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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Nov 16. 2023

너를 견디고 나를 치유한 시간

에세이 - 이뻔소


 태어난 지 3주 만에 아이는 뇌수막염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한 달 반을 견디고 살아 돌아온 아이는 장애인이 되었다. 아이가 실려가던 날부터 길고 긴 우기는 시작되었다. 장애라는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힘겨웠다.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뇌 수술과, 눈 수술, 뇌전증 발병까지...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다.


 민수는 뜬금없이 이민을 가야겠다고 말했다. 장애에 편견 없고 사회복지가 잘 되는 나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며 새벽까지 일에 몰두했다. 집중력 좋은 남편 민수는 목표라는 한놈만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연애와 동거에서 결혼 후 임신기간까지 삼 년의 시간이 흘렀다. 도파민의 분비로 없던 힘도 솟아난다는 절대적인 사랑의 기간을 정직하게 졸업한 신체 건강한 민수는 때마침 불어닥친 비바람에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 위로 마침표를 던지고 있었다.


 현실은 냉혹했다. 처음 겪는 수많은 일을 견뎌야 했고, 죽을힘을 다해 살아야 했다. 아프고, 슬프고, 외로웠다. 남편은 자신을 돌보지 않았고, 주변도 돌보지 않았다. 눈과 귀가 멀어버린 그는 나의 고통을 보고도 모른 척했고 아파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돈의 절대적인 힘을 믿는 그는 안타깝게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니 가난이 억울하고 돈에 환장할 수밖에.


 그는 내게도 가혹했다. 숨도 쉬지 말고, 한눈도 팔지 말고, 아이에게만 집중하라고 했다.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나의 모든 인간관계는 끊어졌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모든 순간 바빴고, 활화산 같았고, 쉬지 않고 자신의 숲에 불을 질러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외침은 그의 귀를 뚫지 못하고 메아리가 되어 외롭게 떠돌다 원망의 씨앗을 남겼다. 대화는 항상 싸움으로 끝이 났고 그는 더 이상 나와 마주 앉지 않으려 했다.


 이젠 나도 화를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났고 작은 일로 싸우기 시작됐다.

 소통의 부재와는 별개로 서로 극과 극인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고치려 들었다.

 아이는 아프고 마음은 병들었으니 싸울 일은 끝도 없었다. 감정의 골이 협곡을 이루어 이혼을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막상 이혼을 눈앞에 두고 보니 아이가 문제였다. 나의 행복보다는 아이가 먼저였다. 결정적인 지점에 다 달으면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무릎을 꿇어야 했다. 남편은 싸움이 시작되면 당당하고 호기롭게 레드카드를 날리는 심판처럼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이혼카드를 꺼내 들어 나를 퇴장시켰다.


 세월을 견디고 싸움의 원인을 피할 수 있게 되면서 강도와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둘째가 생겼다. 평화가 찾아오는 줄 알았다. 

 가난과 원수관계를 정리하지 못했던 이 남자는 어머니의 암 투병이 시작되면서 어머니가 밟는 모든 땅을 사서 바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병원비도 보태지 못하는 주제에 그 많은 땅을 사려면 또 얼마나 많이 버셔야 하나! 그는 또 고통 속에서 미쳐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날이 점점 다가왔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허무함에 모든 것이 무너져 허구한 날 술에 취해 나를 겨냥했다. 귀를 막고 견뎌야 했다. 대화로 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임신 중에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며 마음을 붙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신이 돌아온 남편은 이제 나이가 있으니 취직은 어렵다며 자기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땡전 한 푼 없이 시작한 사업은 쉽게 풀릴 리 없었고 생활을 더욱 팍팍해졌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라는 막말을 던지던 민수는 사업을 위해 또 매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빠는 술에 취해 사고로 돌아가시고, 시아버지는 술 때문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닮아 알코올 중독 유전자를 타고난 남편과 또다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15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싸움에 우리 관계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구해준 울타리는 족쇄요 올가미로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이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편 없이 아이 둘을 키우려면 돈은 얼마나 필요하고, 어디에서 살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힘을 가지려면 역시 돈이 필요했다. 돈을 모으고, 일거리를 찾아보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기 위한 이혼인데 돈만 바라보는 일이 행복할 리 없었다.

 나는 오래 걸리더라도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 모른다.

나는 왜 나를 모르지?


 마흔이 되어서야 나를 관찰하고 문제를 찾아 내면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해 스스로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존중받지 못하고 슬펐던 순간에 멈춰버린 나의 어린 시절은 애정결핍을 만들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공허함을 안고 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남편을 통해 채우려 했던 것이다. 바라는 것이 적었다면 덜 서운하고, 덜 화나고, 덜 싸웠을까?


 나는 나를 안아 주기 시작했다. 아픔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를 치료하려면 아픔을 꺼내 놓아야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고 소질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며 섬세하게 깊은 상처까지 어루만지는 일은 나를 바로 세우고 자기 확신을 갖게 했다.


 오랜 시간을 싸움만 하며 보낸 것이 아니었다. 운명의 폭풍 속에서도 그를 견디고 나를 알아가며 치유하는 엄청난 일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적인 치유는 외부의 공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선물로 주었다. 당당하게 나를 알리고 원하는 것을 부드럽고 전달할 줄 알게 된 것이다.


 내면의 평안은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작가의 말


 이번 브런치북은 남편 이야기라 아이와 저의 어린 시절은 꼭 필요한 부분만 간단히 다룹니다.

 아이 이야기는 브런치북 '우영우 아니고 봄이 엄마로 살기'에 담겨있고, 어린 시절 이야기는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에 담겨 있습니다.

 '엄마 없는 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 소설입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과 허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onbyeori4


https://brunch.co.kr/brunchbook/onbyeor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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