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벼리 Mar 07. 2024

부부는 서로 물들며 살아간다.

에세이-이뻔소

 

 젊어서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의 것만 고집하며 싸웠다. 답이 없는 싸움이었으니 싸우다 지칠 수밖에... 어차피 이혼할 생각은 접었으니 같이 살 방법은 찾아야 할 것 아닌가?


  MBTI 검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남편은 ESTP-A형이고, 나는 ISFJ-T형이다. 현실적인 S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르다. 많이 다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극과 극 일 줄은 몰랐다.

남편은 사교적인 외향형이지만 사람을 가리고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이 몸에 배어 있다. 나는 내향형의 집순이이지만 상황에 따라 외향형으로 바뀌기도 하고 극 소수에게는 깨 방정을 떨기도 한다.

남편은 우직한 일벌레이고 추진력은 좋으나 성급하고 지구력이 부족하다. 나는 신중하고 느리지만 시작한 것은 끝장을 봐야 한다.

남편은 지각력은 뛰어나지만 관심밖의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나는 시야가 좁고 작은 것에 관심을 기울여 섬세히 살피고 관찰한다.

남편은 2배속으로 영화를 돌려보거나 원하는 부분만 본다. 나는 장면과 대사를 마음에 새기며 깊이 몰입한다.

남편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무심하다. 나는 타인에게는 관대하나 자신에게는 엄격하다.

남편은 불같이 급하게 타올랐다가 금세 사그라든다. 나는 늦게 불붙어 남김없이 태워버린다.

남편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조화보다는 효율을 중요시한다. 나는 정서를 중요시하고 조화를 위해 희생한다.

남편은 감정기복이 적고 낙천적이다. 나는 예민하고 민감하고 불안과 걱정이 많고 죄책감과 우울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다르구나! 나와 다른 존재에게 나와 같기를 요구하면 싸울 수밖에...

100층의 전망을 좋아하는 남자 전원주택의 자연을 좋아하는 여자.

음치 & 몸치 & 박치, 똥손에 똥감각까지 겸비했으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남자 남다른 감각과 끼에 금손까지 타고났으나 부끄러움이 많은 여자.

타인과 즐기는 것은 좋아하나 타인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남자와 감정이 복잡하고 소소한 정서적 유대관계를 중요시하는 여자.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를 이해하고 나니 화가 줄고 마음은 편해졌다. 물론 이해한다고 다 마음에 들리는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쉬운 일이 너에게는 어려운 일일수도 있음을 알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마찰을 줄였다. 무존건 희생하지 않고 나를 알리고 이해를 구했다. 하나가 되려 하지 않고 나를 존중하고 너를 존중하며 나란히 걸었다.


 성향이 다른 것은 소소한 문제를 일으키지만 정치적인 성향과 종교는 큰 문제를 일으킨다.

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다. 종교적인 양보는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 종교문제로 싸우며 우리는 깨달았다. 남편은 나에게서 신앙을 빼앗을 수 없고 나 또한 남편에게 믿음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외계인과 우주과학을 좋아하는 남편은 나를 따라 10년 동안 교회를 드나들었지만 한결같이 무교인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듯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 남편이 좋아하는 역사는 제일 싫어하는 과목 중에 하나였고 남편이 입에 달고 사는 삼국지는 따분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할 대화거리를 찾다 보니 이만한 것이 없다. 남편이 듣는 세계사 팟캐스트를 들었다. 진행자의 말투가 거슬렸다. 아재개그를 남발하는 유머 코드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 듣다 말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계속 시도했다. 듣다 보니 어느새 나는 진행자와 친해져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익숙해지고 그의 유머코드를 이해하면서 유치한 말장난에도 피식 웃어줄 수 있었다.

 정치뉴스도 남편이 듣는 것을 같이 듣는다. 그렇게 남편의 관심사와 정치적 성향을 따라가며 발을 맞추어 걸었다. 둘이 나누는 정치이야기는 제법 진지하고 재미있다. 같은 마음으로 한 사람을 씹으면 동지애도 깊어진다. 잘난 척도 받아주고 선경지명을 인정하고 따라주니 남편은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남편은 내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뇌되어 조종당한다는 것이다. 본인도 알고 있으면서 기꺼이 조종당하는 것을 보면 싫지만은 않은 것이다.

 나는 남편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안다. 단순한 사람이라 파악도 쉽다. 남편은 강한 것에 강하고 부드럽고 약한 것에 한없이 약하다. 다정한 말로 칭찬해 주고 따뜻한 햇살로 무장을 해제시킨 뒤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에너지와 사랑이 넘치는 나는 하나를 받으면 열개를 돌려준다. 어쩌면 손해 보는 장사같이 보이지만 그는 하나도 힘든 사람이고 나는 열개도 얼마든지 가능한 사람이다. 서로 손해 볼 것은 없다.




 200억을 벌어 쉰다섯이 되기 전에 은퇴하겠다던 남편의 원대한 포부를 비웃듯 현실은 냉정하기만 하다. 년 초에는 마음만 앞서 대박을 꿈꾸고 연말이 되면 초라한 성적에 좌절한다.

 회사 통장에 거액이 있어도 집으로 들고 오는 것은 대표의 월급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박봉이 전부다. 물가는 끝도 없이 오르는데 월급은 5년째 동결이다. 그마저도 위태로울 때가 많다. 목표는 멀고 은퇴는 어림도 없다. 고민이 많은 남편은 요즘 위험한 말을 가끔 던진다.


 막걸리 집이었다.

"지금 회사 통장에 정부지원금 20억이 들어있는데... 내가 20억을 빼서 자기한테 주고 나는 감방 갈까?"

"그런 농담은 이제 그만하면 안 돼?"

"아냐! 농담 아니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거야."

"왜? 왜 그런 생각을 자꾸 해?"

"내 목표가 200억인데 현실은 좀 비참하잖아? 우리는 집도 없고... 맨날 이모양이고... 회사 통장에 돈이 있어도 그림에 떡이고... 나는 감방 가면 되니까 자기는 애들이랑 현금 어디다 숨겨놓고 조금씩 쓰면서 살래?"

"...... 진심이야?"

"반은 진심이고 반은 아니겠지? 감방 가는 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 근데 그렇게 회사 돈 들고 토끼는 사람도 많고 급하니까 정부지원금 다 써버리고 그냥 감방 가는 사람도 있어!"

"자기가 감방 가면 우리는 어쩌라고?"

"그 돈 가지고 잘 살면 되겠지!"

"돈 있으면 좋긴 하겠지! 그런데, 나는... 20억보다 자기가 더 소중해!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런 말 안 했으면 좋겠어!"

"이야~~~~ 감동인데? 이 여자 매력 있네?"

"야! 그걸 이제 알았니? 빨리도 알았네!"

"그러니까~ 와! 그렇게 말해 주니까 기분 되게 좋네?"

"돈 걱정 없이 살아도. 나는 자기가 없는 건 싫어!! 일확천금 바라지 말고! 그냥 열심히 벌어서 살자!"

"그러자! 감방 가지 말고 같이 살자! 아이고~~~ 우리 마누라~ 뽀뽀 한번 하까??"

"어이구~~~ 됐거든!!"

"아이고~ 한 번만 하자!"

"이 양반이 취했나? 막걸리 집에서 뭔 뽀뽀야? 됐다고~~"



 우리는 이제 서로가 소중하다.
다름이 불편하고 때론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 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너를 바꾸기보다는
내 생각을 먼저 바꾸고
적당한 포기와 이해
그리고
인정과 존중으로
네가 살고 나도 산다.

그렇게
나는 너로 물들고
너는 나로 물들인다.

서로 물들며 살아간다.

 그것이 부부다.




이전 22화 남편이 자꾸 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