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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Feb 22. 2024

남편 손 꼭 잡고 막걸리 한잔하러 갑니다.

에세이-이뻔소


 밤 9시. 아직 퇴근하지 않은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어디야? 왜 안 와?"

 "나 지금 집 앞인데~ 막걸리 한잔 하러 가자."

 "지금?"

 "응. 배고파! 빨리 나와~"

 "배고프면 식당 가서 밥 먹을 것이지. 왜 막걸리를 마셔?"

 "어묵탕 시켜놓고 자기랑 한잔 하려고 그러지~ 얼른 나와~"

 "나는 술도 안 마시는데 무슨 한잔을 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에이~~ 귀찮은데~ 애들은 어떻게 하라고~"

 "애들은 지들이 알아서 자겠지!"

 "아~~~ 귀찮은데~~ 1층 주차장이야?"

 "어! 주차장에 있을게."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애들에게 먼저 자라고 일러두고 옷을 대충 챙겨 입고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갔다. 주차장 한쪽 끝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편이 보인다. 총총총 뛰어 옆으로 갔다. 남편도 담배를 끄고 내 옆으로 걸어왔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걷는데 남편이 내 팔에 팔짱을 낀다.

 "뭐야~~ 팔짱은 보통 여자들이 끼지 않나? 자기가 나한테 팔짱 끼니까 좀 웃긴데?"

 "에이~ 누가 끼면 어때~ 나는 좋은데?"

 "손잡고 갈까?"

 "그럴까?"

 우린 손을 꼭 잡고 앞뒤로 신나게 흔들며 걸었다. 유치하지만 정겹다. 남편도 웃고 나도 웃었다.

 남편이 말했다.

 "이렇게 손잡고 막걸리 한잔 하러 가니까 진~짜 좋네!! 진작에 이렇게 살걸~ 그동안에는 왜 못 했지?"

 "싸우느라 바빴지 뭐! 맨날 이혼이 어쩌고 저쩌고 했으니... 그래도 이런 날이 오긴 오네?"


 한참 싸울 때는 절대 좁혀지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둘 사이는 멀기만 했다. 이제는 포옹도 하고, 손도 잡고, 출근인사로 뽀뽀도 한다. 뭐든 먼저 표현하는 법이 없는 무뚝뚝한 남편이지만 내가 요구하면 못 이기는 척 얌전히 받아준다. 이제는 애정표현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서운해하고 혹시 화가 난 건 아닌지 눈치를 살핀다. 남편은 나이 50에 아내와 손잡고 다니고 출근 때마다 안고 뽀뽀하는 부부가 어디 있냐고 말하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는 손잡고 다니고 출근할 때 뽀뽀도 해!"라고 자랑을 한다.


 "근데 막걸리 집 이름이 뭐야?"

 "몰라?"

 "자주 가면서 그것도 몰라?"

 "그러게? 집 앞이라고 간판도 안 보고 다녔네?"

 막걸리 집 간판에는 "새벽집"이라고 쓰여 있었다. 새벽집은 11시까지만 한다. 이름만 새벽집이다.

 90년대 대학가 막걸리 집 같은 예스러움에 촌스러움까지 더했다. 투박한 나무 식탁 아홉 개가 전부인 작은 술집이다.

 

 남편은 회사 근처에서 술을 한잔하고 집에 돌아오면 배가 고프다며 막걸리 집으로 혼자 어묵탕을 먹으러 갔었다. 요즘 들어 부쩍 같이 다니는 것에 재미가 들인 남편은 아파트를 운동삼아 돌 때 나를 끌고 나가는 것처럼 막걸리 집도 함께 가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술을 끊은 지 15년이 넘었다. 취할 일이 없으니 술자리도 재미없다. 그래도 함께 하는 것이 썩 나쁘지만은 않아 결국 따라나선다.

  

 야식을 즐기지 않는 나는 잘 시간이 다 되어 뭔가 먹는 것은 부담스럽다. 마주 앉았지만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다. 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장님은 매번 막걸리 대접 두 개를 가져온다. 그리고 남편은 장난스럽게 "한잔 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많으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계속 소리를 높이다 보면 목이 아파 슬슬 짜증이 나지만 짜증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말을 줄이기로 했다. 본의 아니게 남편의 말을 경청하는 모양이 된 것이다.

 술을 마시면 남편은 할 말이 그렇게 많다. 회사 이야기, 친구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가정사까지 다 꺼내 놓는다. 두 시간 동안 혼자 잘도 떠든다. 이야기 주머니에서 먼지까지 탈탈 털어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남은 술과 안주가 괜히 아까울 때면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살짝 던져 주기도 한다.

 "자기는 어머님 아버님한테 서운했던 거 하나도 없어?"

 "있지! 왜 없어?"

 "근데 왜 하나도 이야기 안 해?"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지!"

  라고 말하던 남편이 어느 날은 갑자기 어머니에게 서운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엄마한테 진짜 서운한 게 한 가지 있는데... 엄마가 내 한계를 정해 버렸다는 거야. 엄마는 내가 중학교 때부터 '민수 니는 니가 알아서 학교 가라.'라고 했거든? 그래서 나는... 기숙사 있는 전자공고에 간 거고. 그 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돈을 한 푼도 안 받아. 기숙사비랑 식비랑 학비를 전액 다 지원해 주니까 경쟁률이 어마어마했지.

 그리고 엄마는... '대학은 무신 대학이고? 내는 대학 보낼 줄 능력 없다. 느그들은 대학 갈 생각 마라.' 그러셨거든? 그러니까 대학은 꿈도 못 꿨지! 나는 그냥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

 "아버님 일찍 돌아가시고 시골에서 농사지어서 네 형제 키우기 힘드셨겠지. 우리 엄마도 나 대학 못 보내 준다고 했었어! 근데 나는... 중 3 때 담임 선생님이 이기적이라는 말 듣더라도 꼭 대학에 가라고 가르쳐 주셨거든? 그래서 욕먹는 거 알면서도 기를 쓰고 가겠다고 우겼지. 그래도 뭐! 장학금 받고 다니니까 남들한테 자랑하시더라고? 근데 웃긴 건 내가 대학을 가고 나니까 동생들도 줄줄이 보내시는 거 있지? 친구들 중에는 본인이 학비 벌어서 다니는 애들도 있었어! 본인이 학비 벌어서 다니는 건 엄청 힘들지... 그래도 요즘은 학자금 대출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아무도 그런 걸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네 나는... 대학 못 가는 게 당연한 건 줄 알고 살았는데... 나이 들어서 보니까 그게 아닌 거야! 그때 엄마가 내 한계를 정해 버려서 나는 대학 갈 꿈도 못 꾼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그게 나는 너~무 서운하고 억울하더라! 엄마가 그런 말만 안 했어도 내가 알아서 갔을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어려서 뭘 알았나? 엄마가 그러라니까 그래야 되는 줄 알았지! 빨리 취업해서 돈 벌어야 되는 줄 만 알았지... 엄마가 내 한계를 정하지만 않았어도 나는 지금 다르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까 그게 지금도 속상하더라고!"


 남편은 고졸이다. 대구에서 구미전자공고로 진학해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고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다. 공부는 꽤 잘했던 모양이다. 충분히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이었던 것이다. 공고에 진학하고부터 공부할 마음도 접었다고 했다.

 서른 넘은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서울에 있는 전문대에 들어갔다. 1학년 휴학 중에 나를 만났다. 결혼을 해서, 첫째 아이를 낳아서, 아이가 아파서... 계속 돈을 벌어야 했다. 복학은 점점 멀어져 갔고 학교에서도 복학하라고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남편은 유명 대학을 졸업한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정작 대표인 자신은 고졸이 뭐냐고 부끄러워했다. 나는 "대학 졸업장 그거 별거 아냐!"라고 말하지만 남편은 못내 아쉽고 서러운 모양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상처부터 최근에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남편 앞에 모두 꺼내 놓고 위로받는데 남편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서툴다. 아파도 아픈 줄 모르는 사람이다. 절대적인 존재였던 어머니에 대해 서운하다는 말은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을 꺼내 놓았다.


 남편은 아직도 술을 마셔야지만 속에 있는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을 위해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대화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말이다. 그전까지는 막걸리 집을 계속 드나들어야 할 모양이다.


 나는 오늘도 남편과 손을 꼭 잡고 막걸리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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