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마다 떠오르는 도시, 리스본

낯선 길 위에서 만난 그녀가 가르쳐준 도시를 사랑하는 법

by 온빛

백팩 하나 달랑 메고 리스본에 도착한 건, 계획한 여행이 아니었다.

사실 계획이라고 할 것조차 없었다.

마드리드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친구가 바쁜 며칠 동안 어디라도 가볼까 하다가…

무작정 떠난 도시였다.


짐은 모두 마드리드 친구네에 두고, 정말 몸만 가벼워져서 갔다.

지금 생각하면 백팩이란 말보다 등에 달라붙은 작은 짐짝 같은 표현이 더 어울린다.

왜냐면, 리스본의 거리는 거의 전부가 언덕이었고, 돌길이었고, 그 위를 오르고 또 오르고 또 오르는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내 무릎과 허벅지는 그곳에서 새로운 차원의 경지에 도달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오버부킹되어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리며 부랴부랴 에어비앤비를 잡고,

짐과 함께 또 언덕을 오르고, 주황빛 지붕들이 촘촘한 골목길을 헤맸다.

엘리베이터 따위 없는 오래된 건물의 계단을,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야 했지만,

그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 도시가 은근히 마음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한 포르투갈 여자 친구를 만났다.

햇볕에 반짝이는 곱슬머리와 커다란 웃음을 가진 친구였다.

만나자마자 이 친구는 나를 끌고 골목골목 숨겨진 핫플레이스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내가 혼자였다면 절대 못 찾았을 장소들이었다.


“여긴 천장 장식이 예쁘니까 고개를 들어서 보고, 저긴 창문 프레임 색깔이 예술이니까 꼭 사진 찍고!”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어디론가 계속 데려갔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따라다니며 “와… 와…” 감탄사를 남발했다.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니느라, 물 한 잔도 못 마시고 자리를 뜨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앉아서 음료도 안 마시고 그냥 나온다고?’ 싶었지만,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 없어! 여긴 포인트만 보면 돼!”

그러면서도 표정은 즐겁기만 했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가게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번역해 주던 친구가 “당근 샐러드”가 있다며 흥미롭다고 주문해 보자고 했다.

그 결과, 식초에 절인 당근 한 접시가 나왔다.

둘이서 그걸 보고 배를 잡고 웃었다.

“나도 이건 몰랐어!”

이렇게 말하며, 우리는 새콤한 당근을 하나씩 집어먹으며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를 따라 숨겨진 카페, 바, 뷰포인트들을 정신없이 훑고 다녔다.

그러다 친구가 갑자기 노을 스팟을 보여주겠다며 더 가파른 언덕을 가리켰다.

‘설마 저기를…?’ 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로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 언덕 꼭대기에는 이미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노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숨은 명소라면서?’ 속으로 중얼거리며 숨을 고르느라 한동안 말도 못 했다.)


그곳에서 본 풍경은, 주황빛 지붕과 푸르른 바다, 강렬한 햇빛이 서서히 사라지며 드러낸 드넓은 리스본.

유럽도, 미국도, 아시아도 아닌, 오직 리스본만의 색깔로 반짝이며 '내가 바로 노을 맛집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도시였다.


그때 나는 왜 이렇게 처음 본 사람에게 열정적으로 도시를 소개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는 곳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하고 환하게 웃었다.

순간, 그 웃음에 나도 같이 환해졌다.


나는 종종 여행을 ‘장소’가 아니라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여름의 리스본은, 그 친구 덕분에 나에게는 강렬하고, 눈부시고, 푸르르고, 드넓고, 따뜻한 도시로 남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름이 되면, 나는 종종 그녀가 가르쳐준 대로 내가 사는 도시의 숨겨진 골목을 걸어보고,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면 그날의 기분을 떠올린다.

어디선가 그녀도 여전히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며, 더 행복해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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