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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Feb 01. 2024

주말 설거지 남편에게 넘기기

에세이-이뻔소


 어느 토요일. 집안일이 끝도 없다. 늦은 아침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처리기에 눌어붙은 찌꺼기를 떼어 내고, 청소기를 돌렸다. 각 방에 쓰레기통을 비우고, 쓰레기를 밖에 내다 버리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금세 또 점심때다. 점심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잠시 일 하다가,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 주고, 다 마른빨래를 걷어 두고, 세탁기 안에 젖은 빨래를 꺼내다 널고, 걷어 둔 빨래를 갰다. 서랍에 빨래를 가져다 넣고, 이불을 털고, 베개 커버와 이불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운동을 하고, 샤워를 했다. 책을 보려고 잠시 앉아 있었는데 또 밥 할 시간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저녁밥을 하고, 밥상을 치우는데 자기 먹은 밥그릇 하나 싱크대로 옮기는 사람이 없다. 설거지하는데 접시를 다 깨 부수고 싶었다.

 늘어진 자세로 의자에 앉아 유튜브만 보고 있는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너네 종이니?? 나는 하루 종일 바쁜데 왜 애들이랑 자기는 먹고 일어나고! 먹고 일어나고!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네? 주말이라고 해주는 밥만 먹고 내내 누워만 있니? 내가 종일 정신없이 움직이는 거 안 보여?"

 "보이지! 쉬었다가 해! 좀 쉬었다가 하면 되지!"

 "쉴 시간이 있어야 쉬는 거지!"

 "그럼 밥을 좀 간단하게 먹어! 많이 차리지 말고!"

 "자기 평일에 맨날 식당밥 먹으니까 주말이라도 집밥 먹이려고 차리다 보면 많아지는 거지! 누가 힘이 남아 돌아서 그렇게 차리니? 적게 차리라는 말 말고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는 말은 못 하니?"

 "그래! 알았어! 오늘 설거지는 내가 할게! 자기는 그만 쉬어!"

 "어이고~ 빠르기도 하셔라~ 벌써 다 했거든?"

 "어? 벌써 다 했어? 에이~ 내가 하려고 했는데~" 

 "웃기시네! 설거지하는 소리 다 들었으면서 이제서 설거지는 무슨... 됐고! 앞으로 주말 설거지는 자기가 쭈욱~~ 다 해!"

 "어? 그 많은 설거지를 나 혼자 다 하라고?"

 "어!! 그 많은 설거지를 여태 나 혼자 다해왔네!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 안 드니? 밥 하는 것도 지겨운데 세끼 설거지까지 하려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야? 내가 하면 당연한 거고 네가 하면 힘든 거야? 나는 이제부터 집안일 줄일 거니까. 자기랑 애들은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좀 나눠서 해!"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부탁이 아니었다. 통보였다. 그동안 수없이 부탁하고 잔소리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각자 해야 할 일들을 종이에 적어 식탁 옆 벽에 떡하니 붙여 놓았다.


*김민수가 할 일
1. 주말 아침과 저녁 설거지 하기.
2. 운동복은 자기가 세탁해서 널기.
3. 아침마다 빨래 걷어서 차곡차곡 개 놓기.
4. 재활용 쓰레기 가져다가 분리해서 버리기.
5. 종량제 쓰레기 밖에 버리기.
6. 거실 화장실(본인이 쓰는 화장실) 청소는 전담해서 하기.
7. 음식물 처리기에 눌어붙은 찌꺼기 처리 하기. 

*봄이 율이가 할 일
1. 밥 먹기 전에 수저, 물 식탁 위에 올려놓기.
2. 자기가 먹은 컵이나 간식 그릇은 자기가 설거지하기.
3. 아침에 이불 개고 책상 정리 하기.
4. 자기 실내화 스스로 빨기.
5. 하교 후 물병 닦아 놓기.

*공통적으로 할 일
1. 자기가 먹은 식기는 식사 후 싱크대에 가져다 놓기.
2. 벗어 놓은 빨래는 세탁 바구니에 가져다 넣기.
3. 개 놓은 빨래는 자기 서랍에 가져다 넣기.
(이외에도 시시콜콜한 것들이 A4 한 장 가득이었다.)

 

 벽에 붙여 놓은 글을 본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깡패야? 뭐가 이렇게 강압적이야?"

 "강압적이라고? 그럼 부탁할 때는 들어줬니? 군소리 말고 그냥 해!! 잔소리도 이제 지겨워! 특히 자기!! 여기 써 놓은 거 안 지키면 나 집 나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남편도 자기가 너무 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집에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 않다가 어쩌다 설거지 한 번하면 허리 아프다며 유난을 떤다. 자기가 생각해도 할 말은 없다. 남편은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뭐라 말은 못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남편과 아이들은 똥 씹은 표정을 하고서는 벽에 붙은 자기 할 일을 다시 읽었다. 아이들은 작은 일이었지만 남편은 갑자기 큰일이 많아졌으니 귀찮고 싫을 것이다. 시킨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살살 달래야 했다.

 "밥 맛있게 잘 먹었죠? 내가 맛있는 밥 차리느라 한 시간을 서 있었더니 힘드네! 이제~ 자기가 설거지해 줄 차례죠?"

 "...... 이따가 할게..."

 "아니야~ 자기야~ 그릇은 마르기 전에 얼른 닦아야지~ 설거지는 밥 먹고 바로 하는 거야! 어머니도 설거지는 바로바로 하라고 하셨잖아요~ 얼른 치우고 쉬면 되죠?"

 남편에게 잔소리할 때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적당히 섞으면 반격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잘 알고 있다. 

 "배불러서 귀찮은데 한숨 쉬었다가 하면 안 돼?"

 "아냐! 지금 해야 돼! 누우면 또 일어나기 싫어지잖아? 내가 그릇이랑 식탁은 다 치워놨네~"

 "에이씨... 귀찮은데!"

 "그래? 그럼 이제 굶을까?"

 "그래! 굶자! 한 끼 굶는다고 죽냐?"

 "아닌데~ 계속 굶을 건데? 그리고 자기만 굶을 건데?"

 말은 부드럽게 하지만 눈에서는 살벌함이 번쩍였다. 남편이 잠시 움찔하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얼굴 표정을 고쳐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지금 막! 열심히 설거지하려고 했지~ 내가 설거지를 얼마나 잘하는데~"

 "어! 그렇지? 우리 자기가 요리는 못해도 설거지를 엄~청 잘하지?"

 "당연하지! 나 설거지 엄청 깨끗하게 잘해! 걱정하지 마! 자기는 저기 앉아서 쉬어!"

 "나는 쓰레기통도 비우고 빨래도 돌려야 되거든요!"

 "어! 알았어! 자기는 자기 일 해! 내가 자기보다 설거지를 더 잘하는데~ 몰랐지? 자기는 설거지를 너~무 대충대충 하더라~ 설거지는 깨끗하게 헹구는 게 포인트야~ 어유 씨!! 근데 설거지 거리가 왜 이렇게 많냐??"

 "응~ 다 자기가 먹을 음식 만드느라 그런 거야! 큰 것부터 닦으면 되지?"

 "네!! 알겠습니다!!"

 "아이고 우리 민수 착하네~ 고마워요~"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칭찬해 주니 그제서 진짜 웃음을 씩 웃는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이런 식의 이런 대화가 가능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똥강아지 작은 아이만 빼고 남편과 큰아이는 이제 자기 할 일을 당연하게 실천하고 있다주말이나 쉬는 날이면 남편은 매 끼니마다 설거지를 하고, 아침마다 빨래를 예쁘게 개 놓는다. 종이에 적어 두었던 것들의 대부분을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물까지 기대하면 안 되는 복병은 있다. 남편은 아이들 옷과 내 옷을 구분하지 못한다. 작은 아이 옷을 큰 아이 옷이라고 개 주니 큰아이가 가져다 꾸역꾸역 입었고 바지 고무줄이 다 늘어나 버리게 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내 옷이 보이지 않을 때는 아이들 방 옷 서랍을 열어 봐야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남편이 빨래를 개 두면 내가 구분해서 다시 정리해야 했다. 잘 못하는 부분은 잔소리해도 소용없다. 내가 보충한다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바쁜 아침에 빨래 개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주부 생활 20년이 다 되어가니 밥 하는 것도 지겹지만 설거지하는 것은 더 지겹다. 재미도 없고 밥 하느라 힘들었으니 설거지는 더 하기 싫다. 그러니 주말에 설거지를 해 주면 세상 편하다. 작은 식기세척지가 있어 설거지의 절반은 식기세척기가 하지만 식기세척기도 애벌설거지는 해서 넣어줘야 한다.

 남편은 가전제품 중에 식기세척기와 세탁기가 가장 유용하다며 엄지를 치켜든다. 둘째가 막 태어났을 때는 몸이 힘들어 남편에게 아기 빨래 삶는 것을 부탁했었다. 매일 밤마다 빨래 삶기 힘들었던 남편은 당시 우리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삶는 기능과 건조기능이 있는 비싼 세탁기를 할부로 지르고 와서는 빨래 삶는 것에서 해방되었다며 행복해했다. 이후로 더 좋은 세탁기를 사도 군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제 설거지가 자기 일이 되었으니 식기세척기가 그리 고마운 물건인지 몰랐다며 꼭 필요한 가전제품이라고 말한다. 음식물 처리기도 내부 코팅이 다 벗겨져 눌어붙은 찌꺼기 빼내는 것이 일이었는데 그것이 또 자기 일이 되고 나니 제발 새로 장만하라고 돈까지 준다.

 남편은 가전제품을 새로 사는 것은 과소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앞으로는 말썽인 제품이나 오래된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일은 남편에게 맡기려고 한다. 새로 사달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본인도 불편하고 답답할 테니 새로 사지 않고 고생을 자청한다고 타박할 것이고, 검소한 척 불편함과 타박을 조금만 더 견디다 보면 머지않아 새 제품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아이들과 남편이 자기들도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그것 만으로도 고맙고 기쁘다. 다소 억지스러운 변화였지만 이런 변화는 가정의 분위기를 바꿔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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