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라는 가족, 그리고 꼬순내의 힘
복희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갑자기 시골 마당에 뚝 떨어진 유기견?
나보다 털이 안 빠지는 악성 곱슬의 푸들?
아니면 그 작은 두 눈 안에는 나만 담겨 있는 듯한, 그런 존재?
우리 집 복희는 그 모든 것의 합이다.
복희를 만나기 전, 우리 가족에겐 복돌이가 있었다.
백구였던 복돌이는 나의 10대와 20대를 함께 채워준 존재였다.
18년을 함께하고 떠났을 때, 우리 가족은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처음 알았다.
엄마는 하루 한 끼 라면으로 버텼고, 나는 영원한 이별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린 다짐했다.
“다시는 강아지 안 키운다.”
하지만 6개월쯤 지나고 나니 시골집 마당에 어느 날 복희가 서 있었다.
아니, 석고대죄를 하며 문 앞에 붙어 있었다.
“저… 저 좀 데려가 주실래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복돌이의 동생, 복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 만난 날, 복희는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알아온 것처럼 격하게 핥아댔다.
원래 모든 사람에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복희는 우리 가족에게만 유난히 애교가 많고, 낯선 사람에게는 도도하고 시크하다.
요즘 애들 말로 하면 ‘겉바속촉’이다.
벌써 함께한 지도 5년이 되어간다.
추정 나이 6살쯤 되는 복희는 여전히 가족 중에서 운동 신경이 가장 좋다.
하루 종일 공놀이를 하라면, 정말 해낸다.
사료는 3만 원짜리 고급 사료를 먹으면서도 채소만 나오면 반찬 투정을 한다.
그러다가 고기를 섞어주면 고기만 쏙쏙 골라먹는다.
‘고기’라는 단어만 나와도 귀가 번쩍 선다.
혹시 자기 종을 착각하는 게 아닐까?
놀이터에서는 또래의 어린아이들을 보면 친구라도 만난 듯 달려간다.
자기가 강아지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
그러면서 자기랑 똑같이 생긴 강아지를 보면 또 눈을 부라리며 짖는다.
도대체 뭘까요, 이 성격은.
하지만 애교만큼은 정말 대단하다.
무뚝뚝한 경상도 출신 우리 아빠마저 단숨에 제압해 버렸다.
아빠는 복희를 안고 어디든 모시고 다닌다.
밤마다 복희는 누군가의 몸에 엉덩이를 꼭 붙이고 잔다.
그 작고 따뜻한 온기에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다.
강아지는 죽을 때까지 아기다.
늘 보호받아야 하고, 아기 같은 표정으로 사랑을 받는다.
그 덕에 우리는 복희를 2순위로 두지 않는다.
어디를 가든 애견 동반 식당, 카페, 숙소를 찾고, 계획의 중심에 복희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서 어쩌면 티비와 유튜브로 하루를 보낼 뻔한 60대의 엄마도 복희 덕분에 하루에 다섯 번은 꼭 산책을 나가게 된다.
어쩌면 복희는 복돌이가 보내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예전처럼 미숙하게 대하지 않게 해 주려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강아지가 가족이 된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치고 초라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유일한 존재.
안아주면, 내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기분.
이 세상에 이렇게 나만 바라봐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생을 버틸 힘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복희를 안으며 말한다.
“복희야,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인생이 조금 힘들다고 느껴질 때
결국, 나는 또 복희의 털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린다.
“이놈의 마성의 꼬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