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순자와 영식이 뱃일을 나가면 동생들을 돌보는 일은 은주의 몫이다. 겨우 열한 살의 은주가 할 수 있는 요리는 김치볶음밥뿐이다. 그러니 점심이든 저녁이든 김치볶음밥이다.
부엌 찬장에 남겨둔 찬밥이나 아랫목 이불속에 넣어둔 밥을 꺼내다 볶으면 그만인데 날이 따듯해지니 밥에서 시큼한 쉰내가 난다. 그럴 때면 직접 냄비 밥을 지어야 했다.
밥 뜸 드는 동안 기다리려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가스레인지 앞에 앉아 있는 10분이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올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지루한 시간이었다. 은주는 그새를 못 참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밥은 까맣게 잊은 채 유난히 바쁘다. 타는 냄새가 온 집안을 돌아 코앞까지 오면 그제야 헐레벌떡 뛰어가 불을 꺼보지만 부엌 천정은 이미 검은 연기로 가득했다. 은주에게 밥 짓기란 매번 어려운 숙제 같았다.
김치볶음밥은 이제 눈감고도 뚝딱이다. 신발장 뒤에 끼워둔 둥근 상을 꺼내 다리를 펴고 냄비 받침용 책을 상 위에 던져둔 다음 프라이팬을 통째로 올려놓았다. 숟가락 세 개만 얹으면 끝이다.
반찬 하나 없는 밥상이지만 머리를 들이밀며 동생들과 치열하게 밥을 먹는다. 딴청을 피웠다가는 눌어붙은 밥을 긁어먹는 신세가 되고 만다. 아쉬운 놈은 이리저리 뒹구는 밥풀까지 깨끗이 주워 먹는다.
일꾼이 말썽이라며 영식은 순자와 둘이서 뱃일을 다녔다. 새벽같이 나가 저녁이면 돌아오는데 오늘따라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은주는 걱정이 쌓여 갔다.
고이도는 육지에서 배로 한 시간 거리의 작은 섬이다. 선착장을 중심으로 백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은주네 집도 바닷가 석착장과 지척이다.
전기는 공동 발전소에서 공급하고 식수는 집집마다 펌프로 끌어올린다. 영식이 어렸을 적에는 우물물을 길어다 섰지만 이제 우물은 아이들의 개구리 잡이 놀이터가 된 지 오래고, 간간이 손빨래하는 사람들만 이용한다.
발전소에서는 아침 6시에 발전기를 돌려 밤 12시까지 전기를 공급했다. 정전이 되면 양초에 불을 붙이고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정전은 으레 있는 일이니, 신발장 서랍에는 양초와 성냥이 가득했다.
시계가 밤 9시를 가리켰다. 엄마가 없으니, 은주는 엄마를 대신해야 했다. 동생들을 불러 양치를 시키고 턱에 수건을 두르고 세수도 시켰다. 옷을 갈아입히고 이불도 깔았다.
"언니는 엄마 아빠가 오나 안 오나 보고 올 테니까 너네는 자고 있어! 알았지?"
"근데 엄마 언제 와?"
"나도 몰라~ 얼른 자!"
"잉~ 금방 갔다 올 거야?"
"응! 금방 갔다 올게!"
배가 선착장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은주는 바닷가로 향했다. 가로등도 없는 골목은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도 발밑은 깜깜하다. 손전등을 비추며 울퉁불퉁한 흙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선착장과 방파제 사이를 띄엄띄엄 몇 개의 가로등이 밝히고 있었다. 검은 바다는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먼바다로 나갔다 늦게 돌아오는 큰 배들이 거대한 전등을 주렁주렁 매달고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선착장에 은주네 배는 보이지 않았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평평하고 깨끗한 바닥을 골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멀리 육지로 보이는 불빛이 어렴풋이 보일 뿐 주변은 온통 어둠이다. 이따금 싸늘하게 스치는 바람에 소름이 돋았다. 숨 막히는 고요함에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 소리도 크게 들린다.
검푸른 하늘 가득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별이 반짝거렸다. 은주는 별을 향해 손전등을 비춰보지만, 빛은 하늘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손전등으로 별을 비추는 것은 어림없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은주는 자꾸 하늘을 향해 손전등을 비춰본다.
겁이 많은 은주는 밤이면 귀신이 덤빌까 봐 헐레벌떡 뛰어다니고는 했다. 밤이 무서운 은주는 혼자 밤바다에 나와 본 기억이 없다. 은주에게 밤과 바다는 두렵고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겁쟁이 은주가 밤에 바다로 나와 앉아 있는 것은 귀신보다 엄마 없는 밤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 해변 언저리에 반짝이는 빛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바닷가로 내려가 손전등을 끄고 쪼그리고 앉았다. 바닷물이 자갈에 부딪힐 때마다 푸른빛이 반짝거렸다. 찰랑이는 파도에 떠다니는 푸른빛은 난생처음 보는 경이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게 뭐지? 반딧불은 아닌 것 같은데!"
은주는 선생님에게서 들은 플랑크톤이 언뜻 생각났다.
"아! 이게 플랑크톤이야? 우~와!! 예쁘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불빛보다 몇만 배는 아름답고 오묘한 빛이었다. 깜깜한 밤바다에 작고 푸른 별들이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엄마를 기다리던 조바심도, 언제 덮칠지 모를 귀신도 잊어버린 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숨죽여 바라보고 있었다. 다리가 저려왔다. 쌀쌀한 바람에 몸도 부르르 떨렸다. 선착장에 새로 들어오는 배도 없다. 동생들이 기다릴 테니 은주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안녕! 나는 가야 돼! 또 보자~"
바다 별에게 아쉬운 인사를 하고 집으로 얼른 뛰어갔다.
엄마를 찾는 동생들을 다독여 재우고 텔레비전을 틀고 소리를 줄였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눈만 내민 채 전설의 고향을 보고 있다. 멀쩡하고 곱던 여자는 머리를 풀어해친 귀신으로 변했다. 눈을 질끈 감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시 숨을 고른다. 무섭지만 궁금해서 끝까지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놓고 또 괜히 봤다며 후회한다. 귀신이 더더욱 무서워지는 밤이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데 엄마는 아직 소식도 없다. 은주는 짜증이 치밀어 전화기를 째려봤다.
"저놈은 아침부터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네!
엄마는 어항에 갔으면 전화라도 할 것이지!! 왜! 전화도 안 해?
아직도 바다에 있나? 음... 그러면 큰일인데?"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두려움이 밀려왔다.
전화번호부를 뒤적여 임종길이라는 이름을 찾아 손으로 짚었다. 종길은 고이도 언덕에 있는 작은 교회 목사다. 그는 서울의 한 교회의 담임목사지만 안식년으로 목회를 잠시 쉬는 동안 홀로 벽지에 내려온 50대의 신실한 사람이다.
은주는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순자를 따라 교회를 다니면서 종길을 알게 되었다. 종길은 서울 사람답게 키가 훤칠하게 크고 넓은 이마에 하얀 피부를 가졌다. 상냥하지만 근엄하고 절제된 말투에 범접할 수 없는 기품까지 지녔다.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은주는 자신이 아는 사람 중 하나님과 가장 잘 통하는 사람은 종길 일 거라 확신했다. 아주 특별하고 어쩌면 위험한 순간일지도 모르는 지금 그의 기도가 간절히 필요했다.
은주는 전화기를 들고 머뭇거렸다. 가족이 아닌 다른 어른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부탁할 만큼 넉살 좋은 은주가 아니었다. 겨우 수화기만 들었을 뿐인데 심장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에서 선명히 들린다. 은주는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종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주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시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목사님... 저 은주인데요. "
"응 그래. 은주구나!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니?"
"음... 엄마 아빠가... 뱃일 나가서 아직 안 오셨는데... 전화도 없고... 걱정돼서 그러는데... 기도 좀 해 주세요."
은주는 울먹이며 머뭇머뭇 이야기했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불안을 알아챈 종길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음... 그래. 부모님이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구나... 동생들은?"
"자고 있어요."
"그래. 저녁은 먹었고?"
"네. 아까 먹었어요."
"음... 내가 집으로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거라."
"에?? 어...... 그냥 거기서 기도 해주시면 안 되나요?"
"아니다! 집으로 금방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라."
"음... 어... 네..." 예상치 못한 종길의 대답에 은주는 당황스러웠지만 자신이 먼저 전화를 걸었고 기도 부탁까지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마당에서 은주를 부르는 종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도를 부탁했을 뿐인데 집까지 찾아오다니 과한 친절이 부담스럽고 미안했지만, 한편으로는 든든하고 고마웠다.
"목사님은 불 끄고 옆에서 기도할 테니까. 편히 자라. 엄마 아빠는 아침이면 돌아오실 거야. 걱정하지 말고, 이제 자라."
"네."
따뜻하고 차분한 종길의 말투에 은주의 불안도 잠잠해졌다. 어차피 12시가 되면 꺼질 불이었지만 종길은 불을 끄고 깜깜한 방에 앉아 소리 없이 기도를 시작했다. 지친 눈꺼풀이 내려앉자, 은주는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
팔을 스치는 낯선 감촉에 은주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종길이였다.
"은주야 잘 잤니?"
"네??"
잠이 덜 깬 은주는 놀라 한참을 앉아 았었다.
'어?? 목사님이 왜 여기 있지? 아!! 내가 어제 기도 해달라고 했지!!. 그런데 왜 아직 여기에 있지? 밤새 저렇게 앉아서 기도했다고?'
은주는 큰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종길을 바라봤다. 종길은 굳은 다리를 주무르며 힘겹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은주는 밤을 새워 본 적도 없지만 밤샘 기도는 상상 밖의 일이었다. 기도는 주기도문을 비롯해서 5분 이상 하기 힘들 만큼 하나님에게 길게 말할 자신도 없었다.
벽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종길은 여섯 시간 동안 무슨 기도를 한 것일까? 무엇보다 밤새 돌아오지 않은 엄마와 아빠의 안전을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을 위해서도 기도했을 것이고, 은주네 가정의 위해 기도 했을 것이다. 아이들과 기도를 부탁한 은주를 두고 특별한 기도도 했을 것이다.
잠든 사이 엄청난 축복의 기도가 자신에게 쏟아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던 은주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종길의 기도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종길은 미안함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주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 아빠 돌아오시면 전화해 줄래?"
은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길이 돌아가고 은주는 마당으로 나가 보았다. 가을 아침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쌀쌀함에 신발을 후다닥 벗어던지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냉큼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잠이 덜 깨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 졸고 있을 때 밖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에 깔린 자갈 밟는 소리. 물에 젖어 질퍽거리는 장화 소리. 생선이 담긴 묵직한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마당 시멘트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까지. 분명히 엄마 아빠의 소리였다. 은주는 얼른 밖으로 뛰어나갔다. 고요하던 집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고 잘 자고 일어난 동생들은 평소처럼 엄마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은주는 따지고 싶은 마음에 입을 삐쭉거리며 볼멘소리로 순자에게 물었다.
"엄마!! 왜 지금 왔어?"
"이~ 어항이서 자구 왔어."
"그니까! 왜?? 왜!! 집에서 안 자고 어항에서 자고 왔냐고!!"
"이~ 그럴 일이 있었어. 니는 물러도 댜!"
전화를 왜 안 했느냐는 말은 아직 물어보지 못했는데 한마디 변명이나 설명도 없이 말을 싹둑 잘라버리니 은주는 기가 막혔다. 은주는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순자를 대신해 변명거리를 찾았다.
'아빠랑 싸웠나 봐!'
'아빠는 또 술을 많이 먹었겠지?'
'그럼 또 밤새 대판 난리가 났었겠지?'
'그래도 그렇지 전화라도 해주지...' 은주는 혼자 생각하다 서운함과 서러움이 북받쳐 그렁그렁 차오른 눈물이 뚝하고 떨어졌다. 흐르는 콧물과 눈물을 소매로 쓱 닦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자와 영식이 분주한 사이 은주의 전화를 받은 종길이 집으로 왔다. 아침부터 연락 없이 찾아온 손님에 순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종길과 마주했다.
"얼라? 목사님! 아침부터 어쩐 일루 오셨대유?"
"집사님. 은주가 밤에 기도 해달라고 전화해서 제가 집에 와서 기도하고 갔습니다. 어린것이 어찌나 똘똘한지... 엄마 아빠 걱정된다고 기도해 달라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밤새워 기도했는데 별 탈 없이 오셔서 다행입니다."
종길의 말에 놀란 순자는 말을 아꼈다.
"아! 예!! 아! 예... 그려요? 감사헙니다! "
"집사님! 무슨 일 있었나요?"
"아! 예!! 별일 읎었어요!"
종길은 순자가 대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은주의 칭찬으로 말을 마무리 지었다.
"은주가 걱정을 많이 했나 봐요. 제가 아침에 은주를 살짝 깨웠는데 벌떡 일어나더라고요. 밤새 걱정돼서 잠도 편하게 못 잔 거 같습니다."
"아... 예......" 순자는 은주를 쳐다봤다. 대견한데 민망하다는 순자의 눈빛을 보고 은주는 밤새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확신했다. 무사히 돌아온 것은 다행이었지만 기도 요청까지 했던 어린 자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자가 은주는 야속하기만 했다.
은주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엄마를 돕고 동생들을 돌보며 집 안팎을 청소하는 일도 군소리 없이 했다. 하지만 순자의 품은 늘 두 동생의 차지였고 징징거리는 두 아이만으로도 버거워하는 엄마에게 안기기는 미안해 멀찍이 떨어져 기다렸다.
아직은 엄마 품이 필요했던 은주는 그래도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며 칭찬 한마디라도 해주길 바랐지만 은주의 차례도, 칭찬도 없었다.
은주는 엄마 품에 안겨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없이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