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이뻔소
부평에 살 때 남편은 2년 정도 지하철로 출퇴근 한 적 있다. 사업은 시작했지만 사무실도 없어 남의 사무실 한편에 자리를 마련하고 집까지 먼 거리를 오가던 시절이었다. 수익은 없고 대출받아 근근이 살면서 타고 다니던 차까지 팔아야 했다. 애주가에게 대중교통 퇴근이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남편은 소주 두 병이면 견디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시끄러워서 못 받고 귀찮다고 무음으로 해 놓는다. 취하면 전화가 오는지도 모르니 술을 마시면 연락이 잘 안 된다.
만취상태로 지하철에서 잠들어 종착역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은 허다했다. 또 곤히 잠든 동안 가방, 휴대폰, 지갑은 사라지고 없다. 털린 건지 두고 내린 건지 알 수 없지만 사라진 물건이 분실물센터에도 없으니 털렸다고 보는 것이다. 10년 전 지하철은 늦은 밤 취객을 상대로 하는 절도가 꽤 있었던 모양이다. 집 주변 시장 근처에서 퍽치기로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렸다. 남편은 이미 기절상태라 뒤통수 맞는 일은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하철 역 출구에서 걸어서 5분이면 집에 도착한다. 거리가 멀지는 않지만 횡단보도를 몇 개 건너야 한다.
통화가 되어 부평역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고 기다리는데 동네를 몇 바퀴 돌고도 남을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한 겨울이었다. 꽁꽁 싸매고 구시렁거리며 남편을 찾아 나섰다. 길 모퉁이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 위에 거의 누운 상태로 자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남편이었다.
"아이고~ 미친다! 자기야! 일어나 봐!! 일어나 보라고!!!"
'찰싹' 하고 허벅지를 때렸지만 눈만 떴다 감는다.
"어떻게 여기서 자고 있니? 미쳤나 봐! 정신 좀 차려~~ 야!!! 얼른 일어나라고!!"
이제는 길에서도 자는구나! 바닥이 아니라서 다행인가? 그래도 화가 치민다.
이후로 늦은 밤 남편을 찾아 주변 골목을 뒤지고 다녀야 했다. 어디 쓰러져 있을지 모를 일이다. 예전에 남편이 도로에 쓰러진 취객을 경찰에 신고했다가 가해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는데 이제는 본인이 도로 위 취객이 될 판이다.
어느 날은 노트북이 든 가방에 휴대폰에 안경까지 잊어버리고 부평역에서 집까지 오는데 40분 걸린 적이 있다. 길에서 자지 않았으니 다행이지만 동네를 뱅글뱅글 돌다 온 것이다.
다니는 교회가 코앞이었다. 믿음도 없고 교회도 나가지 않는 남편은 집으로 오지 않고 교회 옆 전봇대 앞에 서서 예수님과 한참 수다를 떨고, 갔던 길을 돌고 돌아 아파트 1층 주차장 구석에서 시원하게 노상방뇨를 하고, 출입문 옆 우편함에 머리를 세게 박고, 자빠져 누워있다가 들어왔다.
가방과 휴대폰의 행방은 알 수 없었고, 안경은 1층 우편함 아래 떨어져 있었다. 프로그램을 하는 사람이 재산인 노트북을 자꾸 잃어버리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다시 차를 사고 길에서 자는 일은 없었지만 더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차에서 잤다.
새벽 3시에 남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보고 순간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다행히 경찰이나 119 대원은 아니었다. 남편이었다.
"자기야...... 나 좀... 꺼내주라..."
"뭐?? 꺼내달라고? 거기 어딘데??"
"여기...... 어... 1층에 기계주차장인데... 나 안에 갇혔어! 나 좀 꺼내 주라~"
"기계주차장 안이라고? 거길 왜 들어갔어?"
"몰라~ 일어나 보니까 기계 주차장 안에 있네? 얼른 내려와서 좀 꺼내주세요~"
"어휴~ 가지가지하네~ 정말!!!"
필로티 구조의 아파트 지상 주차장이 좁아 기계주차장이 설치된 나 홀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기계가 움직일 때마다 남편은 차와 함께 덜컹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이 되어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거긴 왜 들어간 거야? 아니 어떻게 들어간 거야?"
"대리운전기사가 그냥 차를 입고시키고 갔나 봐!"
"왜? 사람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왜 차를 입고 시켜?"
"그러니까! 왜 그랬지?"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지금?"
"그러게! 왜 그랬을 까? 나한테 물어보는 거지."
"아니 대리기사가 미친 거 아냐? 사람이 탄 차를 왜 입고시켜? 어떻게 나오라고? 기계가 계속 움직일 텐데 차 문 열고 내리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라고?"
"그러게?! 그러고 보니 큰일 날 뻔했네?? 사실 나 아까 조금 무서웠어! 자다가 추워서 일어났는데 앞은 깜깜하지! 여기가 어딘가 싶어서 불 켜고 보니까 기계주차장 안에 있는 거지! 차가 새로 들어오니까 덜컹거리면서 움직이는데 무섭더라니까! 떨어질까 봐 나갈 수도 없고..."
관리실 CCTV를 확인해 보니 대리운전기사가 차를 기계 주차장에 예쁘게 주차하고 잠든 남편을 두고 차량 뒷번호 네 자리를 꾹꾹 눌러 그대로 입고시킨 뒤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 경찰을 부르려 했다. 경비아저씨는 서울에 기계주차장은 안에서 내리는 곳도 있다며 대리기사가 착각한 것 같다고 나를 진정시켰다. 경찰서를 오갔어야 할 대리기사는 경비아저씨의 중재 덕분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날 평온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남편은 술에 취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잔다. 술집에서 자고, 노래방에서 자고, 회사 1층 휴게실에서 자고, 집에 오는 길에 주유소에서 자기도 했다. 주유소에서 잠든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여기저기 알 수 없는 곳에서 잠드니 동의를 구하고 휴대폰에 위치추적 어플을 깐 적이 있다. 하지만 감시당하는 것 같다는 남편의 불평에 위치추적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은 밖에 나가면 무척 심심하거나 아쉬운 일이 아니면 전화를 걸지 않는다. 술자리가 있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전화를 한 번만 해 달라고 그리 부탁을 해도 스스로 전화를 하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포기하고 먼저 전화를 하지만 이미 술자리가 시작되고 나면 받지도 않고 늦게 전화를 받아도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어? 나 밥 먹고 있는데! 왜?"
"왜는 무슨 왜야? 늦으면 전화 좀 하라고 했지!"
"그러게! 밥 먹고 갈게."
"밥 먹는다고? 술 마시는 거 아니고?"
"어... 밥 먹으면서 술 한잔하고 있지!"
"밥은 먹기는 먹어?"
"어...... 알면서 왜 그래~"
남편은 술을 마시면 밥을 먹지 않는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불러서 술을 많이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술 마시면서 밥 먹는다고 말하는 이유는 미안해서가 아니라 대충 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소리다. 그나마 이제는 술 먹는다고 뭐라 하지 않으니 마신다 말이라도 하는 거지 더 오래전에는 술 마시는 와중에도 죽어도 밥만 먹고 간다고 우겼고 집에 들어와서도 안 마셨다고 끝까지 우겼다. 하도 우겨서 음주 측정기를 샀다. 그러자 음주 측정기가 불량이라고 또 우겼다.
나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다.
대학 시절 선배들이 내 이름은 酒(술 주) 자에 喜(기쁠 희) 자를 쓸 거라고 했다.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취하면 술을 따르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을 다 죽인다고 그리 불렀다. 그만큼 술자리를 즐겼던 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술을 마시면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되어 응급실에 실려 갈 뻔하기도 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야 술을 마시면 위험해지는 체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 맥주 한두 잔은 했었는데 신앙이 깊어지고 취해 정신이 흐트러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게 되면서 이후로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다.
한때 술자리를 즐기던 내가 분위기를 모를 리 없고 남편의 마음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남자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 적당히 즐기고, 기분 좋을 만큼만 마시고, 제정신으로 들어오면 좋으련만 자신이 술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으로 시작해 녹다운으로 마무리한다.
술을 끓겠다는 다짐을 수백 번은 아니어도 몇 번 정도는 한 것 같은데 며칠 가지 못했다. 이젠 아예 다짐도 하지 않는다. 지키지 못할 다짐이라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요즘도 대리운전기사를 보내고 차에서 자다가 올라온다. 여름에는 모기밥이 되든 말든 그냥 내버려 두지만 겨울이면 저체온증에 걸릴까 봐 남편 차를 찾아다닌다. 주차장이 만원이라 멀찍이 주차하고 가버리면 한참 찾을 때도 있고 내비게이션에 동까지 찍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데나 대충 대고 가는 사람도 있다. 열여덟 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라 주차장은 어마어마하다. 주변에 없으면 포기하고 들어와야 한다.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기도하다 잠을 청해 본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으면 자기 체면을 건다.
"괜찮을 거야! 안 죽는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죽을 놈은 뭘 해도 죽고 살 놈은 뭘 해도 살지! 나는 편하게 잘 수 있다! 자자! 자자! 조금이라도 자자!"
코로나시대 초기였다. 남편이 자기 방에 격리되었을 때 제일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병세도 아니고 답답함도 아닌 술과 담배를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민수는 주중 5일 동안 술을 마시고도 주말에 집에서 또 마신다. 이 정도면 심각한 중독 아닌가?
이 남자의 슬기롭지 못한 음주 생활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