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이뻔소
남편은 자신은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본인도 분명히 알 텐데 어떻게 죽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남자의 과도하게 낙천적인 사고가 가장 큰 원인이기는 하지만 죽음이 자신과 멀리 있다는 착각에서 나오는 말인 것 같다.
나는 누가 먼저 죽을 까에 대해 가끔 이야기한다. 죽음 이후가 두렵지는 않지만 죽는 순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많은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다.
주변에는 벌써 고혈압과 당뇨로 약을 먹는 친구도 있다. 남편은 나보다 네 살이 많다. 남편 친구들은 모이면 누가 더 많이 아픈지 배틀을 한다. 안 아픈 친구가 없는데 자기는 자전거를 열심히 타서 건강하다며 좋아한다. 나는 한 술 더 떠 운동으로 다져진 다리 근육이 섹시하다며 과할 정도로 칭찬하면 남편은 입이 찢어져라 웃는다. 신이 나서는 바지를 걷어붙이고 종아리 근육을 있는 힘껏 끌어모아 요리조리 뽐내며 감탄에 탄성을 지른다. 예전에는 몰랐던 남편의 단순하고 귀여운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 피식 웃는다.
남편은 마흔 넘어서부터 임플란트를 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스트레스로 잇몸이 녹았다고 주장하지만 치과에서는 치주염 때문이라고 말한다.
처음 임플란트를 하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남편이 치과 의사에게 잇몸이 좋지 않은 원인을 물었다.
"잇몸 뼈가 왜 이렇게 녹는 거예요?"
"염증이 생겨서 그렇죠. 치주염입니다."
"치주염은 왜 생기는 거예요?"
"흡연하시는 분들은 치석이 많아서 치주염이 잘 생기기도 하고요. 양치를 열심히 안 하셔도 생깁니다."
그렇다. 남편은 그동안 양치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담배는 하루에 한 갑 반에서 두 갑은 피운다. 스케일링을 받아도 그때뿐이다. 항상 어마어마한 치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의학 지식사전에서는 치주염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치주염의 원인
대부분의 치주염은 잇몸 염증(치은염), 치아와 잇몸에 플라크(주로 치아에 끊임없이 침착되는 박테리아, 침, 음식물 찌꺼기 및 죽은 세포로 이루어진 얇은 막 형태의 물질)와 치석(굳어진 플라크)의 장기 축적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치아와 잇몸 사이에 주머니가 형성되어, 치근과 하부 뼈 사이까지 내려갑니다. 산소가 적은 환경에서 이 골에 플라크가 쌓이면 치주염에 대한 면역체계 취약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형태의 세균 증식을 촉진합니다. 플라크와 세균이 치아를 제자리에 고정시켜 주는 조직과 뼈를 손상시키는 만성 염증을 야기합니다. 만일 질병이 지속되면, 결국 너무 많은 뼈가 손실되어 치아가 통증과 함께 흔들릴 수 있으며 잇몸이 퇴축합니다.
출처-MSD
처음 임플란트는 할 때 남편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는 이를 다 임플란트로 갈아 버릴 거야!"
"사람 이가 사랑니 빼고 스물여덟 갠가? 그걸 다 간다요?"
"어! 다 갈아 버릴 거야! 그리고 난 로보캅이 될 거야! 팔도 로봇팔로 바꾸고 다리도 로봇다리로 바꿀 거야!"
"제정신이니??"
"심장이랑 머리만 빼고 나는 다 바꿔 버릴 건데?"
"아이고! 대단히 앞서가시네~ 돈 많이 벌어야겠네?"
"나는 많이 벌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에이그... 네가 뭔들 못하겠니?"
"어! 나는 부자가 돼서 죽지 않고 오래 살 거야!"
"이것 보세요! 돈 많은 이건희 회장도 죽었고 불로초 찾던 진시왕도 죽었거든요! 안 죽는 사람이 어디 있니?"
"여기 있잖아! 나!! 나는 안 죽는다니까?"
"그래!! 그래라~~ 자기는 로보캅 해라!! 나는 적당히 살다가 죽을 테니까 혼자 천년만년 살아라!"
남편의 잇몸에는 현재 7개의 임플란트가 박혀 있고 나머지 이도 상태가 좋지 않다. 이제는 깍두기도 씹지 못한다. 머지않아 정말 이를 다 갈 모양이다.
남편의 원대한 포부를 조롱하듯 임플란트 하나하나를 박는 과정은 엄청난 고통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아프고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결심했다.
'이 관리 잘해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아이들 이 치료도 제때 해줘야겠네!'
자기 몸 그대로 잘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 최고가 아니겠는가? 물론 더 건강해지면 좋고!
죽지 않는 남자는 정말 죽지 않기 위해 예전보다 열심히 운동도 양치도 열심히 한다. 물로 사이사이 찌꺼기를 제거하는 비싼 제품까지 사용한다. 그러나 잇몸은 이미 많이 상했고 술과 담배도 여전하다. 많이 아파봐야 끊을 모양이다.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란다.
남편아! 내가 먼저 죽거든 제발 내 바람대로 장기를 기증해 다오. 어차피 화장할 건데 아껴서 뭐 하겠니? 죽어서 머나먼 시댁의 선산에 묻히는 것도 싫다. 수목장이나 바다에 뿌려지고 싶지만 아이들이 찾아갈 엄마가 없어 슬퍼할지 모르니 가까운 납골당에 뒀으면 좋겠다. 부디 과학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나를 복제하거나, 냉동시키거나, 인조인간으로 만들지는 말고!!
오래오래 살아라. 로보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