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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Nov 09. 2023

그래. 우리 결국 결혼했구나!

에세이 - 이뻔소


 시흥 집을 정리하고 민수의 집으로 들어갔다. 민수는 방 두 개짜리 빌라 월세방에서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남자 둘이 사는 집에 들어가 살게 된 것이다. 민수는 친구에게 내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상의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갑작스러운 동거를 그는 상당히 불편해했다.


 민수는 혼자 사는 것이 싫어 친구에게 같이 살자고 했고, 친구는 보증금의 오분의 일을 보태고 같이 살고 있었다. 이래라저래라 말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는 우리의 동거가 싫었던 것이다. 워낙 사람을 가리는 성격인 데다 성별까지 다른 인간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으니 싫을 수밖에. 민수는 그런 친구에게 차마 방을 비워 달라는 말까지 할 수는 없었다.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지만 소심하고 속이 좁았던 건넌방 친구는 자기 방을 동굴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부엌에 있던 살림을 방안으로 모두 끌고 들어가 잠자리를 빼고 나머지 자리에 빼곡히 쌓아 두고는 방 안에서 버너로 요리를 해 먹기 시작했다. 인사는커녕 마주치지 않으려고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았다.

 '원래 사회성이 심하게 떨어지나 보다! 좀... 많이 지질하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로 인해 둘 사이가 멀어진 것도, 집이 두 개로 나뉜 것도, 무엇보다 불청객 취급을 받는 것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했다.

 민수는 원래 그런 친구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기는커녕 숨어들고 있는 꼴이 보기 싫어 건넌방 친구와 담을 쌓기 시작했다.

 존재감 없었던 건넌방 친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령이 되어갔고 언제 자고, 언제 먹고, 언제 나가는지 알 수 없었다.




 회사에서도 눈치를 봐야 했다. 같이 산다고 밝힌 것도 아닌데 출근까지 같이 하게 됐으니 사람들의 시선에 마음은 가시방석이었다. 내가 탄 배의 선장은 내가 아니라 민수였으니 나는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말 나의 보호자라도 된 것 같았다.


 회사의 금전적 여건이 좋지 않아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한두 달 밀려 나오던 월급이 몇 달째 밀려도 사장은 미안함이 없었다. 가망이 없었다는 것을 알아챈 민수는 노동부에 임금체불 신고를 하고 나를 데리고 회사를 나와 버렸다. 사장은 나까지 데리고 나간 것이 괘씸하다며 밀린 월급을 끝까지 주지 않았다.


 같이 나오기는 했지만 또 같은 회사를 들어갈 수는 없었다. 새로운 직장을 구했고, 오래 다니지 못했다. 웹 디자인이 죽도록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민수도 여기저기 회사를 옮겨 다녔다. 둘 다 오랫동안 일거리가 없을 때 민수는 대리운전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편리한 시대지만 그때는 1588-xxxx 같은 업체에 등록하고 콜센터에서 전화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하루에 두건도 어려웠으니 생활은 팍팍하기만 했다.


 민수의 사랑으로 마음의 벽은 무너졌지만 감춰져 있던 불안한 자아가 마음을 휘젓기 시작했고 나는 민수와 자주 다투기 시작했다.

 민수의 집이 내 집일 리 없었고, 소심한 건넌방 친구도 나를 계속 손님으로 만들었다. 다투고 나면 집을 나와 찜질방으로 향했다. 가출이 잦아지니 민수는 내가 예전 남자에게 돌아갈까 봐 마음을 졸였다.


 불안정한 2년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결혼을 결심했다. 소심한 건넌방 친구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방을 빼줘야 했다. 쓰레기와 담배연기로 가득했던 건넌방은 벽과 천장이 검게 변해 있었다. 서쪽으로 난 창문은 다용도실 창문을 한번 더 거쳐서 해가 들어왔다. 주인을 닮은 그늘진 방이었다. 나는 그 방이 싫었다. 친구가 나간 이후로 민수의 책상만 덩그러니 옮겨 놓고 들어가지 않았다.




 가끔 찾아오는 사주를 본다는 민수의 이상한 친구는 막 결혼식을 마쳤을 때 내게 말했다. 아기를 빨리 가지라고... 그렇지 않으면 둘은 이혼하게 될 거라고...

 범상치 않은 민수의 친구는 스님이 되겠다고 했다. 그는 속세가 싫다지만 깊고 넓고 금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술을 좋아하던 땡중 친구는 우리의 관계를 걱정했고 가끔 찾아와 이런저런 돌멩이를 퐁당퐁당 던지고 갔다.


민수는 전생에 장군이었고 너는 팔방미인 기생이었다.

 내가 이리저리 팔방으로 미인인 것은 알겠는데 기생은 또 뭔가?? 썩을... 그럼 너는 내시였나?


너의 조상과 민수의 조상이 서로를 맺어주려고 찾아왔고 이제 맺어졌으니 하늘로 올라갔다.

 둘 다 결혼 못할 운명이었다는 건가? 겨우 결혼시키자고 조상까지 내려오나? 언제는 헤어지라더니 이제는 조상을 들먹이나? 그 조상이 우리 아빠냐고 물었더니 그건 또 아니란다.

"이보게! 민수의 친구! 하늘로 가신 조상중에 내가 애정을 가진 조상은 아빠 밖에 없네! 그리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 테니 그들은 얼씬도 말라고 전하게!"

민수는 큰 단점이 있는데 장점이 그것을 가려 남들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장점 없고 단점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나? 나도 단점이 있지만 더 큰 장점이 많다네!


민수는 기가 세서 견딜 여자가 없는데 너는 기가 더 세서 그걸 견디고 살 거다.

 칭찬은 아니군! '너는 참고 살 수 있을 거야 하이팅!'이라는 건가?

너는 천성은 착한데 성질머리는 죽이고 살아야 할 거다.

 결국 내가 참고 살라는 소리였군!

 둘을 위한 조언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설교였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티 나게 편드는 그는 영락없는 민수 친구일 뿐이다.

 위한답시고 함부로 떠드는 사람이었으니 그의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중 이혼할 거라는 말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봐도 우리 사이는 불안했다.

 나는 민수와 상의도 없이 아이를 계획했고 결혼 2개월 만에 아이가 생겼다. 우린 인천으로 이사했다.


 아이가 생기니 불안과 우울은 사라지고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여섯 달의 입덧 기간은 고통스러웠지만 태동을 느끼며 행복했고 책임감과 모성애로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요에 못 이긴 민수는 서툴고 어색하게 뱃속의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은 초음파 사진이 전부였으니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달이 한참 지나고 배 밖까지 전해지는 아이의 발길질을 느끼자 그제서 실감하며 기뻐하기 시작했다.


 출산 과정은 쉽지 않았다. 진통이 왔지만 의사는 일정대로 유도분만을 진행했다. 처음부터 강도 높은 진통이 왔고 8시간을 기다려도 아이는 소식도 없고 양수는 터졌다. 고통은 더 심해지는데 남은 시간은 너무 길었고 내 체력은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수술을 결정했다. '아! 이러다 죽는구나!' 싶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민수는 어쩔 줄 몰라 눈물 콧물 흘리며 소리 내 울고 있었다. 이 남자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숨이 넘어갈 것 같았던 그 와중에도 나를 걱정하며 우는 모습에 나는 또 감동했다.


 아이가 태어났다. 민수는 내가 수술실에서 있을 때 막 태어난 아이를 먼저 보고 '와! 이 꼬맹이가 우리 아이구나!' 감탄사를 연발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몰골을 하고 마취 후유증으로 구토까지 하고 있는데 민수는 마냥 행복한 얼굴로 아기 동영상을 보여주며 신이 났다. 내가 죽을 뻔했던 것은 금세 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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