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마흔다섯과 예순아홉의 8월

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by 온벼리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은주의 마흔다섯 번째 8월이다. 며칠째 계속된 세찬 비로 창밖 먼 풍경은 온통 잿빛이다. 엄청난 비로 서울에 빌라가 잠겼다. 뉴스가 떠들썩해지자 걱정된 순자는 은주에게 전화했다.

"뉴스서 서울이 비 많이 왔다는디. 별일 읎냐?"

은주가 인천에 사는 걸 알면서도 순자는 매번 서울이라고 말한다.

"어! 인천도 비가 어마어마하게 오기는 하는데 다행히 별일은 없어. 엄마! 허리 아픈 건 좀 어때요?"

"신경 치료허구 나니깨 좀 살 것 같다. 치료헐 때는 얼마나 아픈지 다리가 막 부들부들 떨리드라."

어느덧 순자의 나이도 예순아홉이다.


순자는 타인과 마음을 나누는 것에 서툰 사람이다. 10년 전 은주가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고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딸의 서글픈 울음소리를 듣고 누가 죽은 줄 알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순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가 죽을 정도로 엄청난 일이 있어야만 전화해서 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은주는 순자와 많이 다르다. 대화를 좋아하고 작은 것에도 마음을 쓰는 섬세하고 민감하다. 은주는 사춘기를 지나며 자신과 너무 다른 엄마와 교감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일 거라고 포기했었다.

그런 은주와 순자가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은주가 순자를 품을 수 있을 만큼의 어른이 됐기 때문이다.


두 달 전에는 막내아들 민철의 일로 속앓이를 하던 순자는 은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민철이가 내 말은 잘 안 듣는다. 니가 좀 전화 혀 봐라. 요즘 왜 그러는지.

이 눔 새끼가 생선을 널부러 놓구 승질난다구 집으루 가지를 않나. 엄마는 힘들어 죽겄는디 뭐가 마음에 안 든다구 승질부렸쌌는디 내가 숙이 터져서 뭇 살것다.

이 눔 새끼는 뭐라 그러믄 한 마디두 지지를 않어! 왜 그 모냥이냐구 허니깨 엄마가 잘못 키워서 그런다드라!

힘들게 키워놨드만 지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에미 탓만 허구 자빠졌어!"


순자는 대천에서 생선가게를 한 지 5년이 넘었다. 아들 민철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생선가게를 물려주려고 하기 싫다는 것을 설득해 결국 같이 일하고 있다. 민철이를 설득하는데 은주도 한몫했다고 순자는 민철이와 다툼이 생기면 은주에게 전화해 하소연이다.


순자의 말을 들은 은주는 사는 게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자식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잘못이라고... 민철이 말도 틀리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말을 아꼈다.

은주는 순자가 자식의 원망을 받아주기 어려울 만큼 나이가 든 것인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마흔 살에 은주는 순자에게 나를 왜 이렇게 키웠냐며 서러움을 한꺼번에 쏟아낸 적이 있다.

결혼하고 남편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남편의 계속되는 지적에 은주는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은주에게는 어릴 적 응어리가 많았다. 마음이 병든 채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마흔이 돼서야 인지하기 시작했고 자신 안에 울고 있는 아이를 찾아낸 것이다.


"미안허다! 니 에미가 못 배워서 그려. 많이 사랑해 주지두 뭇 허구 표현두 뭇 혀서 미안허다.

너 힘들게 혀서 미안혀. 엄마가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렸다.

누덜 돌아볼 여력이 읎었어. 엄마가 혼저서 누덜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겄니.

미안혀. 엄마가 뭇 배워서 그려. 엄마가 뭇 배워서 그런다."


순자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자신을 옹호했다. 힘겹게 버텨왔던 세월이 사무치게 서러웠고 자신을 원망하는 딸에게 서운한 마음도 들어 한참을 흐느껴 울었었다.


은주는 자신의 상처들을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죽을 것만 같았다. 순자의 사과를 받지 못하더라도 알리고 싶었다. 슬픈 감정을 더 이상 담아두지 않고 꺼내버리고 싶었다. 평생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컸다고 자부하던 당신의 딸이 어려서부터 속이 썩어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지 못했다는 것도 알리고 싶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순자는 자신을 탓하는 자식들이 못마땅하다. 남편 없이 어럽게 키워놨더니 어미 탓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요즘 순자는 은주에게 전화를 자주 건다.

"네! 엄마!"

"이~ 저녁 먹었니?"

"응! 이제 먹으려고 밥하고 있지! 엄마는 저녁 드셨어요?"

"아까 점심 겸 저녁 먹었다. 별일 읎니?"

"어! 별일 없지! 엄마! 나 글 다 썼네!"

"어이구!! 글 다 썼니? 급허게 쓰느라 고생혔네!"


은주가 요즘 글을 쓴다는 것을 순자도 알고 있다. 은주는 작가가 되려고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쓰면서 잘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순자에게 전화해서 가끔 묻기도 했다. 순자는 글을 쓰겠다는 은주가 대견했다. 가계가 바쁘지 않을 때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일부러 전화해서는 묻지도 않은 것까지 말해주고는 했다.


"가계 불난 거 알구 있니?"

"어? 엄마 가게?"

"그려! 며칠 전이 불났어. 어떤 눔이 우리 가계다 불 질렀어."

순자는 쩝쩝 소리가 나도록 무언가를 씹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일부러 불을 질렀다고? 누가? 왜?"

"이... 시장이 자주 오는 눔인디... 그눔이... 우리 가계 앞이다 자꾸 오토바이 시동을 켜놓구 가길래. 민철이가 시동 즘 끄라구 혔드만! 들은 체두 않는 겨!

참다 뭇 혀서 민철이가 오토바이 시동을 껐지! 그렸더니~ 그 미친 눔이~ 지 오토바이 건드렸다구 가만히 안 둔다구 그러믄서 가드라! 그러구 그날 새벽이 그 미친 눔이 우리 가계다 불을 지른겨!"

"와! 뭐 그런 돌아이가 다 있어? 사람은 안 다쳤지? 가계 많이 탔어?"

"이이~ 새벽이 그렸응깨, 사람은 안 다쳤지! 가계두 많이는 안 탔어!

근디! 그눔이 지가 불 질러 놓구. 지가 또 119다 신고혔다!"

순자는 마치 남의 집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순자의 말투를 들으니 은주는 잘 해결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순자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아 저녁밥을 하다 말고 자리를 잡고 앉아 열심히 들었다.

"자기가 불 지르고, 자기가 신고했다고?"

"이이~ 승질난다구 휘발유 뿌리구 불은 질렀는디. 불이 막 옮겨 붙으니깨 겁이 났나 벼! 지가 119다 신고 허구 도망갔댜."

"근데 그 사람이 불 지른 거 어떻게 알았데?"

"경찰이 왔는디 휘발유를 뿌렸응깨 방화인 줄 알 거 아니냐! 그렁깨 목격자를 찾을라구 신고헌 사람 헌티 전화혔는디 전화를 계속 안 받드랴.

경찰이 이상허게 생각혀서 위치추적을 혀 봉깨~ 새벽 인디두 계속 돌아다니드라는 겨!

불 질러 놓구 불안혔던가 벼! 안 자구 돌아다니믄서 전화두 계속 안 받으니깨 의심받은 게지!!

그려서 경찰이 집 앞이서 기다렸다 잡었댜."

"자기가 그랬다고 말했데?"

"이이~ 지가 혔다구 혔댜! 승질 나서 휘발유 뿌리구 불 질렀다구 혔댜."

"어휴... 시장이라 사람은 없어도 방화는 죄가 무거울 텐데!"

"여기 시장은 사람두 살어!"

"사람도 살아?"

"그려! 사람 사는 시장 인디 휘발유꺼정 뿌렸응깨 방화에 살인 혐의까지 가중처벌 받을 거랴! 지금 구치소 들어가 있어. 물어줄 돈두 읎다는디 어떻게 허냐 집어 넣으야지."

"합의해도 형사처벌은 받겠네. 방화니까!"

"합의구 뭐구 읎어. 쥐뿔두 없는 눔이여. 몸으루 때운댜."

"어휴~ 가계는 어떤데?"

"이~ 밖이 샤시가 좀 타구. 가계 안이 냉장고는 겉이가 조금 탔는디 뭇 쓰게 돼가꾸 끄집어낼라구.

그려두 물건들은 냉장고 안이가 있어서 하나두 안 탔지! 화재보험 들어둔 거 있어서 보상은 조금 나온댜."

"그래도 금방 꺼서 다행이네! 저번에 불났을 때는 홀랑 다 탔는데..." "그려... 이만허기 다행이지."


"그럼, 엄마! 장사도 못해요?"

"이이~ 조금 때라서 바쁠 때는 아닌디. 가계가 이 모양이니... 청소 허구, 수리 헐라믄 일주일은 걸린댜. 민철이가 나가서 고치구 있어.

엄마는 지금 집이여! 일주일 쉴라구 그런다. 토요일이는 동창회 가기루 혔다."

"어이구! 쉬는 김에 친구들까지 만나게? 엄마 국민학교 동창들?"

"그려. 엄마가 동창이 국민학교밖에 더 있니?"

"어디서 만나는데?"

"대천이서 만나서 안면도 섬이 두 들어갔다가 하룻밤 자구 올라구 그런다."

가계가 불탔는데 동창회 이야기까지 나오니 순자는 신이 난 목소리다.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면 좋겠네~ 엄마! 그럼... 동창회 가기 전에 시간 난 김에 엄마 얘기 좀 들려주면 안 돼요? 글 좀 더 쓰게."

"엄마 얘기? 글 아직 다 안 썼어?"

"어! 다 쓰긴 했는데... 엄마 얘기가 너무 적은 거 같애! 아빠 얘기는 많이 아는데~ 엄마 얘기는 잘 몰라서. 엄마가 얘기해 주면 더 써보려고 그러지! 오래 걸리는데 시간 돼요?"

"그려!! 우리 딸이 글을 쓴다는디 엄마가 얘기 혀 줘야지!"

"그럼 엄마. 언제 시간 되요?"

"내일 아침이 9시쯤 전화 헐래?"

"알았어요. 아침 먹고 전화할게요!"

"그려!"


은주가 처음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순자는 그냥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다. 자기가 하던 일은 내버려두고 자꾸 뭔가를 해보겠다고 시도는 하는 딸이 안쓰러웠었다. 은주는 큰아이가 아프고부터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시간이 나질 않으니, 뭔가를 해보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우울해했었다. 열심히 가르쳐 키운 순자 입장에서는 속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책 한 권을 썼다니 기특하기도 하고 응원해 주고 싶었다.



"그거 뭐 베스트 되면 돈 많이 번다구 그러던디?"

"어휴~ 엄마!! 출간 작가 되기도 힘들어! 베스트 작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돈 벌믄 뭐 헐라구 그러니?"

"음... 글쎄. 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돈 벌면... 집을 사야지! 그리고... 엄마한테 효도해야지!!"

"니가 엄마 헌티 효도 헐라구 그러니? 효도를 워떻게 헐라구?"

"돈 많이 벌면... 엄마 집도 지어드리고 고생 안 하게 돈 많이 드릴라구요."

"니가 엄마 집 지어 줄라구 생각혔니? 그려~ 딸내미가 최고다."

"엄마!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한~ 십 년 걸릴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서 효도할 테니까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다 늙어서 뭘 오래 살겄니... 몸뚱이두 멀쩡허지두 않은디... 너 허구 싶은 거나 열심히 혀라! 너는 잘 헐 수 있을 겨!"


순자가 시간이 나는 동안 은주는 자주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으며 녹음했고 은주는 길고 긴 순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또 다른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엄마. 엄마 어릴 적에는 어떻게 지냈어요? 아주 어릴 적 기억나는 것부터 말해 주세요."

"이이~ 엄마 어릴 적이는... 이... 아주 가난혔지! 쌀밥 먹기두 힘들어서 보리밥 먹구 살었다."

어릴 적을 회상하는 순자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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