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식당에 잠시 앉아보기

핀란드 헬싱키의 카모메 식당

by 온빛

나는 종종 책이나 영화에서 본 장소를 실제로 찾아간다.
혼자 가서, 혼자 설레고, 혼자 돌아온다.


그 선택이 늘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글이나 화면 속에서는 분명 좋았던 공간이 현실에서는 너무 작거나, 너무 상업적이거나, 생각보다 아무 느낌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계속 그런 장소를 찾아간다. 어쩌면 그곳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그 세계에 잠깐 들어가 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어느 겨울, 헬싱키에서 카모메 식당을 찾았다.


영화 〈카모메식당〉은 큰 사건도, 분명한 메시지도 없는 영화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모든 장면이 오래 남았다.

여름의 헬싱키, 일본 음식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사람들, 언제부터인지 생겨 있는 단골들, 그리고 “커피는 남이 끓여줘서 맛있다”는 말.


그 영화가 좋았던 이유를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 안에는 설명하거나 증명해야 할 삶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의 카모메 식당은 영화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이곳이 현실의 식당이라기보다 영화 속 한 장면이 계속되고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 공간이 좋았던 이유는 이곳에서는 아무 역할도 맡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님이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관광객처럼 들뜨지 않아도 되고, 그냥 앉아 있어도 되는 사람.

마치 영화 속에 늦게 등장한 인물 하나가 되어 조용히 자리에 합류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비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한국 사람인 내가 핀란드까지 가서 평범한 일본 가정식을 한국보다 두세 배 가격을 주고 먹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그 음식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익숙한 음식을 낯선 나라에서 먹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현실의 내가 아니라 영화 속 시간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그 선택을 충분히 납득하게 만들었다.






내가 카모메 식당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곳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 공간에서는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됐고,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됐고, 잘 살고 있다는 증명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하루를 보내는 한 사람으로 잠시 존재해도 괜찮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 식당에 앉아 있던 시간은 감동이라기보다 안심에 가까웠다.





아마 나는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책과 영화 속 장소를 찾아갈 것이다.

실망할 수도 있고, 아무 감정도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허구였던 세계가 현실에서 잠깐 자리를 내어주는 순간을 만나게 될 테니까.

그때 나는 또 혼자 조용히 설레하면서 그 공간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고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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