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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Jan 12. 2024

인싸의 사업장

에세이-이뻔소


 남편이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됐다. 직장 동료 셋으로 시작해 한 명은 싸운 뒤 나가고 남은 한 명과도 법적인 싸움을 벌이며 결국 혼자가 되었다. 프로그램 개발자가 본의 아니게 자영업자가 된 것이다. 마흔 넘은 프로그래머가 직장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남편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처음 본인의 이름으로 사업자를 낼 때 남편은 들떠 있었다. 대표의 자질에 대해 공부하고 김칫국을 심하게 들이켜 기대와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현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자본금도 없고 사무실도 없었다. 남의 사무실 빈자리를 전전해야 했고 수입도 없으니 대출받아 생활해야 했다. 나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장애가 있는 큰아이와 어린 둘째 아이를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절약하는 것뿐이었다.

 모든 면에서 초라하고 궁핍했다. 공과금 독촉 고지서가 쌓이고 휴대폰 신이 끊기는 잦았다아끼고 아껴도 모자랐고 '이러다 정말 굶어 죽겠네!' 싶을 때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울며 전화를 했다. 엄마의 도움으로 다행히 몇 번의 위기를 넘겼다.


 남편은 부실한 나무다리도 일단 건너고 보는 성격이다. "빠지면 어쩔 수 없지 뭐!" 라거나 "다시 올라오면 되지 뭐!"라는 식이다. 튼튼한 돌다리도 신중하게 두드려보고 요리조리 따지고 재느라 건너는데 한 나절도 더 걸리는 나와는 180도 다른 인간형이다. 사업에는 추진력과 배짱이 필요하고 미련할 정도로 한 우물만 파는 끈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혼할 거야!", "이러다 굶어 죽겠어!"라는 외침에도 제 갈 길만 가는 남편을 따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저야 자신의 선택이니 파이팅이라도 하겠지만 우리는 뭔가? 언제 끝날 지 모를 고통의 시간을 무작정 견디며 끌려가는 신세 아닌가?


 사업한답시고 매일 술이니 사이가 더 좋을 리 없었다. 첫째 아이가 아팠을 때와 어머니가 아팠을 때 다음으로 세 번째 이혼 위기였다. 결혼 내내 싸우긴 했지만 가장 크게 싸웠던 시기였고 이혼을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준비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10년을 한길만 걷다 보면 뭐든 된다는 말이 있다. 오랜 노력 끝에 남편의 사업장에 수익이 생기고 사업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빚을 갚고, 법인을 등록하고, 사업장을 키워 직원 수를 점점 늘렸다. 월급이 조금씩 늘어 저금을 시작했다. 큰아이 장애인 특수학교 진학에 맞춰 이사도 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버티고 견뎌온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


 남편의 사업장은 해마다 어렵다. 수십억의 매출을 달성해도 매출은 매출 일 뿐 순수익은 아닌 것이다. 다달이 나가는 직원들 월급이 억 단위로 늘어나고 회사 운영비도 만만치 않다. 법인의 대표이고 직원이 몇 명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고생과 스트레스는 몇 배로 늘었다. 김대표의 연봉은 직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재정이 어려울 때면 직원들 월급 먼저 주고 자기 월급은 몇 달씩 밀려서 가져온다.


 전형적인 외향형의 남편은 사람과 쉽게 친해지고 사업 파트너와도 쉽게 손을 잡는다. 쉽게 잡은 손은 끝이 좋지 않았다. 10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뒤통수 맞고 손해도 많았다.


 남편의 회사에는 친구들이 자주 드나든다. 뒤통수 맞아 본 경험을 바탕으로 학연과 지연이 최고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학교 동기들과 손을 잡고 일을 하고 새로운 인맥도 친구나 지인의 소개로 만나니 실패할 확률이 줄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크다. 남편의 회사는 친구들의 사랑방이 된 지 오래다.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들르고, 근처에 왔다고 들르고, 같이 술 한잔 하자고 들른다. 친구들과 사업을 하고 친구를 고용하니 남편의 사업장에 놀러 오면 최소 서너 명은 모일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이다. 친구들 많은 곳에 또 다른 친구가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니 날마다 술이다. 저녁 먹는다고 술, 친구 왔다고 술, 같이 일한다고 술. 누가 속상한 일 있다고 마시고, 누구 축하할 일 생겼다고 마시고, 여럿이 모였으니 마시고 또 마신다.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면 같이 일하는 친구와 오붓하게 또 한잔한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는 대외적인 자리 이외에는 이놈 저놈 막말하며 허물없이 지낸다. 고용된 친구는 말이 고용이지 동업인 냥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 서로 참아주고 도와주면서 마음까지 통하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일이 늘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싫은 소리 한번 못해 끙끙 앓는다. 친구가 담당했던 일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결국 엄청난 손해를 가져왔다는 명분이 생기고 나서야 헤어진다.


 남편은 뭔가 많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능력도 많다. 예를 들어 공감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진다거나, 위로가 필요한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거나, 미안해도 사과하는 방법 자체를 모른다거나, 죄의식 데드라인이 법을 기준으로 한다거나, 감성과 낭만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거나, 이성보다는 본능이 앞선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큰 것부터 시시콜콜한 것까지 수 백가지는 더 댈 수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남편이 답답할 때가 많았다. 저 바보가 그래도 돈을 벌어 오니 신기하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기도 했다. 그런 남자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 중 아주 큰 것을 가지고 있다. 대단한 자존감과 넉살이다. 거기다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니 잘될 거라 입버릇처럼 말하고 말이 씨가 될 때까지 앞만 보고 걷는다.

 나는 '네 미련함의 결실이 과연 어떨지 어디 두고 보자!'라며 혼잣말로 비아냥댔다. 하지만 보란 듯이 뭔가를 만들어 낸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그의 손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남편에게 경의로움을 느껴졌다.


 어디든 머리만 대면 잠들던 사람이 늙어가느라 예민해진 것인지 요즘 스트레스로 잠을 자주 설친다.

 득도 실도 많은 인싸의 사업장은 하루하루 힘겹지만 어림도 없어 보이는 일들을 해내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이제는 너의 방식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힘내라 남편!"




엄마가 췌장암이 아니라고 합니다. 물혹이랍니다. 위장장애는 더 검사해 봐야 알겠지만 큰 병은 아닌 것 같아 일단 안심입니다. 어제는 기도하며 참 많이 울었는데 오늘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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