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벼리 Feb 29. 2024

남편이 자꾸 운다.

에세이-이뻔소


 남편은 평생 세 번만 울 것 같은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자꾸 운다.


 술을 마시고 집으로 오는 동안에 남편은 대리운전기사와 이야기를 한다. 대화가 오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 떠든다. 취기가 오르면 나른한 몸을 늘어트리고 대리기사에게 말을 건넨다.

 "대리운전 얼마나 했어요? 나도 예전에 대리운전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남편의 나이 서른 살. 사내커플이던 시절 남편은 내 손을 잡고 회사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나 새 직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동안 대리운전을 했었다.

 대화가 시작되면 남편은 치열했던 삶의 무용담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대리운전 시절 이야기, 아이가 아팠던 이야기, 어머니가 아팠던 이야기, 사업을 하면서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놓으려니 시간이 부족하다. 위로받거나 공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남편은 엉엉 울어 버린다.


 "어제 또 대리기사랑 얘기하다가 울었네!"

 "또 울었어? 요즘 왜 그렇게 자주 울어?"

 "글쎄?? 늙어가니까 마음이 약해지나?"

 "무슨 얘기했는데?"

 "뭐! 애 아팠던 얘기랑... 사업하면서 힘들었던 얘기랑... 대리운전 했던 얘기?"

 "다른 건 모르겠는데... 애 아팠던 것 때문에 자기가 울었다고?"

 "어!"

 "그럼 나는?"

 "어???"

 "애 아파서 내가 그렇게 고생하고 힘들 때. 자기는 자기 일만 했잖아! 그런데 또 자기가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니? 내가 울 때는 아는 척도 안 했잖아! 그런 사람이 애 아팠던 게 슬펐다고 운다고? 야~~~ 그건 좀 아니지 않니??"

 "그런가?"

 "그래! 자기도 아빠니까 슬펐겠지? 그래도 고생은 내가 다했는데... 나를 먼저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니?"

 "들지!!"

 "그래서! 위로했니?"

 "안 했지... 음... 못했지..."

 "아이고~ 얄미워라~ 대답은 잘하네!"

 "그래~ 이리 와~ 봐!! 우쭈쭈쭈!! 내가 안아 줄게~~ 우리 마누라 힘들었지? 고생 많았지?"

 "진정성이 없네~ 야!! 됐거든?? 나는 진작에 다 울었거든? 그래서 이제는 안 울거든? 언제 적 일을 가지고 이제서 우는 거야?"

 "그러게? 나는 이제서 우네?"

 "예전에는 그렇게 냉정하게 굴더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 보이니?"

 "응! 그래서 많이 미안하지..."

 "으이그!! 근데 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붙들고 울어? 창피하게? 대리기사는 무슨 죄야? 얼마나 민망하겠어? 운전하기도 바쁜데 처음 보는 남자가 옆에서 떠들다가 막 울어! 진상 아냐?"

 "아냐~ 그 친구도 자기 이야기하면서 울었어!"

 "아이고~ 운전하면서 막 울어? 잘한다~~~ 처음 보는 사람 붙들고 울고 불고! 사는 게 어쩌고 저쩌고 떠들고~ 한두 번도 아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 아냐?"

 "음... 좀 그런가? 관심 없는 친구한테는 나도 말 많이 안 하지!"

 "그래도... '너 지금 힘들지? 나는 지금 이렇게 산다~'라고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잖아! 기분 나쁘거나 듣기 싫을 수도 있지~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런가? 음...... 알았어."

 알았다고 말은 하지만 취해서 하는 행동이니 본인도 제어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는 대리기사를 붙들고 계속 울 것 같다.


 어느 날 남편은 함께 일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만취한 세 남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엉엉 울고 말았다.


 친구 A는 아내가 베트남으로 파견 간다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했었다. A의 아내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A 부부는 평소 각자의 일로 바빴고 서로 참견하지 않고 산지 오래다. A는 서울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구미로 내려가 동창회로 밤새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은 천안에서 친구들이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갔다. 어디든 가리리 않고 자유롭게 다니는 A의 생활은 늘 이런 식이었다. 중학생 아들도 있지만 가정에 신경 쓰지 않은지 오래다. 아내는 외국을 자주 드나들며 며칠씩 집을 비울 때도 있다. 그러니 A는 피장파장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자유로움을 자랑하며 남편에게 너는 왜 그렇게 사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남편은 그런 A가 부럽다고 했다. 어느 날은 우리도 데면데면 살면 안 되겠냐고 했다. 자기도 마음껏 친구들 만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이다. 매일같이 술과 함께하는 사람이 얼마나 더 자유롭고 싶은 건지 한숨만 나왔다. A의 가정은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A는 아내가 베트남으로 가기 직전까지 아내의 결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A의 아내가 말했다. "네가 언제부터 우리한테 신경 쓰면서 살았다고 그래? 그냥 너 살 던대로 살아! 우린 베트남 가서 우리대로 살 테니까!"

A는 그제서 아내의 베트남행이 사실상 이혼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A는 뒤늦게 아내의 마음을 깨닫고 후회했다. 그리고 친구들 앞에서 흐느껴 울었다. 자기는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고...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B는 몇 년 전 사업을 하다 크게 망해 집에 압류 딱지까지 붙었다. 빚을 갚는 동안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B는 최근 남편과 사업을 같이 하게 되면서 덕분에 돈을 다 갚아 신용불량에서 해방되었고, 신용점수가 올라 드디어 신용카드를 발급받게 되었다며 울었다.


 남편은 또 아이가 아팠던 이야기부터 어머니 아팠던 이야기, 사업을 유지해 오느라 힘들었던 10년의 고충을 이야기하며 울었다.

 그렇게 세 남자는 술 취한 김에 서로의 눈물에 기대어 한참을 울었다.


 "그래서! 진짜 다 같이 울었어?"

 "어!! 다 같이 엉엉 울었어! 웃기지?"

 "그렇게 울어 놓고 다음날 회사에서 분위기는 괜찮았어?"

 "크크크... 진짜 웃긴 건. 다음날 민망해서 서로 아는 척도 안 했다는 거야!"

 "아이고~~ 그렇게 울어 놓고 아는 척도 안 해?"

 "울긴 울었는데~ 그냥 각자 슬퍼서 운 거야! 서로 위로하고 뭐 그런 것도 없어!"

 "야~~ 긴다 이??"

 "그렇지? 좀 많이 웃기지??"

 "근데~ 자기야!! 울 거면 차라리 내 앞에 울면 안 될까? 창피하게 왜 자꾸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울어?"

 "진짜??? 근데 나는 자기 앞에서는 눈물이 잘 안 나오는데?"

 "왜?? 내가 자기보다 힘든 게 많아서?? 아니면 미안한 게 많아서??"

 "글쎄?? 그런가?"

 "그래도 울 일 있으면 남들 붙들고 그러지 말고 내 앞에서 울어!"

 "오~~ 좀 감동인데?"

 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의 볼따구니를 힘껏 쥐고 흔들며 말했다.

 "감동은 무슨!! 내가 눈물 쏙 들어가게 해 줄 테니까!"

 "아! 야~~~~"

 

 남편은 내 앞에서 잘 울지는 않지만 자기가 운 것은 또 다 이야기한다. 대리기사 그만 괴롭히라는 소리를 매번 들으면서도 대리기사 앞에서 운 이야기는 빠짐없이 하고, 다른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과 자신이 운 이야기도 빠짐없이 일러바친다. 자기가 운 것을 마치 남의 재미난 이야깃거리도 되는 것처럼 아이 같이 쪼르르 달려와 말하고 싶어 안달이다.


 나는 남편의 눈물이 반갑다. 척박했던 마음의 땅에 단비가 내리고 있다. 눈물은 흘러 마르고 갈라진 땅에 틈을 메우고 촉촉이 적실 것이다. 내내 겨울일 것만 같았던 언 땅에 온기가 돌고 있다. 이제 남편의 마음에도 봄이 오려나 보다.


이전 21화 남편 손 꼭 잡고 막걸리 한잔하러 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