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나는 조금 바쁘다

스스로를 돌본다는 것

by 온빛

연말이 되니 생각이 많아졌다. 뭘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자꾸 분주해졌다. 운동도 해야 할 것 같고, 책도 더 읽어야 할 것 같고, 괜히 거울을 보며 요즘 내가 못생겨진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5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2년을 쉬었다. 그리고 4년 전에 다시 돌아왔다. 복귀한 지도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다. 연말이 되니 문득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나와 사번 앞자리가 같던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한 동기들이 내년이면 차장급이 된다는 소식 같은 것들.


그게 부럽게 느껴진 건 아니었다. 차장이라는 자리가 가진 책임과 무게를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이야기가 크게 다가왔던 건, 이제 다들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시점에 들어섰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부서 이동이든, 다른 회사든,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든. 이제는 "한번 해볼까"라는 말이 예전처럼 가볍게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게 직급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선택의 비용이 분명히 커졌다는 감각은 있었다.


요즘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가만히 적어보면 조금 우습다. 운동도 하고 싶고, 책도 많이 읽어서 현명해지고 싶고, 집도 사고 싶고, 부업으로 돈도 벌고 싶고, 예전보다 더 예뻐지고 싶다. 하나만 원하는 게 아니라 전부 동시에 원하고 있다.


이 욕심들이 꼭 미래를 바꾸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내가 어딘가에 고정되어 버릴까 봐, 그게 조금 불안해서 생긴 마음에 가깝다.


집을 사면 영원히 여기에 살아야 할 것 같고, 이 회사에 계속 다니면 영원히 여기에 붙박여 있을 것 같다. 머리로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 마음은 자꾸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서운 건 어쩌면 그게 아니라, 이렇게 회사 생활에 목을 매고 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50대가 되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젊음은 다 가버렸는데 그다음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것 같은, 그런 막연한 두려움.


안정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마음이 남아 있고, 도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이제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 상태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지고,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는 완전히 쉬고 싶은 것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것도 아닌 것 같다. 다만 이 나이의 내가, 이 상태의 내가 아직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시간이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그래서 연말의 나는 조금 바쁘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아직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고 당장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도 없지만,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은 상태로 이렇게 한 해의 끝에 서 있다.


이 복잡함이 연말이라서 생긴 건지, 아니면 이제 이런 생각을 할 시기가 된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이 마음을, 조용히 한 번 적어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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