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철 안에서 어떤 승객들의 말다툼을 들었습니다.
무슨 사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고성을 주고받으며
“나잇값 좀 해라”, “철 좀 들어라”라는 말을 서로에게 던지고 있었습니다.
왜 다툼의 끝에서
이 두 말을 꺼내 들게 되는 걸까요.
사전을 찾아보면 철은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 힘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내면에서 자라고,
필요한 순간 나를 지탱해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상태를 ‘성숙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고 해서
그 힘이 저절로 함께 자라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분명 어른의 나이를 살고 있음에도
상황을 가늠하지 못하고
감정에 먼저 반응하며
쉽게 말을 던지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말합니다.
“나잇값 좀 하세요.”
나이라는 것은 참 공평합니다.
1년이 지나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더하기 1이 됩니다.
다시 1년이 지나면 또 더하기 1입니다.
이 규칙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숫자는
내가 이 세상에 머문 시간을
겉으로 보여주는 표식입니다.
그렇다면 속에 있는 나는 어떻습니까.
속에 있는 나는
반드시 더하기 1을 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열일곱에서 멈춘 채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스물한 살 언저리에서
마음의 시간을 멈추어 두기도 합니다.
겉의 나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데,
속의 나는 아직 열일곱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열일곱의 마음은
상처에 예민하고,
감정이 앞서며,
말보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곤 합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급발진을 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입을 모읍니다.
“철이 없다”라고 말입니다.
철이 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개 말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생각 없이 던진 말,
상대의 마음을 가늠하지 못한 표현,
책임질 수 없는 말을 쉽게 내뱉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내면의 시간이 고스란히 읽힙니다.
말은 마음의 출입구이기 때문입니다.
철은 갑자기 ‘드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드는 것’ 인지도 모릅니다.
겉으로 지나온 세월,
그 안에서 겪은 실패와 후회,
생각의 깎임과 통찰의 흔적들이
조금씩
속에 있는 나에게까지
물들어 가야 합니다.
겉의 시간이
속까지 진하게 스며들 때
우리는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이제 질문을 남깁니다.
당신은 지금 몇 살의 마음으로 말하고 있습니까.
겉의 나이만큼
속의 시간은 진하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