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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Dec 21. 2023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이기는 똥고집

에세이-이뻔소


 남편은 큰 볼일을 보러 들어가면 10분이 넘도록 나올 생각이 없다. 아침에만 급똥을 두 번 볼 때도 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분명한데 병원에 갈 생각은 전혀 없다. 무엇이든 꾀부리지 않고 오랜 친구로 삼는 대단한 우직함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담배 한 대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가 급히 뛰어 들어와 화장실로 직행한다. 문 밖으로 신날 한 배출 소리가 새어 나온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면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상책이다. 거사가 시작되면 평화로운 화장실에 유튜브 뉴스공장 오프닝 송이 울려 퍼진다. 휴대폰은 10분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오랜 벗이다. 초췌한 얼굴로 나와 성난 대장을 진정시키는데 또 10분 걸린다. 화장실이 두 개이니 망정이지 예전에 한 개 일 때는 아직 다 해결하지 못했으나 느긋해진 점령자와 다급한자와의 전쟁이었다.


 유별나고 과민한 대장은 바쁜 아침이나 장거리 운전에 특히 취약하다. 운전 중 급똥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남편은 아직도 자신이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쁜 것은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인 줄 안다.


 근처 쇼핑몰에서 외식 중이었다. 먼저 식사를 마친 남편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자기야! 나 급해!"

 "왜? 또 뭐가 안 맞아?"

 "몰라! 아무튼 급해!"

 "저기 밖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화장실 있어. 기다릴 테니까 갔다 와!"

 "집에 가서 쌀 거야! 여긴 비데 없잖아!"

 "자기야! 나 밥 다 안 먹었거든? 그리고 급한데 꼭 집까지 가야겠어?"

 "어!! 찝찝해서 싫어!"

 "밥 먹고 애들 옷 사러 가기로 했잖아!"

 "나 먼저 갈 테니까 옷 사고 택시 타고 와!"

 "허!! 밖에 지금 비 오거든? 차 타고 가니까 우산 안 가져와도 된다고 자기가 우겨서 그냥 나왔잖아!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아~~~ 자기야 나 급해!!"

 "급한 거 맞아? 급하면 여기서 좀 싸!!!"

 "집에 갈 때까지는 참을 수 있어!"

 "에이~ 진짜!!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 먼저 간다! 얘들아! 아빠 똥 싸러 집으로 먼저 갈게!"

 "어휴~ 유난스럽네 정말~ 아무 데서나 좀 싸지!!"

 남편은 우리를 두고 급히 집으로 가버렸다. 자주 있는 일이다. 집에 비데를 설치하고부터는 그 급한 와중에도 꼭 집에 가서 싸야 한다고 난리다. 식사 중 뭔가 맞지 않으면 바로 신호가 오니 기분 좋게 외식 나왔다가 다급하게 식당을 나와야 할 때면 괜히 짜증 난다.


 일요일에 교회에서 돌아오니 남편이 손짓하며 자기 방으로 부른다.

 "자기야! 이리 와 봐 보여줄 게 있어!"

 "뭔데?"

 "나 오늘 라이딩하다가 급똥 나와서 죽는 줄 알았거든. 어디다 똥 샀는지 보여줄 게~"

 평소 같으면 어디부터 어디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했는지 경로 자랑하기 바쁜데 오늘은 똥 싼 이야기로 신났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궁금해서 모니터에 펼쳐진 지도를 같이 봤다.

 "여기. 여기다 똥 쌌어."

 "들판 아냐? 여기에 화장실이 있어?"

 "그러니까! 화장실이 없어서 들판 한가운데 똥을 쌌다고!"

 "어???"

 "로드뷰로 보여줄게~"

 "그걸 꼭 내가 봐야 되겠니??"

 "오!!! 꼭 봐야 지!"

 남편이 입을 모으고 오버하며 "오!!"라고 대답할 때는 뭔가 아주 신이 나거나 기분이 좋을 때다.

 로드뷰가 다 보여줄 수 없는 비포장 길이다.

 "길이 안 보이는데?"

 "저~~ 기 안쪽 끝까지 들어가면 사람들 안 다니는 데 있거든? 저 끝까지 들어가서 쌌지!"

 "저 끝에다 쌌어?"

 "오!! 안에는 사람들이 안 다녀!"

 "아이고~ 미친다! 앞 뒤가 휑하니 다 뚫린 벌판에서 똥을 쌌다고?"

 "오!!!"

 "그래서 그걸 그냥 방치하고 왔어?"

 "풀로 살짝 덮어두고 왔지!"

 "아효~ 왜 내가 더 부끄럽니? 그놈에 급똥 때문에 고생이 많다~ 어디 자전거 타고 다니겠니?"

 "헤헤~ 그래도 나는 잘 다녀!"

 "그래! 대단하다!"

 영역 표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들판에 똥이라니... 로드뷰를 보며 남편이 덩그러니 싸 놓은 들판에 똥을 상상한다. 괜히 부끄럽고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남편은 차 타고 지나가다 지난번에 똥 싼 자리라고 콕 집어서 또 가르쳐 준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알지만 들판에 싼 똥을 왜 자랑하는지 알 수 없다. 누구한테 이런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겠는가? 내가 편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너그럽게 품어 본다.


 똥과 인연이 깊은 남편 민수를 나는 가끔 똥수라고 부른다. 나의 똥수는 죽을 때까지 급똥을 외치며 살 모양이다. 네이*에서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검색해 봤다. 남편의 증상은 과민성대장증후군이 확실하다. 치료는 불가하다고 나와있다. 그래도 진료받고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는데 이놈에 고집쟁이는 뭐든 평생 불편함을 안고 살면서 도와주려 해도 말도 더럽게 안 듣는다. 네가 싫다면야 내가 어쩌겠냐만은 원인이나 피할 방법이라도 알면 고생을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나무위키에는 친절하게 급똥 대처방법까지 나와있다. 제법 웃겨서 일부를 가져왔다.


*급똥의 대처방법

길 한가운데서 공공화장실 표시도 없거나, 가까운 데는 공원 화장실이나 근처 주유소 화장실 같은 곳이나, 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에서 후다닥 갔다 와도 된다. 멀리 있을 경우 인근 병원 혹은 음식점에 들어가서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이용하자. 병원이나 음식점의 경우 대부분 화장실을 설치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급할 경우 이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주유소는 법적으로 화장실을 항상 개방하게 돼있으니 주유소 간판이 보이면 반겨주자. 보통 24시간 영업을 하니 새벽에도 안심이다. 24시간 근무하는 곳으로는 경찰서, 지구대, 소방서, 구조대 등도 있다. 이곳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면 경찰관분들이나 소방관분들이 친절하게 위치를 안내해 주신다. 또는 2층인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거나 큰 식당, 카페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주인의 눈을 피해 몰래 들어가거나 그냥 사정을 말하자. 아니면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대합실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있다. 정말 급할 때는 인적이 드문 야산, 구릉지가 있다면 건물을 들어가는 번잡함을 피해 그곳을 가는 것도 한 방법. 건투를 빈다.

*사태가 이미 발생한 뒤 
겉옷이나 후드티 또는 별도의 남방을 입고 입다면 그것을 벗어 엉덩이에 두르자. 반팔이나 윗도리가 하나라 벗을 수 없다면 신문지나 폐지, 박스를 펴서 엉덩이에 두르고 황급히 자리를 이동, 벗어나는 방법 등이 있다.

출처-나무위키


 난처함은 안쓰러운데 뭔가 우습기도 하다.


 누구나 아주 급한데 참아야 하는 상황을 한 번쯤은 겪지 않나? 특히 고속도로에서 말이다. 그러니 그 처절함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보는 사람은 이리 불편한데 정작 당사자는 천하태평이다. 노터치를 외치는 고집쟁이 똥수의 급똥 생활에 그저 건투를 빌어야 하나?


 남편은 공황장애로 7년 동안 약을 먹었다. 그놈에 고집 때문에 공황장애를 고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공황장애에 분노조절장애까지 겹쳐 더러운 성질머리 대잔치를 또 오랫동안 경험해야 했다.


 원래 타고난 남다른 성질머리와 대단한 똥고집에 꽉 막힌 철벽 귀까지 겸비한 이 남자는 알코올 중독,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깔끔 병, 편식, 알레르기, 비염, 과민성 대장증후군까지 온갖 과한 것들을 두루 갖추고 뭐든 무식하게 오래 견디며 고칠 생각도 없으니...

 곁을 지키는 나의 피곤함은 켜켜이 쌓이고 인내심은 이미 만 레벨임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업그레이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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