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마주한 보이지 않는 선
같은 회사인데 식당이 달랐다.
한국 직원들이 가는 한식당은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고, 과일과 다양한 반찬이 나왔다. 베트남 직원들이 이용하는 식당은 야외에 에어컨도 없고, 몇 가지 음식만 제공되었다. 같은 부서, 같은 일을 하는데 점심 한 끼가 이렇게 달랐다. 나는 그제야 봤다. 한국인과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을 가르는,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명백하게 작동하는 그 선을.
우리 부서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베트남 지사의 베트남 직원이 있다. 똑똑하고 열정적이며, 나보다 회사 경력도 길다. 이메일로만 소통하던 그를 이번 출장에서 처음 만났다. 외부 인맥도 넓고, 아는 지식도 많으며, 회사 역사와 정치까지 꿰뚫고 있는 사람. 내가 모르고 관심도 없던 것들을 그는 다 알고 있었다.
그와 시간을 보낼수록 묘한 감정이 들었다. 처음엔 존경심이었다가, 점차 뭔가 다른 것으로 변해갔다. 그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업무 로직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천장이 보이는 승진 구조에 지쳐 있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같은 회사에 다니는 아내의 남편이자,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아들. 운전을 못 하는 아내 때문에 매일 오토바이로 함께 출퇴근을 해야 해서 이직은 생각 할 수 없는 현실.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국 직원만큼의 급여를 받을 수 없고, 한국 본사로 발령받을 가능성도 없다는 사실.
이번 출장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 덕분이었다. 그의 지식, 현장 직원들과의 인맥, 그리고 직접 나서서 설명해주는 적극성이 없었다면 나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밥을 사고 선물을 건넸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내게 술을 사고, 커피를 사고, 어머니가 만든 음식까지 선물로 챙겨주었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분명 나인데, 나는 이상하게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대화 중에 그가 물었다. 한국에 있는 열정적인 동료 이야기를 하다가, "그래서 그 친구가 얻은 게 뭐예요?"라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1년 더 빨리 승진했어요." 우리 회사에서 조기 승진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이다.
그의 반응이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대가가 고작 1년 빨리 승진한 거예요?"
맞는 말이었다. 그래봤자 연봉이 극적으로 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 베트남 동료는 남들보다 빨리 승진했지만 여전히 100만 원대 월급을 받고 있다. 베트남 기준으로 나쁜 건 아니지만, 그가 회사에 쏟은 헌신을 생각하면 한국인인 내 기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후배들까지 잘 챙기는 모습을 보며 분명 좋은 리더가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이 회사가 그에게 그 자리를 줄까?
그는 할아버지가 베트남 전쟁 때 미군 편에서 싸웠다고 했다. 옆 동료의 할아버지는 반대편이었다. 지금 그 동료의 부모님은 두리안 농장을 운영하고, 그녀는 백금 주얼리를 몸에 두르고 있다. 어느 편을 들었느냐에 따라 자손의 삶이 이렇게 달라진다.
9년 만에 다시 찾은 호치민은 놀라울 정도로 변해 있었다. 높은 빌딩들이 스카이라인을 채우고, 오토바이보다 자동차가 많아졌으며, 지하철이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자본주의의 물결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9년 전 엄청나게 싼 물가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렇게 발달한 도심을 보니 머지않아 인건비도 크게 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선, 국적에 따라 달라지는 대우, 같은 노력에 대한 다른 보상.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도 그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그가 내게 건넸던 커피 한 잔, 어머니가 만든 음식, 그리고 "고작 1년이요?"라고 물었던 그 목소리.
나는 에어컨 나오는 식당에 앉아 있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내게 술과 커피를 사준 건 정말 내가 고마워서였을까, 아니면 한국 본사 직원이라서였을까. 나는 그에게 선물을 건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정말 고마움이었을까, 아니면 미안함을 덮으려는 몸짓이었을까.
9년 후 나는 어디에 서 있을까.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고작 1년이요?"라고 묻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어쩌면 진짜 출장 임무는 보고서를 쓰는 게 아니라, 이 질문들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