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싫어하고 사람 상대하기 싫어하는 직장인의 AI 시대 적응기
요즘 누구나 ChatGPT를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ChatGPT를 쓰기 전부터 인터넷 강의에 돈을 내고 AI를 배웠다. 그때는 정말 몰래, 조심스럽게 업무에 활용하면서 은밀한 우월감을 느꼈다. '나는 남들보다 앞서간다.'라고 느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우월감의 수명은 고작 몇 달이었다. 이제는 우리 회사 인턴조차 ChatGPT로 보고서를 뚝딱 만들어낸다.
그래서 올해 여름, 뒤처지지 않으려고 회사 돈으로 서울까지 가서 'ChatGPT로 하는 데이터 분석' 단기 교육을 들었다. 그리고 한 달 뒤, 회사 전 직원 대상 AI 교육이 회사에서 시작됐다. 두 교육의 강사 모두 대학에서 AI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우와!'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 역시 지금 연구하는 단계라 깊이 있게 가르쳐주지 못했다. 이때 깨달았다. AI 교육 시장조차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모두가 전문가인 척하며 함께 헤매고 있다는 것을.
그런 와중에도 우리 회사는 보안을 이유로 대놓고 ChatGPT로 업무를 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모두들 몰래 사용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부장님의 영어 이메일이 갑자기 완벽해진 이유, 평소 맞춤법도 틀리던 다른 부서의 직원이 보내는 이메일의 퀄리티, PPT에 등장하는 낯선 단어들. 이제는 영어 이메일만 봐도 AI가 썼는지 사람이 썼는지 구분할 수 있다. 너무 완벽하거나, 그 사람다운 어색함이 없거나, 똑같은 구문이 반복될 때 '아, 이건 AI구나' 싶다.
요즘엔 사실 AI 공부하기가 진짜 싫다. 대신 망상 같은 걸 하고 상상을 하기도 한다. '카페라도 차릴까?', '시골 내려가서 농사라도 지을까?' 하지만 이런 상상도 금세 현실 앞에서 무너진다. 카페? 유튜브나 온라인 쇼핑몰보다 더 힘든 장사다. 농사? 나 같은 저질 체력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 다시 월급쟁이의 현실로 돌아온다.
회사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없을까? 몇 가지를 시도해 보았다. 유튜브를 시도했지만 영상이 너무 재미없어서 구독자는 고작 이백 명. 온라인 쇼핑몰은 바로 진상 고객들만 만나서 스트레스만 쌓였다. '아, 이 일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주식은 모든 개미가 돈 벌던 코로나 시절조차 무지성 투자로 손실만 기록했다. 쫄보 기질 때문에 큰돈 투자할 배짱도 없었다. 부업으로 워킹 투어를 할까도 했지만, 낯선 사람들 앞에서 텐션 높여 가이드할 생각을 하니 첫 시작조차 못 했다.
매번 깨닫는 건 하나다. 월급만큼 벌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 월급의 마약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숫자를 싫어한다. 너무 싫어서 회사를 퇴사하고 놀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 그런데도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 사람 상대하는 것도 싫지만, 억지 미소를 지으며 미팅하고 상대방 기분 좋게 할 멘트들을 던진다.
이게 바로 월급쟁이의 모순이다. 싫어도 해야 하고, 못해도 해야 하고, 적응이 안 돼도 적응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
그런데 이런 적응이 조금씩 익숙해질 때쯤, 또 다른 변화가 몰려온다. 우리 회사는 AI에 몇십억을 투자하며 자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코파일럿 도입도 완료했고, 곧 회사 전용 AI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보안 때문에 지금은 여전히 오픈 AI를 사용할 수 없지만, 그것도 곧 끝날 이야기다. 정말 짧은 유예기간이다.
어느 정도 회사 생활이 편해지려고 하면 이런 고비가 생긴다. 역시 인생은 쉽지 않다.
ChatGPT에게 상담받은 조언들은 다 맞다. AI 시대에 맞는 지식을 공부하고, 대체되지 않을 역량을 키우라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공부가 재미있지도 않고 잘할 자신도 없다. 숫자 싫어하고 사람 상대하기 싫어하는 내가 '복잡한 이해관계 조율'이나 '의사결정'을 잘할 리도 없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결국 나 같은 평범한 직장인이 할 수 있는 건 적응뿐이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잘하든 못하든. 완벽한 해답 같은 건 없다. 요즘도 회사 가기 싫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게 바로 월급쟁이의 마지막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