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복 입은 푸들과 멍스테이

절에서 복희와 함께 멍 때린 폭염 속 1박 2일

by 온빛

회사-집-회사.

폭염보다 더 후끈한 일거리.

머릿속이 꽉 막혀버린 어느 날, 나는 이상한 광고 하나를 봤다.


“멍스테이, 강아지와 함께 떠나는 사찰 여행”


…응? 절에, 강아지랑, 같이 간다고?


순간 눈이 번쩍 뜨였고,

바로 예약 버튼을 눌렀다.

복희와 절이라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택시를 기본요금만 내고 도착한 곳은 홍법사.

예전엔 차 타고 지나가다 멀리서 본 거대한 황금 불상이 다였는데,

이렇게 발을 딛게 될 줄은 몰랐다.


도착하자 삼삼오오 강아지를 안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출석을 하고,

사람용과 강아지용 절복을 각각 받았다.


복희에게 절복을 입혀보는 순간,

나는 계속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절복을 입은 푸들.

그 단어만으로도 이미 웃긴데,

복희는 어쩜 그렇게 단정하게도 잘 어울리던지.

왠지 부처님이 보셨다면,

수줍게 미소 지으셨을 것 같았다.





원래는 알찬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폭염주의보로 인해 대부분이 취소됐다.

오전엔 방에 있다가,

해가 조금 기울면 스님과의 대화,

다음 날엔 염주 목걸이 만들기만 남았다.


그렇게 진짜로 ‘멍—’하게 쉬는 멍스테이가 시작된 것이다.


절복을 입고 에어컨을 틀자

복희는 배를 깔고 바닥에 착 달라붙었다.

나도 잠시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에어컨 소리와 복희의 코 고는 소리.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저녁엔 절밥.

반찬은 소박했지만,

기이하게도 너무 맛있었다.

그날의 밥알 하나하나가

마치 내 속을 정화해 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서 주지스님과의 대화 시간.

나는 평소 궁금했던 걸 물었다.


“스님, 혹시 전생을 충실히 살지 않으면… 동물로 태어나는 건가요?”


스님은 “그런 건 아닙니다.”라고 진지하게 말씀하셨고,

그다음부터 엄청 길고도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는데…


… 솔직히 말하면, 기억이 안 난다.

(미안합니다, 스님)


대신 한 가지는 확실히 기억난다.

스님도 강아지를 키우신다는 것.

이름은 까미.

까만 유기견이라 까미.

(이 네이밍 센스, 마음에 들었다)


까미는 이날 우리와 함께하지 않았고,

스님의 숙소에서 에어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날 밤,

복희와 한바탕 놀고 나서,

나는 바닥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멍!”


한 마리가 포문을 열었다.

잠시 정적 후,

“멍멍” “멍멍멍!”

숙소 전체가 강아지들의 멍멍 합창으로 뒤덮였다.


복희는 벌떡 일어나

앞발을 번쩍 들고는

자신의 파트를 당당히 시작했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웃음을 참느라 어깨가 들썩였다.


이건 거의

멍멍 멀티 서라운드 오디오였다.

고요한 절에 울려 퍼지는

강아지 중생들의 혼신의 짖음.


다음 날,

스님께 어젯밤의 ‘합창 공연’ 이야기를 꺼냈다.

스님은 살짝 웃으며 말씀하셨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어서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 멍스테이는 마지막 회차로 진행한 거랍니다.”


아…

복희야,

우리가 마지막 팀이었대.

어쩐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다음 날 아침은 더욱 조용했다.

염주 목걸이를 만들며,

스님은 말했다.


“이렇게 구슬을 하나하나 꿰는 것도 수행입니다.”


작은 구슬을 꿰며,

나는 그 말뜻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행위 자체보다 집중하고 있는 나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멍 때리며 보낸 1박 2일이 끝났다.

햇빛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내 마음은 어딘가 시원했다.


복희는 1박 2일 동안 유난히 많이 웃었다.

여름이라 미용을 해서

원래보다 조금 덜 귀여운 상태였는데,

그날은 미모를 웃음으로 커버했다.


털빨을 이긴 웃음빨.

그건 진짜였다.


복희야,

그날 너는 뭐가 그렇게 좋았던 걸까?

사실, 나도 그래.

나도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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