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 소리 들으며 개모차 끄는 삶
산책을 나가면 복희는 열심히 걷다가 슬슬 귀찮아지면,
“나 이제 안아줘”라는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그 눈빛에 매번 진심으로 응답한다.
“아이구~ 우리 아가~”
…그리고 안아준다. 단단히.
엄마의 신념은 이렇다.
“강아지는 평생 아기야.”
하지만 아무리 사랑이라도,
1961년생인 엄마가 6kg이 넘는 강아지를 안고 계속 걷는 것은 무리다.
복희는 엄마의 품에서 안기는 맛을 알아버렸고,
그 덕분에 이제는 걸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아잉~ 안아줘잉” 모드다.
그래서 결국 개모차, 즉 강아지용 유모차를 사기로 결정을 했다.
처음엔 당근마켓에서 5만 원도 안 되는 중고 개모차를 샀다.
가볍고 반으로 접히고, 밑에 짐도 실을 수 있었다.
괜찮았다.
딱, 중고차 수준의 무난함.
그런데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엄마와 함께 벡스코 펫쇼에 간 날이었다.
그날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해운대에 사는 개들은 명품 목줄에,
누가 봐도 “고급이에요”라는 포스를 풍기는 유모차를 타고 의젓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우리 복희는 유기견 출신답게
유모차 안에서 궁둥이를 흔들며 들썩들썩.
기품보단 생동감, 고요함보단 흥이 넘쳤다.
그 순간, 지금까지 잘 타고 다니던 내 개모차가
괜히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이해했다. 왜 엄마들이 아기 유모차를 좋은 걸로 사는지.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복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즐겁기만 했다.
그날 이후 엄마는 슬슬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이거 바퀴 잘 안 굴러가.”
“좀 덜 튼튼하지 않아?”
“복희가 불편해 보여.”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유모차 비교 쇼핑 여정.
이마트 트레이더스, 코스트코, 쿠팡까지 모조리 뒤지고,
주문하고, 반품하고, 다시 주문하고…
완전히 중고차 딜러의 눈빛이었다.
결국, 우리는 30만 원대의 프리미엄 개모차를 샀다.
비싸서 그런지 바퀴는 미끄러지듯 잘 굴렀고,
복희도 편해 보였다. 아니, 자세가 달라졌다.
그리고 나.
그 유모차를 처음 밀었을 때의 기분은 이랬다.
“중고차 타다 벤츠 탄 그 느낌.”
그 유모차를 끌고 복희와 지하철을 타면,
나는 늘 눈치를 본다.
자리가 많은 곳은 피하고, 휠체어석 옆이나
칸과 칸 사이의 애매한 틈새에 조용히 선다.
그러면 어김없이,
어르신 한 분쯤은 복희를 보고, 나를 보고,
말씀하신다.
“애는 안 낳고, 개를 유모차에 태워?
말세다 말세.”
그 말을 들으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죄송하지만 복희는 걷다가 자꾸 안아달라 해서요…”
“엄마가 60대셔서 팔이 아프시고요…”
이렇게 해명이라도 할까 하다가도,
그냥 입을 꾹 다문다.
내가 말한다고 바뀔 건 없으니까.
헬싱키에서 버스를 탈 때
사람들이 유모차와 어린아이, 그리고 개부터 먼저 태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토론토에 살 때도 개들은 지하철을 자연스럽게 탔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냥 하나의 존재, 하나의 시민처럼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도 나아지고 있다.
기차, 비행기, 버스, 지하철 모두 반려동물과 함께 탈 수 있고, 애견 동반 식당과 카페도 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노인과 바다’라는 별명이 있는 부산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 개모차를 끄는 나는, 아직은 혼나는 여자다.
솔직히 생각해 본다.
내가 남자였으면?
혹은 50대 아저씨였으면?
그렇게 쉽게 “말세”라는 말을 들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복희는 내 가족이고, 책임이고, 사랑이다.
걷다가 안아달라 하니까, 유모차에 태운 거다.
그게 그렇게 말세일 일인가?
복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혼나는 건 늘, 나다.
그러니까, 다음에 지하철에서 유모차 탄 강아지를 보면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아이구~ 편하겠네~ 강아지 좋겠다~”
세상은 이 한마디로도 훨씬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