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을 세 개나 산 여자

회사엔 방패, 침대 옆엔 평온, 책장 위엔 약사불

by 온빛

1. 그날, 불상이 나를 불렀다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불상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명상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절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직후,

나는 불상을 하나도 아니고, 무려 세 개나 샀다.

이쯤 되면 전생에 뭐라도 있었던 것 같다.


2. 회사에 방패 하나 들이게 된 사연

첫 번째 불상은 인터넷 쇼핑 중 만났다.

작고 단단한 부처님이 한 손을 딱 들고 계셨다.

마치 말없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그 순간 확신이 들었다.

“이분은 내 회사 책상 밑에 들어가야 한다.”


왜냐고?


회사라는 곳은

이유도 맥락도 없이 훅 들어오는 요청,

끝없이 자라나는 엑셀 시트,

그리고 “그거 금방 되잖아요?”를 외치는 자들의 무리로 가득한 전장이다.


그럴 때 나는 모니터 밑의 부처님을 슬쩍 쳐다본다.

그리고 조용히 웃는다.

(사실은 마음속으로 “부처님, 좀 막아줘요 진짜…” 하고 읊조린다.)


3. 집에선 그냥… 푹 자고 싶었을 뿐인데

두 번째 불상은 우연한 산책 중에 만났다.

집 근처 불교용품점 앞을 지나가다,

뭔가에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작은 부처님을 만났다.


그 아래엔 딱 두 글자.

“평온”


“그래. 나 지금 이거 필요해.

오일 세럼도, 허브차도, 숙면 베개도 안 통했어.

이젠 불상이다.”


그래서 그분은

내 침대 옆에 앉게 되셨고,

나는 밤마다 그분께 조용히 말한다.

“부처님, 오늘은 꿈같은 거 안 꾸고 푹 자면 좋겠어요.”


4. 약병을 든 부처님과의 눈 맞춤

세 번째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났다.

화려한 불상들 사이,

조용히 검은빛 약병을 들고 계신

작은 부처님이 눈에 들어왔다.

약사여래불.


사실 더 예쁘고 멋있는 불상도 많았는데

그날따라, 나는 그 약병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얘는… 지금 아픈 나를 지켜줄 것 같아.

아니, 지켜줬으면 좋겠어.”


그동안 이유 모를 피로, 소화불량, 요통까지

몸도 마음도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던 내게

이 작고 조용한 부처님은

약국보다 더 믿음직해 보였다.

그래서 결국…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5. 서양 인테리어의 불상, 그때는 몰랐지


생각해 보면,

예전엔 서양 인테리어에 불상 있는 거 보면 좀 이상했다.

베이지 톤의 거실, 무심한 분위기,

그리고 꼭 등장하는 금색 불상 하나.


“쟤네는 절도 안 다니면서 왜 불상을 두지?”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장면이 내 무의식 어딘가에 박혔던 모양이다.

그들도 나처럼,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있었던 걸지도.


그리고 나 역시 지금은…

책상 아래에 부처님 한 분,

침대 옆에 한 분,

책장 위에 한 분을 모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만 안 했지 거의 1인 사찰이다.)


6. 내가 약해진 걸까? 아니면…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불상을 연달아 세 개나 들이다 보니

나도 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많이 약해진 걸까?”


근데 가만히 보면,

약해진 게 아니라 변한 거다.


예전엔 신발, 가방, 옷에 끌렸다면

이제는 평온, 치유, 버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나이 들었다기보단

깊어졌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세 개 산 게 덜 민망하니까.)


7. 마무리하며


요즘 내 하루는


– 회사에서 손을 든 부처님을 보며

“오늘도 버텼다”며 숨을 고르고,


– 집에서는 평온한 부처님을 보며

“이불속으로 가자”라고 중얼거리고,


– 약사불을 보며

“내일은 조금 더 괜찮아질 수 있겠지”라고 다짐하면서

조용히 끝이 난다.


불상이 나를 구해주는 건지,

내가 불상에게 기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나 지금 꽤 잘 살고 있다는 거다.

절엔 안 다니지만, 내 마음속에는 꽤 예쁜 사찰 하나쯤 있다는 뜻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