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영식과 순자는 바둑이나 오목 대결을 자주 벌였다. 바둑은 승률이 비슷했지만, 오목은 그렇지 않았다. 영식은 자신이 이길 때면 순자의 이마에 가차 없이 딱밤을 날리며 통쾌해했지만 지고 나면 바둑판을 업어 버리거나 딱밤을 때리려는 순자의 손목을 붙잡고 낄낄대며 씨름했다. 그깟 딱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패배를 인정하기 싫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오목 따위로 지능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승리 뒤에 따라오는 우월감과 인정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식은 자주 순자에게 지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지켜보던 자식들이 순자가 지능이 더 높다는 암묵적인 결론을 내리자, 영식의 속은 꼬일 수밖에 없었다. 순자도 이런 상황을 은근히 즐겼다.
은주는 영식을 닮았고 은경은 순자를 닮았다고 했다. 영식은 오목에 관심을 보이는 은주의 선생을 자처하며 자기를 닮아서 이해가 빠르고, 똑똑하니 자기가 가르쳐야 한다고 우쭐댔다. 일찍부터 오목을 배운 은주는 반 친구들과의 오목대결서 매번 일등을 했고 은경과의 대결에서도 매번 승리를 거뒀다. 영식은 역시 자신의 유전자가 순자의 유전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신나 했다. 영식은 은주의 승리에 대리만족을 느꼈지만, 영식의 유치한 싸움에 피해자는 따로 있었다.
은경은 은주보다 두 살 많지만, 생일이 빠르다는 이유로 학교에 조기 입학해 3학년 차이가 났다. 5학년이었던 은경은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사촌 동생 유란이 집에 자주 놀러 다녔다. 유란은 예쁘장했지만 앙칼지고 되바라져 은경을 할퀴거나 꼬집어 피가 나고 멍들게 했다. 영식은 동생이랑 놀면서 맨날 당하고만 온다며 은경을 타박했다.
은경은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성적도 좋지 않은데 결정적으로 아이큐 검사까지 낮게 나왔다. 영식은 은경이 머리가 나빠 심부름도 똑 부러지게 하지 못한다며 화를 냈다. 은경의 미련함을 견딜 수 없다며 아예 심부름도 시키지 않겠다 선언해 버렸다. 그리니 사소한 심부름조차 은주의 몫이 되고 말았다.
"어이구~ 저 못 난 계집애!! 누굴 닮어서 저 모양이여?"
순자 너를 닮아서 애가 이 모양이라고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은경의 이름은 '뭇난 계집애'라도 되는 듯 영식은 은경을 타박할 때마다 그리 불렀다. 날이 갈수록 더해가는 꾸지람에 은경은 영식을 피해 다녔고 어쩌다 영식 앞에 서게 되면 주눅 들어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식과 순자의 대결은 은경과 은주의 대결로 불씨가 옮겨붙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은주는 은경이 만든 대결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은경은 은주에게 자주 싸움을 걸었고 영식에게 듣는 꾸지람의 화풀이를 은주에게 쏟아 내며 빚쟁이처럼 굴었다.
은경은 은주의 별명을 지어 주겠다고 자청했다.
"야! 너는 이름에 '주'자가 들어갔으니까 '주댕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주댕이!! 크크크큭. 주댕이! 너~무 웃긴다~"
은경이 말하는 주댕이는 입을 가리키는 속된 말로 '저놈에 주둥이'라는 의미다. 애정 어린 별명을 빙자한 돌려 까기였다. 은주가 기분 나빠하자, 선심이라도 쓰는 듯
"야! 그럼~ '이'자는 빼고! '주댕'이라고 해줄게!! 야~ 주댕! 됐지?? 크크크..." 은주의 기분이야 나쁘든 말든 은경은 이후로 은주를 부를 때마다 "야! 주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유란이가 집으로 놀러 오면 은경은 은주도 놀이에 끼워 주었다. 모든 주도권을 가진 유란이가 의견을 말하면 은경은 은주에게 지시했다. 작은방에서 시작한 연극 놀이는 할머니 역에 은주, 할아버지 역에 은경, 해설은 유란이었다.
뚱뚱하고 거대한 할머니의 요강도 할머니만큼 거대하다. 요강 안에서 잠이든 왜소하고 마른 체격의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방귀 소리를 천둥으로, 소변을 비로 착각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로 했다.
"야 주댕. 할머니는 뚱뚱하니까 너 이거 다 입어야 돼!"
은경은 서랍을 열고 옷을 한 무더기 끄집어냈다. 위아래로 겹겹이 껴입는 은주의 꼴을 보며 은경과 유란은 낄낄거린다. 팔다리가 빡빡해지도록 껴입으니,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럽다.
조그만 나무 상을 뒤집어 요강을 대신하기로 했다. 은경이 상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으려다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갑자기 일어나며 말했다.
"야! 주댕!! 니가 할아버지 해라."
"아~ 왜!! 할머니 하라메! 옷도 이렇게 다 껴입었잖어!"
"니가 쪼그맣잖아... 내가 저 좁은 데를 어떻게 들어가냐! 나한테는 너무 좁아~"
"그럼 진작에 할아버지 하라고 할 것이지!!"
"야!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 아! 빨리 입은 옷 다 벗고 상으로 들어가!!"
은주는 또 한참을 끙끙거리며 겹겹이 껴입은 옷들을 벗느라 고생했다. 역할을 바꾼다더니 은경은 옷을 껴입지 않는다. 은주는 시키는 대로 뒤집힌 상으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았다.
"야! 고개도 숙여!! 완전히 숙이고 쪼그리고 들어가!!"
다리를 부둥켜안고 공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야 했다. 마르고 작은 체구였지만 공벌레가 되어 상다리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은 뻐근하고 웅크린 몸은 숨쉬기도 불편했다. 은경은 은주를 깔고 앉아 할머니 역할을 하겠다며 입으로 "뿡~" 방귀 소리를 내고 "쉬~"하고 소변 소리를 낸다. 유란과 은경은 둘만 즐겁다.
"야 주댕! 니가 할아버지 대사 해야 할 거 아냐! 왜 안 해!!"
"아... 야... 무거워... 나 너무 힘들어."
"야 주댕. '어? 천둥이 치네!'라고 하라구!"
"아!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못 하겠어! 일어나! 비켜! 숨쉬기도 힘들어! 비키라고~ 나 그만할래~"
은주는 위에 올라앉은 은경을 밀쳐내며 벌떡 일어났다.
"야! 이 새끼야!! 그렇다구 갑자기 밀치면 어떻게 해. 너 땜에 내가 쓰러졌잖아!"
"힘들다고!! 안 할 거라고!"
"그럼 너랑 안 논다~"
"됐어! 안 놀 거야! 힘들어서 못 하겠어! 왜 나만 맨날 힘든 거 시키는 건데?"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싫어! 재미없어! 너희끼리만 재밌잖아!"
"야 이 새끼야!! 뒤질래?"
땀을 뻘뻘 흘리며 일어나 깊은숨을 들이쉬는 은주를 향해 은경은 힘껏 발길질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거나 반항하면 은경은 으레 발길질로 응징하고는 했다.
약골인 은주는 은경이 밀어붙이는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죽을힘을 다해 덤벼 보지만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든지 엄마에게 이르면 끝날 것을 융통성 없는 은주는 은경에게 맞서다 결국 흠씬 두들겨 맞는 꼴이 되고 만다. 일방적으로 맞던 은주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으아~~~ 으아~~~ 엄마!!!!" 충분한 응징으로 속이 후련했던 은경은 줄행랑을 치며 혀를 내밀어 놀리는 여유까지 부린다.
은주의 울음에 놀란 순자는 작은방에서 뛰어나오는 은경에게 물었다.
"왜 그려??"
"아냐 엄마~ 지가 성질 나서 괜히 그러는 겨!"
은경은 벌써 멀찍이 도망가 거짓말을 대충 던지고는 유란과 대문 밖으로 잽싸게 뛰어나갔다. 오래 설명했다가는 탄로 날 것이 뻔하니 얼른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었다. 억울하게 맞기만 한 은주는 화를 참지 못하고 도망가는 은경의 뒤통수에 대고 발악했다.
"으악~~~ 이 개새끼야~~ 으악~~~"
"왜 또 싸우구 그려~"
"으악~~~ 저 새끼가! 으악~~~ 야 이 씨발놈아~~~ 이 개새끼야~~"
이미 흥분상태인 은주는 폭발하는 분노를 내뿜느라 바빴다. 약이 바짝 올랐으니, 욕이라도 목청껏 퍼부어야 했다. 악쓰며 욕만 하는 은주를 보며 순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은주에게 욕을 가르친 것은 은경이었다.
"야 주댕... 너는 욕 할 줄두 모르냐? '개! 새! 끼!' 해봐!"
"싫어! 나는 욕 안 할 거거든."
"야 이 새끼야. 욕두 헐 줄 알어야 허는 거여~ 그래야지 무시 안당허지! '개! 새! 끼!' 해보라구!!"
은경은 은주에게 개새끼와 씨발놈을 가르쳤다. 은주는 평소에는 욕하지 않지만 은경에게 얻어맞고 치밀어 오르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때면 욕했다. 욕을 꼭 써야 한다면 이렇게 억울하고 화나는데 말까지 통하지 않는 상황에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순자는 눈에서 불을 뿜으며 욕을 퍼붓는 은주를 보며 말했다.
"어이구~ 저 오랑캐 같은 눔에 새끼... 뭔~ 욕을 저렇게 헌다나? 어이구~ 미치구 환장허네!"
은주는 그 와중에 엄마가 자기더러 오랑캐라고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을 따질 정신은 없었다.
은경은 자신이 가르쳐준 욕을 자신이 먹는 꼴이 됐지만 두들겨 패고 도망가는 입장에서 은주가 불쌍하게 울면 나중에 집에 돌아왔을 때 혼날 게 뻔했다. 은주가 욕하며 발악을 해주니 이 싸움은 은주가 혼나는 것으로 끝이 날 것이다. 그까짓 욕 좀 먹는 것은 괜찮았다.
은주는 자신의 말은 제대로 들어 보지도 않고 오랑캐라고 말하는 순자도 한통속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