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골목에서 익어가는 나날들

밥상 위에 담긴 일상의 축제

by 온아

'한국에서의 삶'에 관한 기록

Mission. 한국의 사계절과 다양한 환경 속에서 느끼는 생활패턴, 그리고 내가 사는 곳은?


시장 골목은 늘 분주하지만, 그래서 더 따뜻하다. 계절마다 바뀌는 냄새와 소리 속에서, 우리의 하루도 조금씩 익어간다


밥상 위에 담긴 일상의 축제


내가 사는 곳은 수원의 한 작은 시장 골목이다. 아침 출근길엔 갓 구워 나온 빵의 유혹에 홀랑 넘어가고 퇴근길엔 할인 반찬과 떨이 상품에 충동구매도 종종 하게 된다.


주말, 한창 붐비는 시간엔 사람들이 오가는 발걸음 소리와 생동감 넘치는 상인들의 외침이 뒤엉켜 귀가 바빠진다. 그럴 때면 창가에 앉아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소소한 재미도 본다.


날이 저물며 하나 둘 상인들은 좌판을 정리하고 어느새 밤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작은 불빛들만 조용히 남는다. 그즈음 우리 집도 잘 준비에 들어간다. 시장 골목에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의 리듬이 되는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남편과 단둘이 살던 시기엔 시장이 바로 집 앞에 있다는 사실이 매일의 작은 축제였다.

“오늘은 뭘 해 먹을까?”

퇴근길 남편과의 통화에서 이 질문은 단골손님이었다. 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흔들며 시장에 들어서면 계절마다 달라지는 냄새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한겨울엔 코끝이 얼얼할 만큼 시원한 생선 냄새와 갓 튀겨 나온 어묵의 구수함이 골목을 채웠고, 봄이면 각종 나물들이 쌓인 채소 가판대에서 푸릇한 향이 피어났다. 여름엔 아삭한 참외 냄새가 옷에 묻을 것 같았고, 가을엔 옥수수 삶는 냄새, 또다시 겨울엔 호떡과 붕어빵 냄새가 시장 바깥까지 번져나가 온 동네를 감싸곤 했다.


하루 24시간 중 나와 남편이 밥을 먹는 시간은 고작 두어 시간.

그 짧은 시간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점심은 각자 회사에서 대충 때웠지만, 저녁만큼은 우리 둘만의 축제였다.

종종 식탁 위엔 시장에서 충동적으로 사 온 것들이 더해졌다. 달큼한 군고구마, 뜨끈한 떡볶이, 미처 저녁 식사 준비가 귀찮았던 날 들고 온 잔치국수 한 봉지.

두 사람이 작은 주방에 나란히 서서 음식을 준비하고,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며 웃던 그 시간이 내게는 하루 중 가장 충만한 순간이었다.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의 밥상은 자연스럽게 한식을 중심으로 풍성해졌다.

겨울이면 시댁에서 보내온 김장김치에 푹 삶은 수육을 곁들였고, 봄이 오면 새벽부터 난전에 나온 냉이로 된장국을 끓였다. 여름엔 살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 국수나 도토리묵밥이, 가을이면 시장 통 횟집에서 떠온 전어회가 식탁을 채웠다.

신기하게도 계절이 무르익을수록 떠오르는 음식이 거의 같았는데, 아마도 우리 안에 깊숙이 새겨진 한국인의 DNA 때문 아닐까.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이 작은 축제가 조금 달라졌다. 예전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설렜다면, 이제는 아이와 함께 시장을 거닐며 사소한 것에 눈길이 머문다.

말문이 트이면서 아이는 시장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인사를 하고 아는 척을 한다. 나보다 먼저 시식대에 다가가는 작은 손을 보며 웃기도 하고 호기심에 가득 차 두 눈을 반짝이는 아이를 보며 아, 내가 이곳에서 여전히 행복하구나 깨닫는다.


이 작은 시장은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하다.

해가 떠오르기 전부터 부지런히 물건을 나르는 상인들, 밤늦게까지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들. 이곳은 언제나 분주하고, 그래서 늘 따뜻하다. 이 골목에선 계절이 흐르는 소리가 더 또렷이 들리고, 그 흐름 속에 내가 있고, 우리 가족이 있다.


“오늘은 뭘 먹을까?

라는 질문에 남편과 아이가 즐겁게 웃으며 답하는 삶이 좋다. 시장을 채우는 소리와 냄새 속에서, 우리의 하루는 오늘도 여전히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당신이 꿈꾸는 보통의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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