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곰 같은 며느리의 시집살이

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by 온벼리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스무 살의 봄이다. 순자는 선을 보게 되었다. 안면도 나배라는 동네에는 영식의 고모가 살고 있었다. 영식의 고모 아들과 순자의 큰오빠는 친구다. 영식의 고모는 중매를 서고 싶은데 고모가 중매 서면 못 산다는 말이 있어 아들을 시켜 순자와 영식의 중매를 서게 했다.


나배로 찾아온 곱상하고 잘생긴 얼굴에 양복도 말끔하게 차려입은 영식은 가르마를 가지런히 빗어 넘긴 모습이 순자의 눈에는 귀공자처럼 보였다. 영식의 사촌 형이 말했다.

"워뗘! 우리 영식이 잘생겼지? 순자보다 시살 많응깨! 딱 좋네이~ 넘으 집은 다 굶어두 영식이네는 곳간에 쌀이 썩어 나는 집이여~ 먹구 살 거는 걱정 안혀두 댜!"

그는 영식의 집이 부자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가난하게 자란 순자는 쌀이 썩어 나는 집이라는 말이 그리 좋게 들렸다. 먹고살 걱정은 없겠다 싶었다.


영식을 두 번 더 만났다. 순자는 부잣집에 잘생기고 멋진 남자 영식과 결혼을 결심했다. 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영식의 말에 그해 6월로 서둘러 결혼식 날을 잡았다.


안면도에서 전통 혼례를 치르고, 사진관에서 얼굴만 합성해 만드는 신식 결혼사진도 찍었다.


고이도에 들어가 살다 보니 곳간에 쌀이 썩어 나는 집은 영식의 집이 아닌 영배의 집이었다. 영식의 아버지가 아프기 전까지는 영식의 집도 부자였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눕게 되자 어머니 길려는 양자인 큰아들과 살 요량으로 재산상속을 서둘렀고 좋은 것은 모두 영배에게 주고 영식은 살던 집과 작은 땅만 물려받게 했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누운 지 오래됐고 재산도 이미 영배에게 다 넘어갔으니, 곳간에 쌀이 썩어 날 리 없었다. 시어머니는 둘이고, 돌봐야 할 동생이 셋이나 있는데 장애를 가진 동생도 있었다. 순자는 속아서 결혼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양자로 들어돈 영배는 남이 아니었다. 은주는 양자라고 해서 여태 남이라 알고 있었지만, 영배는 작은할아버지의 첫째 아들이었다. 조카를 양자로 들인 것이다.


월출의 둘째 동생은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낳았다. 그는 자식들을 돌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월출에게 집 지을 돈을 받아 아편을 했고, 배를 산다며 받은 돈으로 또 아편을 했다.


자식이 없는 월출에게 첫째 아들을 양자로 주고 거래라도 하듯 돈을 수시로 요구했다. 월출이 더 이상 돈을 주지 않자, 동네방네 욕을 하며 다녔다.

"월출이 저놈은 내가 새끼를 안 줬으믄 논두렁을 비구 죽을 놈인디! 염병헐~ 내 새끼 가져가 놓구 돈두 안 주구~ 지 혼저 처먹구 잘 살겄다구~ 퉤!! 썩을 놈의 새끼! 워디 을메나 잘 사는지 두구 볼 겨!"

두고 보겠다던 그는 아편으로 몸이 상할 대로 상해 오래 살지 못했다.


아들이 더 필요했던 월출은 둘째보다 더 일찍 죽은 셋째 동생의 처를 첩으로 들였다. 셋째 동생에게도 자식이 있었으니, 월출의 족보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월출은 사촌들이 영식을 서자라 무시할까 봐 사촌들보다 윗동네에 살아야 기가 눌리지 않는다며 마을의 가장 윗동네에 집을 짓고는 아예 눌러앉았다. 그런 월출을 보며 길려는 이를 갈았다.


월출이 중풍으로 눕게 되자 영배와 영식의 재산 분할을 할 때 길려는 영배의 편을 들었다.

"나는 느의 아베 죽구 나믄 영배랑 살란다. 맏이는 제사두 드리고 재산두 원래 다 물려받는 겨. 영배가 니두 재산 준다니 깨! 형님이 주는 대루 받어! 알겄지?"

세상 물정 몰랐던 열네 살의 영식은 영배와 길려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정말 주는 대로 받았다.

월출의 오랜 투병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졌지만, 누구 하나 영식과 영식의 동생들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영식은 동생들까지 먹여 살리느라 학교도 가지 못하고 어릴 적부터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재산을 일찍 물려받은 영배는 집이 세 채였다. 안면도에 어장 할 때 머무르는 집 한 채, 홍성에 영배의 본처와 자식들이 사는 집 한 채, 고이도에 영배와 영배의 첩이 어린 아들 종호와 함께 사는 집 한 채가 있었다. 길려는 월출이 죽고 나면 그나마 말이 통하는 홍성 며느리와 함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월출의 투병 기간은 길었다.


월출은 꼼짝 못 하고 대소변도 누워서 해결해야 했다. 해가 뜨기도 전부터 초롱을 들고 마실 다니기 좋아했던 길려는 월출을 두고 수시로 밖으로 돌아다녔다. 길려가 나갔다 들어오면 월출은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해댔다.

"이년! 워디 갔다가 이제 온겨! 이년!!

남편이 아프믄 집이 가만히 들어앉아서 돌봐야 헐 거 아녀!

어디 싸돌아 다님서 며느리가 시아베 똥꺼정 닦게 만들구 그려~ 이년!!

내가 며느리 보기 챙피혀서 살겄냐~ 이년!!"

월출이 대변을 보면 허구한 날 집을 비우는 길려를 대신해 순자는 시아버지의 대변을 닦아 줘야 했다. 몸은 불편했지만, 정신이 온전했던 월출은 며느리 보기 부끄러워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길려의 옷이 찢어지도록 쥐고 흔들었다.


동네에서 월출의 별명은 까치였다. 부인이나 자식들이 잘못하면 윗동네에서부터 아랫동네까지 내려오며 내내 욕을 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알아야 한다며 깍깍 떠들어 댄다고 사람들은 까치라 별명을 붙여주었다.

중풍으로 누워 있지만 성질은 여전했으니 허구한 날 돌아다니는 길려를 보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중풍보다 화병으로 먼저 죽을 판이었다.


길려는 좋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러니 좋은 시어머니도 어림없는 소리다.

여성스럽고 고운 외모의 길려였지만 샘이 많고 까탈스럽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매일 마루에 광이 나도록 순자에게 걸레질을 시켰고 집안에 먼지 한 톨 용납하지 못할 만큼 깔끔을 떨었다.

수더분하고 곰 같이 굼뜬 순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사사건건 모질고 날카롭게 굴었다. 영식이 미웠으니, 순자가 미운 것도 당연하겠지만 모든 화풀이를 며느리에게 해대는 통에 순자의 시집살이는 고되기만 했다.


시집온 지 2년도 안 된 스물두 살 2월에 첫째 아들이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죽었다. 그해 8월에는 월출이 중풍으로 누운 지 11년 만에 이른 한 살의 나이로 죽었다.


길려는 월출이 죽자 기다렸다는 듯 짐을 싸 들고 홍성으로 갔다. 남편을 첩에게 빼앗긴 홍성 며느리는 이미 술 주정뱅이가 되어 있었다. 시어머니 대우는커녕 주정뱅이 며느리의 시중을 들어야 할 판이었으니 길려는 홍성에 있는 것이 편치 않았다. 자기 덕에 재산을 얻어 이만큼 살게 되었는데도 고마워하기는커녕 허구한 날 술 처먹고 큰소리만 치고 있으니 길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홍성에서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몇 년을 지내던 길려는 순자가 막내아들 민철이을 낳자, 아들을 봐줘야 한다는 핑계로 고이도 영식의 집으로 돌아왔다.


영배는 길려를 모시려 하지 않았고, 제사도 자신의 친부모 제사만 드렸다.

기세등등하고 시끄러웠던 길려는 기가 죽어 예전만큼 심하게 시집살이를 시키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잘해줄 리는 없었다. 여전히 며느리와 아들을 업신여기고 흉을 보며 다녔고, 손주들을 대할 때도 따뜻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길려가 예순셋의 나이로 죽자 영배는 그제서 자기가 모셔가 장례를 치르겠다고 영식에게 말했다.

"형님이 어머니 장례 모신다는디? 워쩔 겨?"

순자는 이제 와 생색내려는 꼴이 우스웠다.

"재산만 가져가 놓구! 살었을 때는 거들떠두 안 보드만 이제서 뭘 모신다구 그려?

됐다 그려! 내가 제사꺼정 다 모실 테니깨. 필요 읎다구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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