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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Dec 28. 2023

환장하는 주말 나들이

에세이-이뻔소


 아이들 어릴 적에는 주말 나들이를 자주 다녔다. 그중 단연 1등 나들이 장소는 키즈카페였다. 남편과 나는 두 아이를 각자 한 명씩 따라다니기로 했다.

 부지런히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새 나는 두 아이를 모두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찾아보니 구석에 앉아 머리를 벽에 기댄 채 잠들어 있다. 이 남자는 어딜 가든 잘도 잔다.


 대형 키즈카페에 가면 고단한 아빠들을 반기는 유료 안마의자가 있다. 남편은 안마의자를 차지하고 누워 나른한 서비스의 세계를 만끽하며 코를 곤다. 어떻게 안마 의자를 한 시간이 넘도록 차지하고 앉아 잠을 자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빠들은 영혼 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 깨어 있다. 어떤 아빠는 아이들보다 더 신나게 뛰어다닌다. 부럽다. 우리 남편도 저런 아빠 일 수는 없는 것일까?


 키즈카페를 나오며 남편에게 말했다.

 "야~ 대단하다! 자기는 어떻게 장소를 가지지 않고 잠을 자니? 밤에 못 잤니?"

 "이상해!!! 아무래도 애들이 내 기를 다 빨아먹는 거 같아!"

 "뭔 소리야? 애들이 괴물이니? 네 기를 빨아먹게?"

 "아냐~ 애들이랑 있으면 이상하게 졸려!! 기가 빨려서 그런 게 확실해!!"

 "웃기시네! 놀아주기 귀찮아서 그런 거겠지."

 "그런가? 왜 애들이랑 있으면 졸리지? 특히 키즈카페만 오면 그렇게 졸려!"

 "그건 아니야!! 자기는 어딜 가든 잘 자."


 당일 나들이중 체력 방전의 최고봉은 놀이공원이다. 에버랜드 환장에 나라를 처음 방문 했다.

 남편이 안내지도를 펼쳐 들고 가정 먼저 찾은 것은 흡연 장소였다. 광활한 대지에 흡연 장소가 겨우 네 개뿐이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모라면 보통 화장실이나 미아보호소나 식당의 위치를 먼저 찾는 게 당연한데 남편은 욕심 없이 그저 자기 한 몸 누일 곳만 찾는다.

 여름방학이었다. 에버랜드는 도대체 얼마나 넓은 것일까? 걷다가 지칠 판이다. 나도 모르게 힘들다는 말이 입 밖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지만 아이들의 들뜬 표정을 보면 없던 힘도 생겨난다. 투정은 고이 접어 주머니 깊이 찔러 넣고 에너지는 더 폭발시켜 본다.

 대기 줄이 길다. 어딜 가든 기다려야 한다. 담배를 피우러 간다던 남편은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에버랜드는 쉴 곳이 마땅치 않다. 한참 보이지 않던 남편이 갑자기 나타나 인상을 찌푸린다.

 "나 허리 아프고 발도 아파!"

 "어! 나도 그래!"

 "여긴 누울 데도 없어. 집에 언제 가?"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 더 타고 가야지! 입장료가 얼만데~"

 "그래서 언제 가냐고~~"

 "모르지? 애들 타는 거 봐서!!"

 "환~장하겠네!!!!"

 환장한 남편은 자신의 본분은 잊은 지 오래다. 차라리 구석에 짱 박혀 있으면 좋으련만 따라다니며 계속 짜증이다.


 몇 년 뒤 두 번째로 에버랜드에 갈 일이 생겼다. 이번엔 남편에게 미리 물었다.

 "자기야! 애들이 에버랜드 가고 싶다고 계속 노래 부르는데 갈 수 있어요?"

 "에버랜드? 언제?"

 "다음 주 주말쯤?"

 "가자!! 가고 싶으면 가야지!"

 "진짜?? 자기 걷는 거 싫어하잖아. 거기 엄청 많이 걸어야 되는데 괜찮겠어요?"

 "네! 좀 돌아다니다 앉아 있으면 되겠죠!"

 "그럼... 힘들다고 짜증 내기 없기!!"

 "네!!"

 남편은 기꺼이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래! 저번에는 더워서 그런 걸 거야!'

 하지만 일관성 있는 이 남자는 두 번째도 첫 번째와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 심지어 짜증 내는 말투까지 복붙이다. 뭐든 쿨하고 호탕하게 장담하지만 뒷감당은 늘 나의 몫이다.


 아... 너는 원래 그렇구나!
 기꺼이 가자고 했던 것은 네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거였구나!


 둘째 학교에서 간다던 롯데월드 체험학습이 취소되었다. 기대가 컸던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롯데월드를 당장 예매했다. 롯데월드는 놀이기구가 실내에 모여있으니 이동도 편하고 그리 힘들지 않을 거라 믿었다.


 나들이하기 좋은 가을이었다. 단체로 온 아이들,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온 중고생들, 연인과 함께 온 청년들까지 입장부터 줄이 길다. 또 뭘 타든 대기줄도 길다. 예약하고 다른 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장애인 패스가 있으면 줄 서지 않아도 시간 예약만 하면 다른 곳에서 기다릴 수 있다고 한다.


 놀이기구를 겨우 두 개 탔는데 남편은 사라지고 없다. 전화를 걸어 보니 담배 피우러 갔단다. 탑승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언제 오려나? 또 전화를 해보니 힘들다고 너희끼리 타라고 한다. 우리끼리 열심히 돌아다녔다.

 기다림에 지친 남편은 언제 가냐고 자꾸 전화로 짜증을 부린다. 결국 차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퇴장시켰다.


 차에서 편안하게 한숨 자고 일어난 남편은 기분이 풀린 모양이다. 저녁밥을 맛있게 먹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 입으로 들어가는 소고기가 왜 그렇게 아까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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