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완무시와 첫 남자친구의 기억
나가사키 여행에서 처음 ‘차완무시’라는 음식을 먹었을 때, 나는 그것이 일본식 계란찜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숟가락 떠 넣는 순간, 낯선 맛이 퍼졌다. 뜨끈한 증기가 올라오며 코끝을 스치는 다시 국물의 향, 부드럽게 흔들리는 표면 아래에서 느껴지는 낯설게 씹히는 버섯과 해산물의 질감…. 내가 알던 계란찜과는 전혀 달랐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때는 몰랐다. 겉은 계란찜처럼 보여도, 차완무시는 몸에 좋은 재료를 담고 계란물을 여러 번 곱게 걸러내야 하며, 다시 국물을 내어 약한 불에 오래 찌는 정성과 과정을 필요로 하는 음식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 일본을 몇 번 더 여행하고,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된 뒤에야 알았다. 차완무시는 단순한 계란찜이 아니었다. 겉은 익숙해 보여도 속에는 깊은 마음과 노력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스무 살 무렵 처음 사귄 남자친구가 생각난다. 그 역시 겉으로는 어설프고 촌스럽게만 보였지만, 속에는 내가 다 알지 못했던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는 친구의 학교 동아리 선배였다. 고등학교 시절 이성 친구 하나 없던 내가, 대학에 와서 처음 꾸미는 법을 배우고 세상에 호기심을 느끼던 그 시절에 만난 사람.
그는 늘 나에게 맞추었다. 내가 고르면 언제나 좋다고 했고, 내가 싫다 하면 절대 하지 않았다. 자신의 선배에게 받은 오토바이도 내가 싫다 하자 시동조차 걸지 않았다. 카페에 있다가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장미꽃을 사서 내게 건네던 순간도 있었다. 가끔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눈치도 보였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의 작은 욕심조차 나를 배려해 감춘 것이었으리라.
우리는 모든 것이 처음인 어설픈 연애를 흉내 냈고, 손을 잡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그 손을 잡던 날, 그의 손바닥은 따뜻했지만 땀으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햇빛이 그의 뺨을 붉게 비추고, 긴장된 눈빛이 안경 너머로 번져오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 순수함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다. 오히려 “재미가 없다”거나 “왜 문자 말투가 그렇냐”며 지적하고 불평했다. 정작 나는 그를 행복하게 해주려 한 적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나 자신을 꾸미고 세상을 배우는 데만 몰두해 있었으니까.
그는 서투르고 유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볼 때마다 늘 웃으며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옷차림은 어설펐어도 그 미소 하나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계산 없는, 그저 좋아한다는 마음이 전부인 눈빛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헤어지자고 했고, 그는 얼굴을 붉히며 울먹였다. 남자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낯설어 지금도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멀어져 있었고, 우리는 헤어졌다.
헤어지고 일주일 뒤 그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오토바이를 타다 큰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고, 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소식을 들었을 때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이미 끝난 인연이라 생각했고, 더는 내 몫이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친구는 차갑다며 나를 원망했지만, 나는 끝내 가지 않았다. 그는 “자기도 미안하겠지”라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바쁘게 20대를 살았다. 다른 사람을 짝사랑하기도 했고, 취업을 하고, 여행을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때는 단 한 번도 그를 떠올린 적이 없었다. 내 마음속에서 그는 이미 완전히 지워진 듯했다.
그리고 30대가 되어서야 문득 그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왜일까. 아마도 이제야 철이 들어서일 것이다. 세상을 조금 알게 되고, 순수하게 한 사람만 바라보는 사람이 이제는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야근을 마치고 빈 버스 창가에 앉아 창밖 불빛을 바라보다가, 혹은 여행지에서 낯선 웃음소리를 들을 때, 문득 그때의 눈빛이 떠오르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누군가가 계산 없이 온 마음을 다해 한 사람만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수함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나는 그에게 잘해준 기억이 없다. 오히려 상처만 주고, 떠나면서도 더 큰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고맙다. 덕분에 나는 진심으로 사랑받았다는 걸, 그 눈빛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걸.
차완무시와 계란찜. 겉보기엔 비슷해도, 그 안에 담긴 정성과 과정은 다르다. 사랑도 그렇다. 어린 나는 그 차이를 몰랐다. 누군가의 전부가 된다는 게 얼마나 큰 마음이 필요한지, 너무 늦게 알았다.
그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좋은 추억일까, 아니면 미운 기억일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누군가의 세상이 전부 나였던 시간이 내 삶에 있었다는 것을. 그 사실만으로도 지금 내 마음은 여전히 따뜻해진다. 그리고 그 따뜻한 기억은 작은 등불처럼 남아, 앞으로의 삶에서도 내 걸음을 지켜주고, 내가 또다시 누군가를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결국 나 자신을 위로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지금 어디에서든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