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엔 방패, 침대 옆엔 평온, 책장 위엔 약사불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불상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명상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절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직후,
나는 불상을 하나도 아니고, 무려 세 개나 샀다.
이쯤 되면 전생에 뭐라도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 불상은 인터넷 쇼핑 중 만났다.
작고 단단한 부처님이 한 손을 딱 들고 계셨다.
마치 말없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그 순간 확신이 들었다.
“이분은 내 회사 책상 밑에 들어가야 한다.”
왜냐고?
회사라는 곳은
이유도 맥락도 없이 훅 들어오는 요청,
끝없이 자라나는 엑셀 시트,
그리고 “그거 금방 되잖아요?”를 외치는 자들의 무리로 가득한 전장이다.
그럴 때 나는 모니터 밑의 부처님을 슬쩍 쳐다본다.
그리고 조용히 웃는다.
(사실은 마음속으로 “부처님, 좀 막아줘요 진짜…” 하고 읊조린다.)
두 번째 불상은 우연한 산책 중에 만났다.
집 근처 불교용품점 앞을 지나가다,
뭔가에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작은 부처님을 만났다.
그 아래엔 딱 두 글자.
“평온”
“그래. 나 지금 이거 필요해.
오일 세럼도, 허브차도, 숙면 베개도 안 통했어.
이젠 불상이다.”
그래서 그분은
내 침대 옆에 앉게 되셨고,
나는 밤마다 그분께 조용히 말한다.
“부처님, 오늘은 꿈같은 거 안 꾸고 푹 자면 좋겠어요.”
세 번째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났다.
화려한 불상들 사이,
조용히 검은빛 약병을 들고 계신
작은 부처님이 눈에 들어왔다.
약사여래불.
사실 더 예쁘고 멋있는 불상도 많았는데
그날따라, 나는 그 약병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얘는… 지금 아픈 나를 지켜줄 것 같아.
아니, 지켜줬으면 좋겠어.”
그동안 이유 모를 피로, 소화불량, 요통까지
몸도 마음도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던 내게
이 작고 조용한 부처님은
약국보다 더 믿음직해 보였다.
그래서 결국…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엔 서양 인테리어에 불상 있는 거 보면 좀 이상했다.
베이지 톤의 거실, 무심한 분위기,
그리고 꼭 등장하는 금색 불상 하나.
“쟤네는 절도 안 다니면서 왜 불상을 두지?”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장면이 내 무의식 어딘가에 박혔던 모양이다.
그들도 나처럼,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있었던 걸지도.
그리고 나 역시 지금은…
책상 아래에 부처님 한 분,
침대 옆에 한 분,
책장 위에 한 분을 모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만 안 했지 거의 1인 사찰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불상을 연달아 세 개나 들이다 보니
나도 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많이 약해진 걸까?”
근데 가만히 보면,
약해진 게 아니라 변한 거다.
예전엔 신발, 가방, 옷에 끌렸다면
이제는 평온, 치유, 버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나이 들었다기보단
깊어졌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세 개 산 게 덜 민망하니까.)
요즘 내 하루는
– 회사에서 손을 든 부처님을 보며
“오늘도 버텼다”며 숨을 고르고,
– 집에서는 평온한 부처님을 보며
“이불속으로 가자”라고 중얼거리고,
– 약사불을 보며
“내일은 조금 더 괜찮아질 수 있겠지”라고 다짐하면서
조용히 끝이 난다.
불상이 나를 구해주는 건지,
내가 불상에게 기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나 지금 꽤 잘 살고 있다는 거다.
절엔 안 다니지만, 내 마음속에는 꽤 예쁜 사찰 하나쯤 있다는 뜻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