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희는 유복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선비였던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버지에게 직접 한자와 일본어를 배웠다.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다. 둘째 오빠가 노름으로 재산을 전부 날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원희는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열여덟에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고 아이 딸린 가난한 홀아비 복만과 결혼했다. 큰오빠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원희는 전쟁을 피해 딸 둘을 낳고 아들 하나를 더 낳았는데 순자가 그중 셋째다.
나라에서 안면도 땅을 내준다는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안면도로 들어갔다. 원희와 복만은 아이들과 복만의 남동생까지 데리고 안면도로 들어가기로 했다. 원희의 언니도 안면도에서 살고 있었다. 순자의 나이 네 살이었다.
복만은 가마솥을 지게에 지고, 짐 보따리를 양손에 들었다. 원희는 막내를 업고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걸었다. 짐은 무겁고, 아이들의 발걸음도 느리니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걷느라 지쳐 칭얼대던 순자는 삼촌 등에 업혔다.
짐을 이고 지고 서천에서부터 며칠을 걸어 광천에 도착했다. 광천에 장날이면 안면도로 들어가는 널따란 장배가 뜬다. 장배를 타고 안면도 이모 집에 도착했을 때 순자보다 한 살 적은 금님이는 마루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새집을 짓는 동안 원희는 언니 집에 짐을 풀었다. 순자와 금님이는 금세 친해졌다.
복만은 옆 동네 나지막한 산 밑에 집터를 다진 뒤 소나무를 베어다가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해 밭을 만들었다.
안면도에서 아들 하나, 딸 셋을 더 낳아 순자네 형제는 모두 여덟이 되었다. 가난한데 자식은 많으니, 밭농사만으로는 살 수 없었다. 원희는 남의 집 논 일을 다니기 시작했고, 복만은 산에서 곱돌을 캐다 구들장용 돌로 다듬어 팔았다.
순자는 열 살이 되어서야 국민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호적 신고를 한해 늦게 한 데다 한 살 늦게 학교에 들어갔으니 열 살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금님이는 순자보다 한 살 적었지만 제 나이에 들어갔으니 한 학년 선배다. 금님이는 학교에서도 꼬박꼬박 순자를 언니라 불렀고 둘은 친구처럼 사이가 좋았다.
학교 가는 길은 논밭을 지나고 산을 넘어 십 리를 걸어야 했다. 새로 산 하얀 셔츠와 검정 치마를 입고,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책과 도시락을 책보에 싸 허리춤에 둘러멨다. 한 시간을 걷는 먼 길이었지만 순자는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점심으로 흰 쌀이 드문드문 섞인 보리밥 위에 김치를 얹어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다. 형편이 좋은 아이들은 쌀밥에 누룽지까지 긁어 왔다. 한 친구가 누룽지를 꺼내 으스대며 친구에게 말했다.
"야! 이 거봐라~ 누룽지다~"
"우아! 나두 즘 주라! 맛있겄다!"
"안돼!! 울 엄마가 아껴 먹으라구 혔어! 이거 쌀밥이여! 우리 집이는 맨~날 쌀밥만 먹는다~"
"어우~! 치사혀! 지 혼저 먹을 거믄서 뭐 헐라구 여까지 가꾸 온겨?"
"배고픙깨 먹을라구 가꾸 왔지!!"
"그러지 말구 쫌만 주라~"
"그러믄... 내 말 잘 들으야 되는겨."
"그려! 니 말 잘 들을 텡깨! 쫌만 주라~"
"그려! 그럼~ 니는 이만큼 먹어! 됐지?"
"오호홍~ 누룽지~ 맛있당!"
"또 누룽지 먹구 싶은 사람 읎냐? 순자! 니도 주까?"
"됐어! 누덜이나 먹어!"
"허!! 저 계집애는 쌀밥두 뭇 먹는 주제에 맨날 잘난 척이여! 나두 니는 안 줄라 혔어! 그냥 물어본 겨!"
순자도 누룽지가 먹고 싶었다. 쌀밥에 누룽지까지 싸 오는 친구가 부러웠지만 얻어먹기 위해 비굴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순자의 집에는 시계가 없었다. 해가 일찍 뜨면 일찍 학교에 가고, 늦게 뜨면 늦게 갔다. 그래도 지각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름에는 수업 시작 전에 학교 운동장에서 한참 놀다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멀지 않은 바닷가로 소풍을 갈 때면 원희는 닭장에 계란을 장에다 팔아 십 리 사탕을 사 주었다. 십 리 사탕은 돌 사탕이라고도 불렸는데 아주 딱딱해 잘 녹지 않았다. 십 리를 걷는 동안 먹을 수 있다 해서 십 리 사탕이라 불렸다. 달콤한 십 리 사탕을 입에 물고 있으면 순자는 행복했다. 밥은 안 먹어도 좋으니 하루 종일 십 리 사탕만 물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동회가 있는 날이면 원희는 부드럽고 납작한 병어에 칼집을 살살 넣어 간장에 조려 도시락에 넣어 주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병어조림은 꿀맛이었다. 순자는 그 맛을 잊지 못해 고이도로 시집와서도 병어조림을 자주 해 먹었다.
뱃일하는 섬사람들은 부자도 많았지만 순자네 집은 나라 땅에서 사는 데다 섬사람이지만 배 한 척 없는 가난한 농부였으니 생선 반찬도 구경하기 어려웠다. 고기는 오랫동안 기른 돼지를 잡는 날이라야 먹을 수 있었다.
밀 농사를 지어 장에다 팔고 남은 것을 가져올 때면 칼국수나 전병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4학년 담임 김정치 선생은 공부도 잘하고 귀엽게 생긴 순자를 유난히 예뻐했다.
순자가 학교 오는 길에 들꽃을 꺾어다 선생님 책상에 꽂아 두면 같은 반 미화가 유독 샘을 냈다.
미화는 서울에서 온 선생의 딸이다. 욕심이 많고 여우짓을 잘했던 미화는 순자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틈만 나면 시비 걸고 험담도 했다.
"순자 저 계집애는 선생님이 예뻐한다고 더럽게 잘난 척이야! 재수 없어!
선생님 책상에다 꽃은 왜 꽂아 놓는 거야? 어우~ 눈꼴셔서 봐줄 수가 없네! 안 그러니?"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미화는 6학년 일진을 데리고 방개고개 언덕에서 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순자! 너 이리 와 봐!"
"왜 그려?"
"왜 그러냐구? 몰라서 물어? 야 이년아! 네가 그렇게 잘났어? 어?
네가 뭔데 선생님이랑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지랄이야!"
"비켜! 집이 가야 혀!"
"가긴 어딜 가 이년이!"
미화는 순자를 힘껏 밀쳐 쓰러트렸다.
"이 씨!! 왜 밀치구 그려!"
순자는 미화를 째려봤다.
"뭘 째려봐~ 이 재수 없는 년! 뒤지게 맞아봐야 정신 차리지! 어?"
미화는 순자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고 일진은 옆에서 낄낄대며 웃었다.
괴롭혀도 기죽지 않는 순자가 못마땅했던 미화는 계속해서 방개고개를 지키고 서 있었다. 폭행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순자는 무서워서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머리를 뜯기고 코피 터져 오는 딸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원희는 미화네 집으로 쫓아갔다.
"미화 이 눔 계집애 나와 보라고 혀! 아니! 선생 딸이믄 다여? 이?"
"아이고 어머님! 무슨 일이세요?"
"애를 어쩌케 가르쳤간! 넘으 자슥을 맨날 두들겨 팬댜?
이 썩을 노무 계집애 워딨어! 이? 내가 오늘 이 노므 계집애 다리몽댕이를 뿌러뜨려 버릴 테니 깨!
미화 이 쌍 노므 계집애 얼른 나오라구 혀!!"
마당으로 뛰어 내려온 미화 엄마는 미화를 찾는 원희를 붙들고 말리며 말했다.
"아유~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어머니~ 진정하세요!
미화가 친구를 때렸군요! 아이고~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단단히 혼을 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노여워 마시고 여기 좀 앉아 보세요~"
그녀는 미화와는 달리 얌전하고 점잖은 사람이었다. 잘 타이르겠다고 미안하다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니 원희도 더 이상 화낼 수 없었다. 원희는 미화 낯짝도 보지 못했지만 이만하면 됐겠지 싶어 미화 엄마를 믿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엄마에게 혼이 난 미화는 잔뜩 독이 올라 또 방개고개를 지키고 서 있었다. 흠씬 두들겨 맞은 순자는 그날 이후 4학년이 다 지나가도록 학교에 가지 않았다.
김정치 선생이 금님이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그래. 네가 금님이구나! 네가 순자 사촌이니?"
"예!"
"순자는 언제 학교에 오니?"
"글쎄요. 집이 그냥 있겄다든디요."
"미화는 전학 가기로 했으니까, 순자한테 학교 나오라고 해라. 네가 사촌이니까 순자 좀 데려올래? 학교는 계속 다녀야 할 거 아니냐!"
미화의 전학 소식이 반가웠던 금님이는 힘차게 대답했다.
"예! 지가 가서 데꾸 오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가봐라!"
금님이에게 김정치 선생의 말을 전해 들은 순자는 신이 나 학교에 갔다. 결석 일수가 많기는 했지만, 선생의 배려로 유급되지 않고 5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한창 공부하지 못했던 순자는 5학년 첫 시험에서 꼴등을 했다. 항상 상위권이었던 순자는 자존심이 상해 미친 듯이 공부했고 2학기 시험에서는 10등을 하게 되었다. 선생은 순자를 앞으로 불러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여러분! 이번 시험에서 37등이나 올라간 친구가 있어요! 자! 다른 친구들도 분발하면 이 친구처럼 성적을 올릴 수 있겠죠! 최순자! 앞으로 나와봐라! 자! 열심히 노력한 친구를 칭찬해 줍시다! 박수!!"
순자는 이후 미술 그리기 대회에 나가 동상을 탔고, 주산 대회에서도 은상을 탔다. 6학년 졸업 때는 우등상도 받고 졸업했다. 하지만 순자의 푸르고 꿈같은 학교생활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형제들도 모두 국민학교만 졸업했으니 어려운 형편에 순자는 중학교를 가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국민학교를 끝까지 다닌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하지만 순자는 중학교에 다니는 금님이가 부러웠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을 듣고 공부를 하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금님이가 쓰던 교과서를 받아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했다. 혼자 공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 이상 방송을 따라갈 수가 없게 되면서 결국 검정고시를 포기하고 말았다.
순자는 이제 원희가 일을 나가면 학교에 가지 않는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했다. 막내가 젖 먹을 시간이 되면 등에 업고 동생 성자를 데리고 옆 동네로 일 나간 원희를 찾아갔다.
모내기가 한창인 논길을 걷다 보면 일꾼들은 점심을 먹으려고 논두렁에 나와 있었다. 원희가 막내 젖을 주는 동안 순자와 성자는 어른들 사이에 끼어 밥을 얻어먹었다.
흰쌀밥에 나물 반찬이었다. 볕에 말려 찐 커다란 먹갈치도 있었다. 살이 두툼한 먹갈치는 토막을 냈는데도 손바닥보다 큰 것이 먹음직스러웠다. 젖먹이 동생 덕분에 맛있는 먹갈치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순자의 고모 경숙은 서울 시흥동에 살았다. 남편이 운수업 회사 상무로 일을 해 꽤 잘살았다. 서울로 올라와 집안일을 도와주면 월급을 주겠다는 경숙의 말에 열일곱 살 순자는 서울로 올라갔다.
밥과 청소는 물론이고 아이들을 돌보며 똥 기저귀도 직접 빨았다. 온갖 궂은일은 다 했지만, 경숙은 순자에게 약속한 월급을 주지 않고 계속 미뤘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서울 변두리로 이사를 갈 때도 따라갔지만 여전히 월급은 주지 않고 일만 시켰다. 순자는 집에 가겠다며 밀린 월급을 달라 말했다. 경숙은 어디를 네 마음대로 가느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순자는 경숙이 무서웠다.
순자는 경숙이 없는 틈을 타 버스를 타고 상계동 큰오빠 덕수의 집으로 도망쳤다.
경숙은 순자를 찾아 상계동으로 왔다. 순자는 뒷산으로 도망쳐 숨어있다 날이 저물면 내려왔다. 갈 때마다 순자를 찾을 수 없었던 경숙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경숙에게 돈 한 푼 받지 못한 순자는 여기저기 다른 집 식모 일을 하다 열아홉 살에 다시 안면도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