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사랑보다 먼저 필요한 것
복희는 지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부모님 댁 거실 소파 위에서, 혹은 현관문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문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언제 올까. 오늘은 올까.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복희는 실외배변을 한다. 그래서 직장 다니는 나와는 함께 살 수 없다. 부모님 댁에서 지낸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부모님도 복희를 예뻐하시지만, 하루 종일 복희 곁에 있을 수는 없다. 복희는 누군가 문을 열어주길, 누군가 공을 던져주길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 나는 그게 늘 미안하다.
작년 여름, 나는 진짜로 테라스 있는 집을 알아봤다. 복희가 테라스에서 배변할 수 있다면, 우리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동산 앱을 켜고, 테라스 옵션에 체크하고, 검색했다. 매물도 잘 없고 위치도 애매해서 앱을 껐다. 그리고 복희에게 문자라도 보낼 수 있다면 보내고 싶었다.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
그래서 나는 복희를 만날 때마다 더 잘해주려고 애쓴다. 몇 주에 한 번 만나는 날은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복희랑 시간 많이 보내야지, 잘해줘야지.’ 복희 만나러 가는 길에 강아지 장난감 가게를 발견하면 꼭 들른다. 말랑말랑한 공, 폭신한 인형. ‘이건 복희가 좋아하겠다.’ 하나씩 고르다 보면 어느새 손에 여러 개가 들려 있다.
어느 주말, 나는 복희를 데리고 애견 카페에 갔다. ‘이런 곳이면 복희가 좋아하지 않을까.’ 넓은 공간, 예쁜 소품들, 다른 강아지 친구들. 복희가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입장료를 냈다.
그런데 복희는 시무룩했다. 다른 강아지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주인들은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복희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복희는 내 발치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왜 안 놀아? 여기 이렇게 넓은데.’ 조금 기다려봤다. 그래도 복희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점점 조급해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입장료도 냈는데. 복희가 즐거워해야 하는데.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즐거워해야 하는 건 복희인데, 왜 내가 평가자가 된 걸까.
복희는 내 품으로 파고들더니 눈을 감았다. 그제야 알았다. 이건 복희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나를 위한 시간이었단 걸. ‘나는 복희한테 이렇게까지 해줬어.’ 그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거였다. 조금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복희의 발을 씻기고 패딩을 벗겼다. 그 순간, 복희가 슝 하고 점프했다. 공을 물고 와 내 앞에 떨어뜨렸다.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웃고 있었다. 아까 그 애견 카페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복희에게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은 것 같았다. 집 거실 바닥, 맨몸으로, 나랑 공놀이하는 이 시간.
나는 공을 던졌다. 복희는 전생에 공놀이 선수였나 싶을 정도로 빠르다. 내가 던지면 바로 잡아온다. 다시 내 앞에 떨어뜨린다. 또 던져달라는 얼굴이다. 나는 계속 던졌다. 복희가 웃고 있어서.
30분쯤 지났을까. 솔직히 팔이 아팠고, 같은 동작이 조금 지루해졌다. 나는 무심코 핸드폰을 꺼냈다. 공은 던지면서, 눈은 화면을 보면서. 그때 복희가 나를 쳐다봤다. 여자가 삐졌을 때 그 표정. ‘너 지금 딴짓하지?’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복희를 쓰다듬었다. “미안, 미안. 놀자.” 복희는 그제야 다시 꼬리를 흔들며 공을 물고 왔다.
그때 알았다. 복희가 원하는 건 비싼 패딩도, 예쁜 카페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복희를 보는 것. 온전히 복희랑만 있는 시간. 핸드폰을 내려놓고 공을 던져주는 것. 그게 복희에게는 사랑이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나를 모르는 곳에서,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서.
그런데 가끔 착각한다. 비싼 호텔에 묵고, 유명한 레스토랑에 가고, 인스타에 올릴 사진이 있어야 진짜 여행이라고. 복희에게 비싼 패딩을 입히고 예쁜 카페에 데려가야 좋은 보호자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하지만 복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행복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나만 봐주는 것. 그 순간들이 쌓여 행복이 된다는 걸.
나는 복희처럼 단순하게 행복해지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마 다음 주에도 또 뭔가를 사들고 갈 것이다. 새 장난감이나, 예쁜 간식 같은 것. 이게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니까.
그래도 이제는 안다. 복희가 진짜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는 걸. 복희는 그냥 내가 집에 오는 것. 공을 쥐여주며 “놀아줘”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핸드폰을 보지 않고, 온전히 복희만 보는 그 시간.
오늘도 복희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 주말에 복희를 만나러 갈 것이다. 가는 길에 또 장난감 가게에 들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복희를 만나면, 공을 던져줄 것이다. 이번에는 핸드폰 보지 않고. 복희가 신나게 공을 물고 오는 그 단순한 행복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