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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Jan 04. 2024

싸우며 돌아오는 여행

에세이-이뻔소


 우리 가족은 외국 여행을 가지 않는다. 큰 아이의 뇌전증 발작 때문이다. 국내 여행도 근처에 가까운 병원이 있는지, 발작에 대처 가능한 병원인지를 살펴보고 결정한다.

 남편도 처음에는 걱정이더니 해가 갈수록 느슨해진다. 주위 사람들의 해외여행 자랑에 솔깃해서는 그 돈이면 동남아는 가고도 남겠다며 계속 해외여행 타령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이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
가고 싶으면 너나 가라! 하와이!


 나는 여행 준비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여행지를 고르고, 주변 체험과 볼거리를 살피고, 펜션을 고르는 데만 일주일은 족히 걸린다. 날씨와 상황을 고려해 코스를 짜고, 식당을 알아보고, 움직이는 노선에 맞춰 예약까지 며칠 걸린다. 펜션이라면 바비큐는 필수 아닌가? 아침과 저녁에 먹을 메뉴를 준비하고 짐 싸는 데 또 며칠이다. 오랜 시간 혼자 준비하려니 지치고 힘들다. 남편에게 도와 달라고 말했더니 무계획 여행을 제안했다.

 "뭐 하러 힘들게 일일이 알아보고 가? 그냥 되는대로 다니면 자유롭고 좋잖아!"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아는데 그렇게 하면 허탕 치는 일도 많고 고생할 텐데?"

 "괜찮아! 그런 재미도 있겠지! 이번에는 그냥 계획 없이 가 보자!"

 말이 무계획 여행이지 그래도 평소 준비하는 것에 반은 준비한 것 같다.


 월요일이었다. 비수기의 휴양지는 월요일이 휴무인 경우가 많다. 문 앞까지 가서야 휴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마찬가지다. 포기하고 식당을 찾아가니 개인 사정으로 장기 휴업이란다. 계획 없이 돌아다니니 실수 연발이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들어가는 것은 또 싫었다. 남편은 같은 길을 몇 번째 가냐고 짜증이다.


 자유로운 영혼아!
너는 네가 무계획 여행을 제안한 것도 벌써 잊었구나!
그 정도 인내심으로 무계획 여행은 안 될 말일세!


 여행만 가면 남편은 투덜이로 변한다. 집에서는 의자나 침대와 일체가 되어 종일 누워서 지내는 사람이다. 심지어 회사에서도 누워 지낸다. 눕혀지는 피시방 의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서 있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머지않아 직립보행이 불가능해 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힘들다고 짜증 내는 것도 본인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코스가 길어지면 운전이 힘들다고 투덜대고, 걸어 다니면 허리 아프다고 짜증이다. 한옥을 예약하면 오래된 집이라 귀신 나올 것 같다고 투덜대고, 겨울이면 빵빵한 난방에 건조하다고 투덜댄다. 완벽한 맞춤형 숙소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집이 가장 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불편을 감수하고 새로운 자극과 추억을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 아닌가? 조금만 불편해도 투덜대는 위인이 있으니 우리의 여행은 매번 가시방석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풀장이 있는 독채펜션을 예약했다. 사람을 피해 동선은 최소화하고 2박 3일 내내 밥을 지어먹었다. 아이들은 심심해했지만 남편은 만족스러워했다. 어차피 움직 일 수 없으니 남편이 좋아하는 낚시 일정도 넣어 보려고 했다. 바다낚시는 물때와 낚시 가능한 장소까지 고려해야 한다. 혼자 새벽 낚시를 하겠다고 우긴다. 낮에는 내내 잠만 자겠다는 말이다.


 낚시는 역시 아닌가 보다.
가두리낚시든 바다낚시든
낚시놀이는 너 혼자 하는 걸로 하자!


 단양 여행을 갔을 때는 거금을 들여 남편의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예약했다. 의상을 갈아입은 체험자들은 산 꼭대기까지 차로 이동했다. 신이 난 남편은 손을 흔들며 씩씩하게 출발했다. 두 딸과 나는 산 꼭대기를 바라보며 언제 날아오르나 하염없이 기다렸다.

 "와~~~~ 아빠 내려온다~~ 저기 봐 아빠 맞지?"

 "와~~~ 아빠가 하늘을 날고 있어~~"

 함께 탄 전문가의 능숙하고 뛰어난 비행솜씨로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날았다. 공중에서 동영상도 찍고, 뱅글뱅글 신나게 돌아 안전하게 착지했다. 이 특별한 순간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하늘을 날며 얼마나 벅찼을까? 무사히 착지한 남편에게 박수를 보내며 뛰어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어땠어? 재미있었어? 무섭지 않았어?"

 "에이 씨! 나 이런 거 다시는 안타!"

 "왜??? 재미없었어?"

 "처음에 떠오를 때는 잠깐 신났는데~ 뱅글뱅글 도는데 어지러워서 토할 뻔했어!"

 "좀 어지러우면 어때! 경험하기도 힘들고 특별한 거잖아!"

 "그래도 다시는 안 타!!"

 "어휴......"

 그래... 너의 즐거움은 네가 알아서 찾는 걸로 하자!


 숙소에서 남편은 의외의 물건을 찾는다.

 "자기야! 손톱깎이 가져왔어?"

 "손톱깎이를 왜 여기서 찾아?"

 "안 가져왔어?"

 "왜? 집을 통째로 싸들고 오라고 하시지? 내가 수백 가지 챙길 때 자기는 자기 옷만 달랑 챙겨 오면서 여기까지 와서 손톱깎이를 찾으면 되겠어?"

 "아~ 손톱이 너무 길어서 불편한데..."

 "내일이면 집에 가거든?"


 마지막 날이 되면 남편의 짜증도 최고점을 찍는다. 집으로 가는 길이 멀고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 운전하기 힘들다 해서 근거리로만 다니잖아.
직장 사람들이 맨날 가까운 곳만 간다고 놀린다며 동해안 가자더니...
평창 다녀올 때도 멀다고 짜증 냈잖아.



 명절에는 자기 고향 대구까지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운전하는 사람이 여행길에는 운전시간이 두 시간을 넘으면 얼굴이 일그러진다.


 갈 때마다 힘들게 준비해서 가는 여행인데...

 완벽하고 즐거운 여행을 위해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이 한 몸 바쳐 움직이는데...

 여행은 즐거운 거니까! 좋은 추억을 만들고, 행복하려고 가는 거니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내가 참으면 그만이라고 내내 남편의 투정을 받아준다. 그러나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네가 언제까지 참을 수 있나 두고 보자는 듯 성질을 돋우며 방정맞게 휘둘러대는 손바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나는 하이파이브를 날리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는 차 안에서 말다툼을 하며 얼굴이 벌건해 져 집으로 돌아온다.




 얼마 전 남편은 제주도로 겨울 워크숍을 직접 계획하고 준비했다. 말이 워크숍이지 술 먹고 놀다 오는 단합대회다. 펜션 예약부터 쉽지 않다. 겨우 며칠 전에 예약했으니 원하는 곳이 비어 있을 리 없다.

 남편은 평소 배낚시를 궁금해했었다. 뱃멀미 경고는 귀담아듣지도 않는다.

 2박 3일 중 이틀 동안 비가 왔다. 타려던 자전거는 타지 못했고, 배낚시는 겨우 한 시간 했다고 한다. 여행지의 날씨도 알아보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자기가 계획한 여행이라고 투정 한마디 없다.


 배낚시를 했다길래 물었다.

 "뭐 좀 잡았어?"

 "조그만 거 몇 마리 잡았지. 그것도 나 혼자 다 잡았어!"

 "재미있었어?"

 "늦게 도착해서 겨우 한 시간밖에 못했어. 와!! 뱃멀미 장난 아냐!! 먹은 거 다 토했어."

 "응... 그래! 내 말은 뒷등으로도 안 듣더니~ 잘했네~"

 "다시는 배낚시 안 할 거야!!"

 "어련하시겠어요~"

 앞으로는 자기를 꼭 닮은 투덜이도 한 명 데려가라고 옆구리를 꾹 찔러주니 그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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