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를 꿈꾸며 시작된 내 물속 생활기
작년 여름, 갑자기 수영이 배우고 싶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못 하니까. 사실 용기라기보다는 오기였다. 위치가 괜찮은 수영장을 찾아 등록하러 갔는데, 몇 달은 기다려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몇 달 기다리라니, 마치 인기 아이돌 콘서트 티켓 예매에 실패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포기하기 싫었다. 결국 대기를 걸어두었고, 자리가 나서 지난해 12월부터 수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침 수영장 근처에서 회사를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예전부터 수영을 배우고 싶어 했고 나와 시기가 맞아 함께 등록했다. 우리는 주 3회 반으로 시작했는데, 몇 달 전 친구는 매일반으로 옮겼다. 매일반이라니, 수영장에 방을 얻은 수준이다. 나는 여전히 주 3회 반을 고수한다. 꾸준히 하지만, 나답게.
수영복 고르는 일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처음엔 부끄러워 반바지형을 살까 고민하다 결국 무난한 어두운 색 원피스를 골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핑크 하트에 알록달록 색상까지, 수영복이 점점 화려해졌다. 기초반의 검은 수영복들 사이에서 내 수영복은 눈에 띄었는데, 다행히 친구도 비슷한 화려함을 선택해 괜히 든든했다. 어느 날은 반짝이 수영복까지 등장했는데, 물속에서 빛나는 모습이 정말 인어공주 같았다. ‘저건 꼭 사고 말리라’ 다짐했지만, 이미 산 게 많아 장바구니에서 대기 중이다.
겨울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한파가 몰아친 날에도 출석 도장을 찍었다. 털모자와 마스크로 눈만 내놓고 무거운 짐을 들고 전쟁 같은 샤워실 줄에 서야 했다. 드라이기 줄은 또 어찌나 길던지, 눈치껏 얼른 힘차게 머리를 말리고 달리기 계주처럼 다음 사람에게 바톤 터치를 해야 했다.
올해 2월에는 ‘튼튼 머니’라는 정부 정책이 시작됐다. 운동 후 QR 코드를 찍으면 하루에 천 원씩 적립되는 제도였다. 그런데 6월에 예산이 다 소진돼 종료됐다. 나라 예산보다 수영장 사람들의 근성이 더 무서웠던 셈이다. 수영은 성실한 사람들만 다닌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건이었다. (그래도 나는 2만 원을 건졌다.)
여름이 되자 퇴근 후 수영장으로 향하는 길은 가벼워졌다. 더위가 물속에서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머리도 대충 말려도 되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다니는 여유가 좋다. 계절마다 고생 포인트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은근히 재미있다.
나는 운동 신경이 없는 편이다. 처음엔 숨 쉬는 법도 몰라 그 연습만 2주를 했다. 그만큼 물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세계였다. 하지만 8개월 동안 꾸준히 다니면서 깨달았다. 성실은 결국 두려움을 이긴다는 것을. 아직 동작이 완벽하진 않지만,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물은 여전히 낯설지만, 그 위에 작은 다리를 놓아 꾸준히 건너다보니 어느새 가까워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디즈니 인어공주를 좋아했다. 노래방에서 ‘언더 더 씨’를 부르며 인어처럼 물속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상상을 했는데, 이제 와서 조금이나마 실현된 셈이다. 할머니가 되기 전에 인어공주가 물속에서 어떤 느낌인지 조금이나마 느껴봐서 괜시리 뿌듯하달까.
수영하는 나를 보며 꾸준함이 만들어낸 변화를 실감한다. 옆에서 매일반으로 다니는 친구를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난다. 함께 시작했지만 다른 속도로 가는 모습이, 오히려 우정을 더 단단하게 만든 것 같다. 물결 위로 번지는 빛처럼, 내 안에서도 작은 웃음이 일렁인다. 그리고 깨달은 점 - 샤워 대기 줄을 기다리는 인내심이야말로, 모든 수영 기술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