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사이 #006
재료에 익숙해지는 동안, 나는 늘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았다.
형태를 아직 그리지 못하는 아이에게 “알아서 터득하겠지”라고 기대하는 건, 내게는 방임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아이 그림에 손대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의 그림이
어른의 결과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른의 손이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종종 아이와 함께 그린다.
함께 그릴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동의다.
“엄마도 같이 그려도 돼?”
아이의 동의를 받은 후 질문을 이어간다.
“파란색을 골랐구나. 엄마는 무슨 색으로 할까?”
“이건 뭐야? 엄마는 뭘 그리면 좋겠어?”
“여기에 그려도 될까? 이 정도면 마음에 들어?”
나는 ‘잘’ 그리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아이 눈높이에 맞춰 알아볼 수만 있을 정도의 ‘형태’로 옮겨본다.
아이의 말이 손끝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렇게 함께 그리는 동안, 아이는 자연스럽게 몇 가지를 머릿속에 담는다.
붓을 쥐는 손모양, 선이 생기는 순서, 색이 덮이는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질문에 답하는 사이, 그림의 주도권이 자기에게 있다는 감각을 익힌다.
물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걱정도 생긴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그려줘.”
그 한마디에 잠깐 멈칫했다.
내가 너무 개입했나. 아이의 손을 빼앗은 건 아닐까. 머릿속에서 불안이 움튼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같이 그릴 거지? 그럼 도와줄게.”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크레파스 하나를 꺼내 들고 끄적인다.
그러곤 내가 그린 그림을 보더니
“아니~ 더 크게 그려달라고.”
“아니~ 잎은 여기에~.”
“나는 풀을 그리는 거야. 봐봐. 멋있지?”
“이제 내가 혼자 할게.”
“이건 엄마가 붙여줘.”
아이는 부탁을 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다.
그림은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필요한 것을 요청할 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함께 그린 그림을 애정한다.
나는 마지막에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이 그림, 제목은 뭐야?”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한다.
“무지개꽃밭이야. 내가 잘 자라라고, 엄마 꽃에 물을 준 거야.”
내가 그린 건 꽃의 모양이 아니라, 아이가 말로 세상을 그리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한 ‘사이’의 시간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