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숟가락 하나가 남긴 맛의 기억

마드리드에서 시작된 한 컵, 내 부엌까지 이어진 작은 유산

by 온빛

마드리드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여름휴가를 갔다.

친구는 나를 번화한 거리의 작은 매장으로 데려가며 웃었다.

“옛날 유럽 사람들은 아이스크림 대신 요거트를 얼려 먹었대. 그래서 이런 Frozen Yogurt 디저트 문화가 생긴 거지.”


그 말이 끝난 후 내 눈앞에는 연두색 숟가락이 꽂힌 하얀 컵이 있었다.

그 첫 한입은 놀라움이었다. 혀끝에 닿자마자 차가운 산미가 톡 하고 번졌고, 곧 은근한 단맛이 그 산미를 감싸며 부드럽게 사라졌다. 그 위에 얹힌 피스타치오 소스는 꾸덕하고 고소했으며, 아이스크림 위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며 요거트와 맞부딪쳤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건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내 기억에 오래 남을 맛의 시작이었다.


여행은 끝나도 입맛은 남는다.

서울에서 llaollao 매장을 발견했을 때는 괜히 심장이 뛰었다. 손에 컵을 쥐는 순간, 마드리드의 여름이 되살아났다. 부산까지 매장이 확장되면 꼭 가야지, 마음속에 다짐까지 했지만… 그 브랜드는 어느새 한국에서 철수해 있었다.


맛은 선명한데, 그 맛을 파는 곳이 없다는 사실. 아쉬움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그 아쉬움이 얼마나 컸던지, 한때는 “내가 직접 매장을 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프랜차이즈 가맹 비용을 검색창에 열심히 쳐봤지만, 끝내 정확한 정보를 찾지 못했다. 사실 찾았다 해도 내가 당장 매장을 열 수는 없었을 테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자체가 웃긴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얼마나 멀리까지 사람을 데려가는지 보여주는 작은 증거다.


결국 나는 부엌에서 작은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요거트를 얼리고, 과일과 견과류를 얹는 일. 이름만 바꾸면 '요거트 바크'라 부를 평범한 방법이지만, 내겐 그게 마드리드의 한 컵을 되살리는 의식 같았다.


나는 요거트를 평평하게 펴 바르고 그 위에 복숭아 조각을 올린다. 과즙이 얼어붙었다가 입안에서 톡 터질 때, 마드리드의 여름이 되살아난다. 블루베리 몇 알은 작은 폭죽처럼 새콤함을 흩뿌리고, 잘게 간 피스타치오는 고소한 파편으로 그 모든 맛을 이어준다. 그럴 때면 나는, 부엌 냉동실 속에서도 세계 여행을 한다.


가끔은 올리브유 한 줄을 두르고 소금을 살짝 뿌린다. 그러면 요거트는 단순한 간식에서 갑자기 지중해의 한 접시 요리로 바뀐다. 새콤함 뒤에 고소함이 이어지고, 혀끝에서 부서지는 소금 알갱이가 의외의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하나 더, 나만의 비밀이 있다.

나는 집에 물건 쌓아두는 걸 질색한다. 필요 없는 건 미련 없이 버린다. 그런데 내 부엌 찬장에는 아직도 llaollao의 연두색 플라스틱 숟가락이 있다. 언젠가 먹었던 아이스크림과 함께 건네받은 바로 그 숟가락. 버려야지 하다가도 괜히 웃음이 나서 남겨두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삶에서 버리지 못한 몇 안 되는 사소한 기쁨일 것이다.


요거트 아이스크림은 지금도 내 하루에 스며 있다.

나는 가끔 밥 대신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는다. 숟가락으로 퍼내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밥을 먹은 듯 든든하고, 달콤한 위로까지 따라온다. 어떤 날은 블루베리를 얹어 건강식처럼, 어떤 날은 피스타치오 소스를 뿌려 고급 디저트처럼. 아이스크림은 상황에 따라 한 끼가 되고, 작은 축제가 되며, 때로는 삶을 붙드는 위로가 된다.


한 컵의 요거트 아이스크림은 내게 취향을 남겼고, 그 숟가락은 그 취향을 일상 속에 머물게 했다.

맛은 입을 넘어 기억을 흔들고, 기억은 다시 내 삶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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