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흙, 똥이 되지 않도록

그리는 사이 #007

by 온아

아이가 앉아서 손으로 조몰락할 수 있을 때부터 컬러 클레이 놀이는 익숙했지만, 찰흙은 처음이었다.

아이클레이나 플레이도에 비하면 더 단단하고, 동시에 질퍽하다. 손에 묻고, 마르면 흙가루가 부서진다. 색도 아이들이 흔히 말하는 ‘똥색’에 가깝다. 그래서 찰흙은 무엇을 만들었는지보다, 그 물성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기 위해 심리미술에서도 종종 쓰인다.


나는 아이가 이걸로 어떤 ‘작품’을 만들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으웩, 더러워.” 하며 밀어내거나,
“똥이다 똥~” 하며 장난으로 퇴행하는 쪽으로만 흐르지 않기를 바랐다.


낯선 재료 앞에서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게 더 궁금했다.


네모 반듯한 찰흙을 꺼내 반으로 갈랐다. 하나는 아이에게 건네고, 하나는 내 손에 들었다. 모서리를 뭉개고 손바닥으로 눌러 어그러뜨리며 말했다.


“이것도 클레이야. 근데 이건 진짜 흙으로 만든 거야. 찰흙이라고도 하고 점토라고도 해.”​


아이에게 흙냄새를 맡게 하고, 손가락으로 꾹 눌러보게 했다.
첫 반응은 의외로 조용했다. 한참을 살피고, 눌러보고, 뜯어보고, 다시 붙였다.


나는 그 시간을 건드리지 않았다.
처음 만나는 재료 앞에서는 아이도 스스로 ‘안전’을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

형태라 부르기엔 아직 불분명한 덩어리였지만, 아이는 분명히 말했다.


“자동차야.”


아이가 만들고자 하는 형태를 어떻게 도울지 잠깐 고민했다.
언제 돕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가.
내 나름의 기준은 있었다.


안전은 바로 잡고, 요청은 받아주고, 시도는 기다린다.


아직 아이의 요청은 없었기에 조금 더 기다렸다.
아이의 손이 느려지고, 시선이 다른 데로 흩어지기 시작할 즈음, 나는 ‘완성’이 아니라 ‘가능’만 만들어주기로 했다.


“엄마가 도와줄까?”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바퀴 네 개를 만들었다. 두 개는 아이가 만든 덩어리 옆에 붙였고, 두 개는 아이가 붙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동차 같다’는 느낌만 겨우 생기도록.


그렇게 형태가 보이자, 아이는 만족한 듯 다시 그것을 뭉개려 했다. 플레이도우를 갖고 놀던 방식대로, 만들었다가 부수고, 다시 만들고, 또 부수는 흐름으로 돌아가려는 듯했다.


나는 “안 돼”라고 막는 대신,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열었다.


“이 자동차에 색칠해 줄까? 그러면 더 멋있어질 텐데. 엄마가 물감 줄게.”
“좋아. 경찰차로 칠할래.”


팔레트에 물감을 짜 주었다.

아이는 파랑과 빨강을 찍어 바르더니 말했다.


“경찰차야.”


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금방 결심하듯 덧붙였다.


“근데… 다 파랑으로 할래.”


아이는 흙색이 보이지 않도록 정말 꼼꼼히 파랑을 덮어갔다.

붓이 흔들려도, 색이 번져도, 바퀴가 눌려 찌그러져도 멈추지 않았다.


아이에게 중요한 건 '자동차의 완성도'가 아니라, 이 낯선 재료를 자기 쪽으로 길들이는 방법과 시간이었다.

더러워 보이고, 똥 같아 보이는 것을, 자기가 좋아하는 파랑으로 덮어 ‘내 것’으로 만드는 일.


마지막에 나는 늘 하던 질문을 했다.

“이 자동차 이름은 뭐야?”

아이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파란 경찰차.”


문시온 33개월_ 파란 경찰차@2025

이 날 만큼은 아이에게 고마웠다.

찰흙을 밀어내지 않았고, 장난으로만 흘리지 않았고, 끝까지 자기 생각으로 붙잡아두었다.

그 사이에서 내가 한 일은, 더 잘 만들게 하는 게 아니었다. 필요할 때 손을 조금 빌려주고, 집중할 수 있도록 내 자리를 비워내는 것이었다.




오늘도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한 ‘사이’의 시간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