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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Nov 30. 2023

이게 다 어머니 때문이에요

에세이-이뻔소


 남편은 깔끔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깔끔하고 깨끗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좀 유난스러운 편이다. 깨끗한 것에 단짝은 부지런함 일 텐데 이 남자는 부지런함에 있어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박하다.


 12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하루에도 같은 곳을 여러 번 쓸고 매일 걸레질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떨어진 머리카락을 박스 테이프로 찍고 다니셨다. 시골집에 매일같이 손님이 드나드니 남에 눈을 의식한 청소가 습관화된 것이다.

 오래된 가스레인지는 반짝거렸고 집안에 얼룩이나 먼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머니는 남편이나 아들들은 시키지 않고 혼자 다 하셨다.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 부평에 잠시 올라와 계셨던 어머니는 집이 지저분해도 며느리를 타박하지 않고 조용히 정리하고 청소하셨다. 손목 터널증후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청소를 하셨다.


 우리 엄마는 뭐든 산더미 같이 쌓아 놓는 분이다. 유별났던 시집살이에 잠깐 반짝반짝 광이 났던 적은 있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쭈욱 청소만큼은 자유로우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식당일로 바빴던 엄마는 집안일과 아이들 돌보는 일을 더욱 멀리하셨다. 물건들은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옷은 장롱이나, 서랍장에 대충 구겨 넣었다.

세탁기 안에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빨래는 구겨진 그대로 빨랫줄에 널었고 교복이나 옷을 다림질하는 것은 엄마의 일이 아니었다. 도시락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으니 뭐든 알아서 해야 했고 깨끗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다.


 첫째 아이는 어릴 적 이것저것 꺼내고 무너뜨리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고 집안은 매일 엉망이었다. 책장에 책을 죄다 꺼내 놓고, 서랍 안이나 싱크대 안의 물건도 꺼내고, 고양이처럼 수납장 위로 올라가 물건을 바닥으로 떨어 뜨리며 즐거워했다. 쌀처럼 작은 알갱이를 온 집안에 뿌리며 노는 것도 좋아했다. 아이들은 으레 다 그런 줄 알았다. 둘째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종일 치워도 난장판이었으니 깔끔쟁이 남편은 아이가 어지르는 것에 유난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본인은 치우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어머니의 깨끗함에 익숙했던 남편은 견딜 수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깨끗한 것과 거리가 먼 나는 좀 답답할 뿐이지 그게 뭐 대수라고 저리 유난을 떠나 싶었다.

 아쉬우면 자기가 치울 것이지 왜 이래라저래라 하는지... 어머니는 이놈의 아들에게 청결을 실천하는 손발은 물려주지 않고 까다로운 눈만 물려주신 모양이다.

 안 그래도 싸울 일이 많았던 우리는 집안 청소를 두고 또 싸웠다. 결국 내가 또 문제라고 하니 나는 반성하고 오랜 습성을 고쳐 완벽에 가까운 깨끗함을 추구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완벽주의 성향에 깔끔 떠는 것이 추가된 것이다.

 이제는 남편에게 잔소리할 만큼 지저분한 것에 스트레스받는다. 특히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둘째 아이 책상에 오만가지 물건이 쌓여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속이 터진다. 스스로 치우는 것을 가르치려고 기다려 보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은 겹겹이 탑을 이룬다.

 둘째는 엄마의 재능을 닮았지만 게으름의 편함을 이미 온몸으로 습득해 느리고 느긋한데 눈은 높고 까다롭다. 깨끗한 것은 좋아하나 스스로 치우지 않는 습성이 아빠를 똑 닮았다.


 벌써 손목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대한 집안일은 줄여야겠다 생각하지만 청소 이외에도 손 쓰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오늘도 손목이 쉬지 못한다.




남편은 편식이 심하다. 고급진 야채는 먹어도 하찮은 야채는 적지 않는다. 어릴 적 주변에 널려있던 풀이나 흔했던 야채는 먹지 않는 것이다. 농촌에서 자라 해조류나 생선도 익숙하지 않으니 또 먹지 않는다. 조금만 비려도 NO! 질겨도 NO! 고기 위주의 식사 OK!


 남편의 어릴 적 주된 반찬은 풀과 나물이었다. 어머니는 뭐든 한 솥 가득 만들어 질리도록 한 가지만 먹였고 요리 방법도 다양하지 않았다. 끼니는 때우는 것이요 먹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네 형제는 어머니의 맛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남편의 편식은 '어릴 적 먹던 맛'으로부터의 탈출에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는 왜 숙주를 안 먹어?"

 "숙주? 나 숙주 알레르기 있어!"

 "아닌데? 괜찮던데? 육개장에도 숙주 들어가는데? 육개장 잘 먹잖아!"

 "그래? 육개장에 숙주가 들어가?"

 남편은 여러 가지가 섞인 음식은 뭐가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맛있으면 잘 먹는다.

 "숙주나물 좀 먹어봐! 맛있어~ 들깨로 버무린 거야."

 "어......"

 "또 안 먹네! 좀 먹어보라니까!!"

 "나물이나 풀때기는 지겨워서 안 먹어~"

 "그지? 먹기 싫은 거지? 못 먹는 거 아니지? 알레르기는 무슨!! 나는 어릴 적에 나물 많이 먹었어도 지금도 잘 먹었는데?"

 "네~ 많이 드세요~"


 남편은 주중에 밖에서 저녁을 먹고 아침과 주말에만 집밥을 먹는다. 다 같이 느긋한 식사를 즐기는 날이면 반찬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은 제각각이고 둘째 아이는 알레르기로 먹지 못하는 음식도 많으니 입맛과 영양을 고려하다 보면 반찬의 가짓수가 자꾸 늘어난다.


 냉장고를 열고 오늘은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 '툭'하고 말을 뱉는다.

 "먹을 게 없네? 뭐 먹지?"

 둘째는 얼른 뛰어가 이 기쁜 소식을 아빠에게 전한다.

 "아빠!! 엄마가 먹을 게 없데!!"

 "그래?? 오호~ 오늘도 진수성찬인가?"


 두 사람은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오면 반찬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먹을 것이 없으니 이것도 꺼내고 저것도 꺼내 부족한 것을 보완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평소보가 더 많은 반찬을 만들게 된다.


 반찬을 많이 만들어도 같은 반찬을 두 번 먹지 않는 입 짧은 인간이 셋이나 있어 혼자 열심히 먹어도 반찬들은 냉장고를 탈출하지 못하고 고이 잠들고 만다. 편식쟁이들 덕분에 우리 집 냉장고는 반찬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지 오래다.

 남편은 냉장고에 쌓여있는 반찬을 보며 또 한숨을 쉰다.


 아까워서 그래 이 양반아~
 니들이 편식하고 입도 짧으니 자꾸 음식이 남잖아!
 애들은 어려서 그런다 쳐!
 너는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을 살아놓고 그 나이에 편식을 해야 되겠니?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 못한 반찬투정을 나한테 하면 되겠냐고!




 남편은 온갖 냄새를 장착하고 다니면서 영역 표시를 한다. 머리와 얼굴에서 흐르는 개기름 냄새, 분수처럼 뿜어내는 온몸의 땀 냄새, 발 냄새와 입냄새까지...

 출근할 때는 샤워하고 나가도 저녁에는 젤 발라 떡진 머리 그대로 잠든다. 휴일이면 샤워는커녕 세수도 않고 며칠을 지낸다. 여름에는 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씻지만 겨울에는 동면이라도 할 기세다. 거기에 매시간 피워대는 담배는 모든 냄새를 증폭시킨다.

 나도 사랑니 수술을 하고부터 원인 모를 입냄새가 생겨 입안이 건조하면 특히 신경 쓰인다. 그러니 나름 입냄새에 관대한 편이지만 남편의 입에서 나는 묵은지 냄새와 마늘 냄새와 각종 이상하고 다채로운 냄새는 참기 힘들 정도다.


 왕성한 기름 분비를 자랑하는 머리가 기대고 있던 벽지는 누렇게 변해간다. 베개와 이불에 베어든 냄새도 며칠만 방치했다가는 깊숙이 스며들어 소생이 불가능 해진다.

 냄새 제공자가 깔끔하고, 쾌적하고, 향긋한 환경을 원하며 지적질까지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인간을 세탁기에 돌려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나는 또 냄새나는 침구와 주야장천 씨름을 한다. 세탁기도 건조기도 매일 쉬지 않고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 일한 만큼 정직하게 전기를 드시니 매달 전기세는 같은 평수의 평균치 보다 1.5배나 더 붙어 날아온다.


 요즘은 남편이 휴일에는 집안일을 제법 한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가끔 급한 자기 빨래를 돌리고 거기에 운동까지 하고 나면 너무 많은 일을 해서 힘들다며 누워만 있는다. 그래놓고 하루종일 엉덩이 붙일 새 없이 움직이는 나는 집에서 노는 줄 안다.


 집안이 깨끗하려면 몸은 힘들다. 나이 들어 고생하지 않으려면 적당히 눈 감고 모른 척해야 할 텐데... 조금 지저분하다고 크게 문제 될 것 없고 남들도 욕하지 않는데... 이놈에 남편이 문제다.


 게으름뱅이 남편은 내에게는 완벽한 깨끗함을 바라고, 아이들에게는 편식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고는 이렇게 말한다.

 "편식하지 말고 다 먹어야지!"

 그럼 나는 또 남편을 보며 말한다.

 "그럼 자기는?"

 "나는 편식 안 해!"

 "누가? 자기가? 그럼 이건 왜 안 먹어?"

 아무리 궁지에 몰아도 남편은 눈도 꿈쩍 않고 자기 할 말만 한다.

 "아빠는 어릴 적에 풀만 먹고살아서 지겨워서 안 먹는 거야! 이것들이 배가 불러가지고... 안 먹으면 굶겨!"

 말로 백날 가르치면 뭐 하나!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는데 뭐든 적당하고 좋은 것만 물려주면 좋으련만...

 민수야! 너부터 굶자!


 남편이 깔끔 떠는 것도, 게으른 것도, 편식하는 것도 다 어머니 때문이다.

 그 윗대나 어머니 사정까지는 모르겠고!!

 그러니... 나의 고단함도 다 어머니 때문이라고 해 두자!



어머니! 아드님과 잘 살아 보겠습니다.

어머니! 평안하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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