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보낸 시간과 깨달음
올해는 작년 반성문을 쓰지도, 새해 목표를 빼곡히 적지도 않았다. 그 의례를 건너뛴 탓인지 2025년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서랍 속 잡동사니처럼 흩어져 있다.
기대했던 사람은 떠났고, 설렘으로 준비한 여행은 실망으로 끝났다. 무엇보다 몸이 배신했다. 어느 날 갑자기 말을 듣지 않더니, 입원이 필요할 만큼 심각해졌다. 다행히 회복은 했지만 그 경험은 내 삶의 무게추를 확 바꿔놓았다.
건강을 되찾은 후 오히려 더 무절제해졌다. 먹고 싶은 건 다 먹고, 늦게 자고 싶으면 늦게 잤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강박에 쇼핑도 과했다. 집 안에 방치된 물건들이 작은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통제하며 살든 방종하며 살든, 아플 사람은 결국 아프다는 사실. 그 인식이 해방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무작정 흘려보낼 수만은 없었다. 도전, 독서, 취미… 계획만 쌓여가고 실행은 없었다. 그래서 글쓰기로 돌아왔다. 오래된 기억과 최근의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적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달력을 보니 새해까지 99일. 매일 같은 루틴에 갇혀 있으니 시간이 유난히 빨랐다. 뇌가 새로움 없는 시간을 압축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은 시간을 달리 쓰기로 했다.
먼저, 올해 한 생각들을 꺼내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남은 기간에 현실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것만 골라내고 나머지는 과감히 놓아버린다.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게으름과는 이제 작별이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심겠다. 익숙한 카페 대신 낯선 골목을 걷고, 안 보던 장르의 영화를 보고, 잊고 지낸 사람에게 안부를 전해 뇌에 새로운 기억을 심어주겠다. 반복이 시간을 죽인다면 변화는 시간을 살린다.
흐트러진 생활 리듬을 바로잡고, 밀린 건강검진을 받고, 내년 계획도 구체화할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계획을 절대시 하지 않는다. 계획은 방향일 뿐, 인생은 언제나 다른 길로 흐른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완벽한 달성은 바라지 않는다. 또다시 계획만 세우고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괜찮다. 불완전한 시도가 더 의미 있다는 걸 배웠다.
무엇보다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다. 바쁘다는 핑계와 아프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질문들을 마주하겠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99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작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이번에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며, 남은 날들을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