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벼리 Dec 14. 2023

똥밭을 굴러도 멀쩡할 놈

에세이-이뻔소


 남편은 친구들과 통화할 때면 말장난을 즐긴다. 어떤 친구와는 서로 엉뚱한 말만 하다 끊을 때도 있고 아이들 앞에서 절대 쓰지 않는 비속어나 욕설을 섞기도 한다.

 "민수야! 니 내일 동창회 오나?"

 "안 간다! 니는 가나?"

 "내는 당연히 가지! 니는 뭐가 그리 바쁘노? 토요일에 일 안 하잖아!"

 "야 이 씨! 니 온다캐서 내는 안 갈라고!"

 "뭔 소리고? 내는 이제 말했는데?"

 "아이다. 시끼야! 내도 간다! 어디서 모인다 카드나?"

 "주소 보내주게."

 "아랐다. 카톡으로 보내라."

 "니 감기 걸렸나? 와 코맹맹이 소리고?"

 "감기 아이다. 알레르기 비염이다."

 "니가 비염이라고?"

 "그래! 내가 원래 알레르기가 많다."

 "야이씨! 똥밭을 굴러도 멀쩡하게 생긴 놈이 먼 비염이고?"

 "뭐라 카노! 귀하게 자라서 그렇다. 셰끼야!"

 "먼 소리고? 안 아프면 됐다. 뻘 소리 말고 끊으라! 내일 보자!"

 "그래! 내일 보자! 끊으라!"

 "근데 민수야! 니 내일 오나?"

 "야 이 시끼야! 니 술 처묵었나?"

 "어! 한잔 했지!"

 "와 술 처먹고 전화하고 지랄이고! 끊으라! 셰끼야~ 니 땜에 동창회 안 갈란다!"

 "그래 끊으라~ 내일 보자!"


 똥밭을 굴러도 멀쩡할 것 같이 생겼다는 남편은 보기와 다르게 까다로운 몸을 가지고 산다. 고교시절 기숙사 생활을 했다. 남자들끼리만 지내는 생활이 얼마나 깨끗했겠는가! 각종 먼지와 집먼지 진드기에 장기간 노출되어 알레르기 비염이 생긴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비염을 알지 못했다. 알레르기는 약으로 치료되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부터 치료는 포기하고 시판되는 비염약을 통째 들고 다니며 콧물이 날 때마다 복용한 지 11년이 넘었다. 간에 무리가 가지 않는 약이라는 말을 듣고 의사의 처방도 없이 제 멋대로 장기 복용을 한 것이다. 뭐든 시작하면 우직하게 오래 반복하는 고집쟁이는 비염 약까지도 오래 먹는다.


 위장이 민감 한 민수는 찬 성질의 음식을 먹어도 콧물이 난다. 본인은 글루텐 알레르기라고 말하지만 확인된 바 없는 주장이다. 알레르기 검사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니 밀가루를 먹는다고 꼭 콧물이 나는 것도 아니다. 차가운 음식이나 찬 성질을 가진 음식, 딱딱하고 위에 자극적인 음식에 반응을 보이는데 유기농 밀가루에는 또 반응하지 않는다. 겨울에는 찬물만 마셔도 콧물이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포기하지 못하고 고집부린다.


 두 아이는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알레르기가 많고 아토피도 있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음식과 생활에서 정성을 들여야 했다. 약보다는 원인이 되는 것을 멀리하고 면역력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아이들을 챙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편의 증상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치료 불가능 하다고 우기는 남편을 설득해 장기 복용하던 비염약을 끊게 했다.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피하고 질 좋은 재료로 요리를 했다. 안 좋은 습관은 고치도록 유도하고, 먼지 청소나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해 주었다. 오랜 노력 끝에 이제는 만성 비염은 사라지고 가끔 몸에 맞지 않는 음심을 먹었을 때만 반응을 보인다.

 남편은 말한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매일 콧물 흘리면서 어떻게 살았나 몰라? 정신이 맑을 때가 거의 없었어."

 "그래... 그러면서 계속 약만 먹고 산 게 나는 더 신기해."

 "나는 못 고칠 줄 알았지!"

 "어 못 고치는 거 맞아! 대신 관리를 잘해 주면 피할 수 있거나 좋아지는 거지!"

 "그래 다 자기 덕분이네!"

 "거 봐! 마누라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 거 맞잖아! 그러니까 내 말 좀 잘 들어주면 안 될까?"

 "왜? 요즘엔 말 잘 듣잖아!"

 "누가? 네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옛날보다는 잘 듣지 않나?"

 "옛날보다야 양반이지만 아직 한참 멀었지~ 지금도 고집이 보통이 아니잖아!"

 "에이~ 잘 듣는다고 치자~"

 "아니거든? 한참 멀었거든?"


 알레르기 약 항히스타민제는 유난스러운 면역체계를 억지로 눌러 잠재우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약을 끊고 나면 유난스러움이 몇 배로 폭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불규칙적으로 오래 복용한 알레르기 약의 역효과로 더 많은 알레르기가 생기게 된 것이다. 약 복용 11년 차가 되니 평생 없던 벌레 알레르기와 약물 알레르기등 새로운 알레르기가 한꺼번에 마구 생겨났다. 약물 알레르기는 상당히 위험하다.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일로 소염진통제를 자주 처방하는데 성분까지는 알려주지 않으니 처방약을 먹고 응급실에 간 경우도 여러 번이다.

 남편은 교통사고 같은 의식이 없는 응급상황에서 알레르기 성분의 약이 투여될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임플란트를 하고 와서 처방받은 약을 먹지 않고 그 엄청난 통증을 견디기도 했다. 이제는 꼭 먹어야 하는 약이면 "디콜로페낙계열 알레르기 있으니까 다른 성분으로 처방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디콜로페낙 소염진통제 알레르기는 시판 종합감기약에서부터 시작됐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처방받으라는 말을 안 듣고 귀찮다며 대충 종합 감기약을 털어 넣던 습관이 독이 되어 없던 약 알레르기가 생긴 것이다.


 남편은 대대로 농사를 짓는 대구의 시골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국민학교 시절 양파 수확시기가 되면 일손이 모자라 공부는 제쳐두고 거들어야 할 때가 있었다. 학교 안 오고 양파 뽑으러 밭에 갔다고 친구들이 "야! 다마네기"라고 불러 그때부터 별명이 다마네기가 되었다고 한다.


 외양간에 소들이 싼 똥을 한 곳에 높이 쌓아 발효시키면 소똥 구린내가 멀리까지 진동을 한다. 발효된 소똥을 밭에다 거름으로 뿌리고 나면 밭은 기름진 똥밭이 된다. '똥밭을 굴러도 멀쩡할 놈'이라는 말은 소똥을 뿌린 양파밭에서 일하다 넘어져도 전혀 문제 삼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말이고, 튼튼하고, 시골스럽고, 촌스럽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남편은 외모와는 다르게 시골스러운 것을 싫어한다. 흙이나 풀때기와 친하지도 않고 유난스러운 깔끔 병에 알레르기까지 두루 갖추고 100층 아파트를 선호하는 고집쟁이 도시 남자다. 나는 그런 똥밭의 고집쟁이 도시남자가 쉽지 않다.




작가의 말


 엄마가 아프시네요. 위암이 의심돼서 조직검사를 하고 CT도 찍었는데 이번에는 췌장암이 의심된다고 합니다. 금요일에는 또 조직검사를 하러 아침 일찍 모시고 서울로 갑니다.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신장이 좋지 않을 때도 잘 넘기셨는데 이번에도 잘 넘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집에 와 계신 동안 엄마에게 집중하느라 휴재 공지를 할까 하다가 텔레비전 보시는 사이 부지런히 써 보았습니다. 생각만큼 재미나게 써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주는 이렇게 넘어가 보렵니다.


이전 10화 소심이에게 분노할 명분이 주어진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