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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Mar 14. 2024

에필로그 - 인생은 짧다.

에세이-이뻔소


 얼마 전 남편이 아팠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였지만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고 감기도 아닌데 한 달이 넘도록 기침을 했다. 검진센터 호흡기 내과 검사에서 폐기종이 보인다고 했다. 남편은 심각해졌다. 검색해 보니 내내 고생하다 서서히 죽는다고 쓰여 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검사 판독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길게만 느껴졌다.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에 갔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의사의 표정은 심각해 보였다.

"오늘도 혈압이 굉장히 높으시네요?"

"잠을 한숨도 못 자 가지고요."

"왜 못 주무시나요? 못 주무시는 이유가 있나요?"

"아니 뭐... 회사 스트레스도 있고... 오늘 병원 오는 것도 있고 해서..."

"잠을 못 주무시거나 밤에 술 마시고 주무시면 혈압은 계속 올라갑니다."

"네..."

남편은 이 날 고혈압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판독 결과가 나왔는데요... 폐농양이나, 활동성 결핵이나, 폐암 가능성도 있다고 하네요.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부분에 뭔가에 의해서 공동(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이 형성됐는데요. 공동은 동굴 같은 건데 이 안에 고름도 차 있고, 피도 약간 차 있고, 혈관도 노출되어 있고, 주위에 염증도 있네요.

염증이 심해지면 가래에서 피 같은 것이 나오는 거죠. 원인은 염증이나 균 때문일 가능성이 높은데... 폐농양은 염증이나 균에 의해서 생기는 거고, 염증은 결핵이나 진균에 의해서 생기는 경우도 있어요.

진균은 곰팡이를 말하는 건데... 몸 안에는 잘 생기지 않는 거니까 진균일 가능성은 좀 떨어지죠. 그런데 판독결과에는 그것도 가능성이 있다고 하네요? 이거는... 큰 병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폐암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까 큰 병원에서 감별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어느 병원에 가야 되나요?"

"근처 대학 병원에 가셨다가 혹시라도 결과가 안 좋으면 그때는 더 큰 병원을 생각해 보셔야죠. 일단 빨리 가서 정밀검사를 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 폐기종은 아닌 건가요?"

"폐기종도 있어요. 폐기종은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누구나 생기는 거예요. 폐기종이 생긴다고 해서 폐농양이 생기지는 않거든요. 폐기종은 굉장히 흔한 거고 폐농양은 굉장히 심각한 거예요. 폐농양은 웬만해서는 잘 안 생겨요. 균이 폐를 파고들어서 갉아먹은 거예요. 원인이 균 일 수도 있고, 진균 일수도 있고, 결핵 균일 수도 있고, 드물게는 암세포가 그럴 수도 있으니까 원인을 빨리 찾아야죠."


 폐기종을 걱정했는데 폐기종은 별거 아니고 암일 수도 있다니... 기가 막히고 어안이 벙벙했다. 

"약물로도 치료가 가능한가요?"

"만약 균이나 진균이면 약물로 가능하고, 결핵이면 약을 좀 오래 드셔야 할 테고, 암이면 완전히 다른 거죠. 

소견서 써드릴 테니까 CD랑 복사해서 가져가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담낭에도 문제가 있는데..."

.

.

.

의사는 담낭(쓸개)에 담석이 가득 찼다고 말했다. 담낭 수술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병원 진료날짜가 3주 뒤로 잡혔다. 기다리는 동안 남편과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이 말했다.

"암이면 어떻게 하지?"

"후... 그러면 아산병원이나 삼성병원 같은 데로 가야지..."

 남편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음...... 그냥... 내가 나가서 자살할까?"

"...... 자기는 그런 소리 좀 안 하면 안 돼?"

 내 눈에서도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암 치료한다고 집안 거덜 내느니 그게 나을 것 같은데?"

"어휴..."

"애들이랑 자기는 또 어떻게 사냐?"

"됐어!! 거지가 되더라도 치료는 할 거니까 정신이나 바짝 차려!"

"아이고... 후회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


 대학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폐농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항생제를 먹고 폐농양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담낭 제거수술 일정도 잡았다. 폐암이 아니라니 얼마나 다행인지 담낭 제거수술은 가볍게만 느껴졌다.

완치됐다는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기만 한 남편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자기야!! 병원에서 술담배 끊으라는 소리 안 해?"

"하지! 안 끊으면 죽는데!!"

"근데 또 피우니? 이제 담배 끊고! 술도 좀 끊어!!!"

"음...... 노력해 볼게."

"야!! 로보캅!! 이제 자기도 죽는다는 거 입증 됐잖아? 정신 좀 차리시지?!"

"아냐~~ 나는 안 죽어!! 안 죽는다는 게 입증된 거지~"

"미친 거 아냐?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에이~ 농담이야~~ 나도 이번에 느낀 게 좀 많네!"

"그래! 암 아니라니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하니? 제발 건강 좀 신경 쓰고 살자! 엉?"

"알았어~ 암 아니라니까 좋네!! 아이고~ 우리 마누라~~ 이리 와봐!! 걱정 많이 했지?"


 병원에 다녀온 그날 남편은 자축하며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담배는 전자담배로 바꿨다며 자랑했다.

"야!! 전자 담배도 담배야!! 자기는 도대체 언제 정신을 차리는 거야?"

"아마... 죽어도 정신 못 차릴걸?"

"후회한다면서??"

"그러게?"

"아이고~~ 내가 참! 복도 많다. 어??"

"복 많지!! 남편이 이렇게 튼튼한데!!"

"죽고 싶니??"

"아니요~"

"이리 와 봐!! 내가 죽을 때까지 물어뜯어 줄게!!"

"은지~ 예~"

(은지예, 언지예: 거절의 의미나 '아니다'라는 의미로 쓰는 경상도 사투리)


시어머니 장례식 때 엄마가 눈물을 훔치며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인생 짧다. 금방이여~ 싸우지들 말구 사이좋게 살어!"


부부가 함께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복이다.


우리가 얼마나 같이 살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싸우지 말고 살아야지... 

감사하며 살아야지... 

그리고, 행복해야지...


마냥 힘들고 길었던 날들도 뒤돌아 보면 짧기만 하다.

길고도 짧은 인생.

소중한 것들과 마음껏 누리며 살아야지...


이뻔소 2부 - 에피소드가 매거진으로 이어집니다. (천천히 올리는 중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onbyeori-essa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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