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이뻔소
브레이크 고장 사건 이후 우리 사이는 달라졌다. 마음을 들켜버린 그는 나의 작은 입김에도 팔랑거렸고 속수무책으로 끌려왔다.
깨물어 준다며 장난처럼 뱉었던 말은 그가 나의 마음에 들어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김 과장에게 물었다.
"저한테 관심 없다면서요?"
"그건 그냥 한 소리고요! 관심 엄청 많죠~ 내가 주희 씨 처음 왔을 때 정훈 씨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정훈은 같이 일하는 남자 프로그래머이다.
"뭐라고 했는데요?"
김 과장은 신이 나서 말했다.
"내가 저 여자한테 관심 있으니까 눈길도 주지 말라고 했죠!"
그는 나의 똘망 똘망하고 반짝이는 눈빛이 너무 좋다는 고백을 했다.
"근데 왜 관심 없다고 했어요?"
"사내커플은 안 한다고 하니까! 그리고, 또 나한테 관심도 없는 것 같고!"
"그러게요... 사내커플은 안 좋은데..."
"나는 같이 있으니까 좋은데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좀 그렇기는 하죠!"
"헤어지면 또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요?"
"음... 회사를 그만둬야 되나? 음... 헤어지지 않으면 되죠!"
"으이그~ 그게 맘대로 되나요? 헤어지면 나 자르는 거 아니에요?"
"헤어지지 않는다니까요!!"
"아이고~ 미친다. 그렇게 좋아요?"
"네!! 그렇게 좋습니다!! 주희 씨는 나 안 좋아해요?"
"저는 김 과장님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왜요?"
"너무 못생겼잖아요!"
"아~ 네~ 저도 제가 못생긴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상처받았어요?"
"아뇨! 저는 그런 거로 상처 안 받습니다. 주희 씨만 예쁘면 됐죠!"
"아유~ 마음은 예쁘시네요."
그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우린 사귀자는 말도 없이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그가 옆을 지키며 기다리고 있었던 덕에 자연스럽게 감정은 그에게로 흘렀다.
그의 기다림은 자꾸 나를 뜬금없이 움직이게 했다. 어느 날 일하다 말고 김 과장을 밖으로 불렀다.
"잠깐만 나와 보실래요?"
"왜요?"
"잠깐만 나와 보세요!"
내가 그를 불러낸 곳은 화장실이었다. 장소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회사 어디에도 둘만 자유롭게 있을 만한 곳은 없었다. 남녀 공용이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두 개의 문으로 나뉘는 작고 일반적인 화장실이었다.
김 과장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 말했다.
"화장실은 왜요? 여길 같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사람들 안 보는 데가 여기밖에 없네요!"
"뭐 하려고요?"
"진짜 깨물어 주려고 그러죠!"
"에???"
그의 동공이 또 심하게 흔들렸다. 나의 뜬금없는 도발에 그는 또 놀랐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화장실 문을 얼른 잠갔다. 키스를 하려고 다가가자 그는 얌전한 강아지 마냥 눈만 끔뻑거렸다.
걱정과는 다르게 아침부터 퇴근 시간까지 종일 붙어있어도 우린 각자의 일에 충실했다. 그러다 가끔 불러내면 그는 시간차를 두고 쪼르르 따라 나왔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제자리로 돌아가 일을 했다.
어느새 그는 적극적으로 나를 끌어안았고 키스만으로는 성에차지 않는지 여기저기 만지려 했다. 나는 그의 손을 떼어내며 선을 그었다.
"안 돼요! 거기까지!"
"으......"
"안 돼요~ 더 이상 안 된다고요!!!"
"으아...... 미치겠네!!!"
"저 먼저 들어갑니다! 조금 있다가 들어오세요~"
"아이고~~"
아쉬움이 쉽게 가시지 않았던 그는 밖에서 한참 줄담배를 피우다 들어왔다.
밀당을 하거나 약 올리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가는 곳까지만 갔고 마음이 가지 않는 곳에서 멈췄을 뿐이다. 김 과장은 나의 도발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내가 멈추면 그도 멈추고 기다렸다. 그러면 나는 또 나의 걸음을 존중해 주는 그가 고맙고 좋아서 한참을 바라봤다.
우리가 커플이 된 것을 회사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안다는 것을 김 과장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만 사내커플을 반대했던 내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까봐 알고도 모른 척했던 것이다.
매일 같이 퇴근하는 것은 충분히 의심스러웠을 것이고 말없이 교환하는 눈빛만 봐도 둘 사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공식적이지 않았을 뿐 모두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일하는 스타일이 많이 달라 가끔 충돌했다. 의견이 충돌하면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부하직원임에도 불구하고 할 말 다하며 따지고 들었고, 두 마리 토끼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내게 뭐라 한마디 하지 못하고 화를 참다가 결국 폭발하면 마우스를 집어던지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금세 풀렸다.
모두에게 예의 바르고 친절한 그였지만 연애를 시작하니 다른 여자들에게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눈길도 주지 않았고 내게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솜털같이 굴었다. 항상 내편이 되어주는 그가 있어 든든했고 회사 생활은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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