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지기도 대화가 필요해
"저기!"
친구가 갑자기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5초쯤 지나 친구가 피해 간 방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저 멀리 건물 옥상에 갈매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전생에 새였어?"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는데, 친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친구와 2주간의 여행을 떠났다. 2년 전에도 함께 2주를 여행한 베테랑 파트너다. 이번에도 당연히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잘 아는데.
근데 착각이었다.
"한 도시에서 좀 살아보듯이 여행하자"는 콘셉트로 일정을 느슨하게 잡았더니,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니, 문제라기보단 '차이'가. 우리는 매일 밤 숙소에서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눴다. 내일 뭐 하지? 가 아니라, 너는 여행에서 뭘 원해? 뭘 느끼고 싶어? 같은, 당연히 알 거라 생각했던 것들을.
나는 햇빛을 좋아한다. 공원 잔디에 드러누워 사람 구경하는 게 좋고, 관광지를 전부 돌지 않아도 괜찮다. 유명 맛집? 구글 첫 검색이면 충분하다. 아니, 마트에서 고기 사다 숙소에서 구워 먹어도 만족스럽다. 특히 호주처럼 특색 있는 음식이 많지 않은 나라에서는.
친구는 정반대였다. 한 도시에 왔으면 유명한 랜드마크는 다 가봐야 한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여행 책자와 유튜브에 나오는 맛집, 카페, 로컬 맥주와 와인도 최대한 경험해야 한다. 다음 날 일정이 널널하면 불안해했다. "내일 뭐 하지?"라며 계속 검색했다.
나는 그냥 돌아다니고 중간에 디저트 먹으면 하루가 금방 갈 것 같았는데.
그런데 진짜 문제는 새였다.
친구가 비둘기를 싫어하는 건 알았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싫어함'이 아니었다. 공포였다. 시드니에는 갈매기도 많았는데, 친구는 비둘기보다 갈매기를 더 무서워했다.
놀라운 건 친구의 포착 능력이었다. 시력도 좋고 움직이는 걸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나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친구는 어느 순간 새를 포착하고 도망갔다. 길을 피해 갔다. 친구가 피하면 내가 그제야 새가 어디 있는지 자세히 찾아봐야 할 정도였다.
천적을 알아보는 본능 같은 거.
기념품 가게에서 갈매기 그림이 그려진 가방을 봤다. "I'm here to steal your snacks"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친구는 그 문구를 단숨에 외워버렸다. 웃으면서. 그런데 웃음 뒤에 진짜 공포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20년을 넘게 알았는데, 친구에게 새가 이렇게 큰 공포인 줄 몰랐다는 걸.
처음에는 웃겼다. 그러다 미안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테라스 식사, 잔디에 누워 햇빛 받기, 공원에서 오래 쉬기—이 친구에게는 새가 출몰하는 위험지대였다. 테라스에서는 커피 한 잔만 빠르게. 잔디에서는 10분. 음식을 먹으면 새가 오니까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음료만. 친구가 불편해하는 표정을 보면 더 있을 수가 없었다.
프리마켓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눈이 반짝였는데, 친구는 영혼이 나가 있었다. 쇼핑을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켓 안에서 기가 빨려나가는 듯했다. 그래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주의 가성비 덕분에 친구는 인생 최초로 쇼핑을 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즐거웠는지는... 글쎄.
어느 날 밤, 친구가 말했다.
"너 나 너무 배려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나는 진짜로 그냥 밖에 앉아서 햇빛 받으며 사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친구는 100% 이해하진 못한 것 같았다. 당연하다. 나도 친구가 새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20년 만에 알았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나는 왜 지금까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친구가 여행에서 뭘 원하는지, 뭘 불안해하는지, 어떤 순간에 숨이 막히는지. 오래 알았으니까 당연히 알 거라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물어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우리가 '안다'라고 생각했던 건 사실 '익숙함'이었다. 친구의 말투, 웃는 포인트, 좋아하는 음악. 그런 건 알았다. 근데 친구가 어떤 순간에 공포를 느끼는지, 무엇이 친구를 불안하게 만드는지는 몰랐다.
20년을 알았는데도.
우리는 친한 사람일수록 묻지 않는다.
당연히 알 거라는 착각 속에서. 질문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되는 것 같아서. 혹은 물어보는 것 자체가 '우리 사이'에 금이 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러다 10년 사귄 커플이 "당신이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라며 헤어진다. 자식 있는 부부가 "우리는 너무 달라요"라며 이혼한다.
오래 안다는 건 '다 안다'가 아니었다. '조금 더 빨리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질문을 던지면 답을 듣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조금 짧을 뿐. 질문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모른다.
덕분에 나는 유명한 맥주와 와인을 맛봤고, 친구는 잔디밭의 매력을 (비록 10분이지만) 경험했다. 싸우지 않았고, 둘 다 어느 정도 만족하며 여행을 마쳤다.
결국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배운 건 시드니의 명소가 아니라 서로였다. 중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에 대해서도, 여전히 배울 게 많다는 것. 그리고 계속 물어봐야 한다는 것.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대방이 원하는 건 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친하다고, 오래 알았다고 건너뛰지 말고.
집에 돌아와 그 문구가 다시 생각났다.
"I'm here to steal your snacks"
친구가 외워버린 그 문구. 웃으면서도 진심으로 무서워하던 그 표정.
나는 그제야 알았다. 친구의 천적은 새가 아니었다. 물어보지 않는 나였다.
그리고 나의 천적은, 안다고 착각하는 나 자신이었다.
다음 여행 전에는 물어볼 거다.
“이번엔 뭐가 제일 무서울까?”
그리고 그다음엔 이것도.
"나 몰랐던 거, 또 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