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사이 #001
임신 전, 한 권의 책을 읽고 다짐한 것이 있었다.
아이와 미술로 놀아주겠다는 것.
잘 가르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미술이라는 매개로 아이와 마주 앉는 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때 읽은 책은 [미술로 키워라]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손을 쓰는 시간만큼은 자주 내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고 40일쯤, 손싸개를 완전히 벗겼다.
조금 이르다는 말도 들었지만 손을 쓰지 못하게 막는 일이 나에게는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쓰게 하려는 욕심보다, 쓰고 싶어 하는 순간을 막고 싶지 않았다.
영유아기에는 물, 쌀과 콩, 밀가루 반죽 같은 것들로 시작했다. 흘려도 되고, 쏟아도 되고, 뭉개져도 괜찮은 것들.
특별한 교구는 아니었다.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만들게 하기보다 손이 어디까지 뻗는지, 만지다 말고 고개를 드는 순간은 언제인지, 그 짧은 반응들을 오래 보고 싶었다.
책에서 말하는 이론대로 도입, 전개, 몰입과 승화는 매번 지킬 수도, 지켜지지도 않았다.
아이의 컨디션이 맞지 않는 날도 있었고, 내가 지쳐 준비하지 못한 날도 많았다. 어떤 날은 시작만 하다 끝났고, 어떤 날은 몰입 없이 흐지부지 마무리되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은 DIY 제품의 도움을 받았다. 완성도가 높아서라기보다 서로 덜 지치고, 시간을 조금 더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미술놀이보다는 같이 앉아 있는 시간이 끊기지 않기를 선택한 날들이었다.
지금까지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왔다.
촉감 위주의 놀이에서 시작해 자르고 붙이고, 색을 고르고, 이제는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만드는 단계까지. 미술의 형태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아이의 손이 자유롭길 바랐던 마음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는 사이]는 미술놀이 방법을 소개하는 기록이 아니다. 아이를 미술로 키워보니 어떠했는지를 정리하는 글도 아니다.
예상컨데, 아이와 나 사이에 실제로 흘러간 시간을 남기는 관계기록이 되지 않을까.
잘 크는지보다,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아이와 계속 마주 앉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려진 것들을, 찬찬히 기록해보려 한다.
오늘도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한 '사이'의 시간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