교육을 수강해야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이런 교육이 그렇듯이, 강의실에는 말없이 가라앉은 공기와
쉽게 풀리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죠.
쉬는 시간,
뒷자리에 앉아 계시던 70대 후반의 한 수강생이 조심스럽게 다가오셨습니다.
굽은 등, 낡은 옷차림. 그리고 수줍은 목소리.
“강사님, 커피 좋아하세요?”
좋아한다고 답하자
수강생은 가방에서 미니 카누 커피 하나를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일회용품 사용이 제한된 건물이라
어디서 종이컵을 구하실까, 잠시 마음이 쓰였습니다.
잠시 후,
수강생이 내민 컵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시선을 붙든 것은
커피보다 컵의 상태였습니다.
누가 봐도 새것은 아닌,
구겨지고 얼룩진 재활용 종이컵이었으니까요.
위생에 대한 망설임과 그분의 마음 사이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그래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커피를 교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그날 그 커피를 마시지는 못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같은 커피가 정갈한 머그잔에 담겨 있었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았을까.
커피의 맛은 같았을지 몰라도,
그것을 담아낸 그릇이 제 마음을 먼저 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흔히
‘무슨 말을 할까’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소통에서 더 오래 남는 것은
말의 내용보다 그것을 둘러싼 비언어입니다.
말이 커피라면,
표정과 말투, 몸짓과 태도는 그 커피를 담는 그릇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투박한 그릇에 담기면 쉽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평범한 말이라도
정갈한 그릇에 담기면,
상대는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을 먼저 느낍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내 진심은 그게 아닌데.”
하지만 그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내민 그릇은,
상대가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준비되어 있었는지.
오늘 당신이 건넨 말은 어떤 그릇에 담겨 있었을까요.
혹시 아직 닦이지 않은 채,
누군가의 앞에 놓여 있지는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