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바니에미의 고요한 크리스마스
도시의 작은 상점들마저 크리스마스에 푹 잠겨 있었다. 유리창 너머에는 산타 인형들과 트리, 눈사람, 무민 램프, 빨간 모자 쓴 난쟁이들까지… 한눈에 봐도 ‘지금 우리는 북유럽에 있다’는 걸 증명하듯 빼곡하게 장식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눈처럼 반짝이는 스노우볼들이 끝없이 진열된 가게에서는, 아이도 아닌데 설렘이 저절로 올라왔다. 그러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귀걸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소심하게’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내 몸이 트리라고 생각하고 귀걸이 장식을 샀다.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언제나 반짝이는 트리, 신나는 캐롤, 사람들로 가득 찬 축제를 떠올렸었다.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크리스마스와 전혀 다른 크리스마스를 만난 곳이 있다. 핀란드 로바니에미, 산타마을.
그곳에서 경험한 크리스마스는 조용하고, 고요하고, 마치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차분했다. 눈이 잔잔하게 쌓인 산타마을에는 북극의 공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침묵이 있었다. 우리나라 시골보다 더 작은 마을인데, 적막함은 그보다도 더 깊었다. 새하얀 눈밭 위의 작은 발자국 소리마저 크게 느껴질 만큼.
산타마을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산타를 만날 수 있다. 나를 보자마자 “학생이야, 직장인이야?” 하고 묻더니, 직장인이라고 하자 “나도 일 빨리 끝나고 집 가서 쉬고 싶다”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K삼겹살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장난으로 “수염 진짜예요?” 하고 물었는데, 당겨봐도 된다는 거다. 조금만 당기면 떨어지겠지 했는데… 살이 같이 당겨졌다.
그때부터 혼란 시작. “이 사람… 혹시 진짜인가?”
그와의 사진은 3만 원 정도였는데, 진짜 산타라면... 이제 다시 못 볼 수도 있잖아. 그래서 증거 사진을 찍어두었다.
산타마을에는 우체국이 있었다. 이 공간 안에서, 요정 모자를 쓴 직원들이 편지를 분류하고 있었다. 세계 각국 이름이 적힌 칸마다 아이들이 보낸 손글씨 편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지도에서 찾아야 할 것 같은 나라들에서조차 산타에게 편지가 도착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괜히 울컥했다. 어린 마음으로 무언가를 ‘믿어본다’는 감정이 얼마나 순수한지, 한가득 쌓인 편지들이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어렸을 때 산타의 주소를 몰랐을까. 알았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보냈을 텐데. 크리스마스마다 산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는데.
편지를 정리하던 요정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더 분주했다. 그 많은 편지에 진짜 산타가 답장을 쓰는 걸까? 아니면 요정들이 대신 쓰는 걸까?
머릿속의 루돌프는 늘 빨간 코에 귀엽고, 말도 잘 들을 것 같은 순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순록은 딱 달랐다. 어둑한 숲길에서 본 순록은 덩치가 크고, 뿔도 위압적이었다. 멍한 눈으로 가만히 서 있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몸을 움직이면 생각보다 힘이 느껴져서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게 됐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는데… 솔직히 무서웠다. 만화 속 루돌프가 내 상상을 너무 순하게 만들어버렸던 거다.
그때 살짝 충격을 받았다. ‘아… 루돌프는 원래 이런 동물이었구나.’ 튼튼한 몸집, 단단한 다리, 눈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는 발굽. 순록은 귀엽지는 않았지만, 겨울 숲을 헤쳐 나갈 힘은 충분해 보였다.
로바니에미의 맥도날드에서는 ‘오로라 아래에서 즐기는 최고의 식사’라는 엽서를 그냥 나눠준다.
이 마을은 진짜 ‘크리스마스 세계관’의 일부였다.
이곳에서 본 크리스마스트리는 화려하지 않았다. 반짝임도 과하지 않았고, 장식도 규칙 없이 달려 있었다.
어쩌면 급하게 꾸민 것 같은데…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오히려 너무 완벽하게 장식된 트리보다 ‘진짜 크리스마스’에 더 가까웠다.
일부러 구글 지도를 검색하지 않고 그냥 눈길이 가는 음식점에 갔다. 손님이 거의 없어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고, 핀란드어 메뉴판을 읽다가 결국 ‘그냥 찍어서’ 주문을 했다.
그런데 잠시 후 테이블에 나온 음식은 뜻밖에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화려했다. 붉은 피망, 초록 잎채소, 반짝이듯 윤이 도는 소스까지. 식당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음식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조용히 혼자 음식을 먹고 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뭉클했다. 사람이 없는데도 미소 지으며 음식을 내어주던 주인들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따뜻함’이라는 건 언어와 상관없다는 걸 그 순간 알았다.
박물관 한쪽에는 북극 동물들을 실제 크기 그대로 재현한 전시 공간이 있었다.
하얀 여우는 눈발 위에서 막 뛰어오르다 멈춘 것처럼 섬세하게 서 있었고, 커다란 북극곰은 내가 한 발 더 다가가면 금방이라도 숨을 내쉴 것처럼 생생했다. 순록보다 훨씬 큰 무스의 눈은 묘하게 깊어서,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숲의 냉기가 스며드는 듯했다.
환한 트리와 장식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북극의 깊고 묵직한 생명력. 그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내가 찾은 크리스마스는 축제의 소리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 더 깊게 빛났다. 고요하고, 차갑고, 신비로운 겨울. 그 속에서 마주한 산타와 루돌프, 트리와 눈, 그리고 나.
크리스마스는 소리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조용한 공간에서 마음이 천천히 따뜻해지는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곳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