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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Oct 31. 2024

갑자기 찾아온 손님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갑자기 찾아온 손님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8시 50분이다. 밖은 어느새 진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공방을 이전하고 늦게까지 작업하는 일이 잦아졌다. 마무리를 하고 귀티와 꼬맹이 밥을 챙겨주다가 문 앞에 앉아 있는 길이를 그제야 발견했다. 구내염으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녀석이다. 캔에 약을 타서 주었더니 조금 좋아지는가 싶더니 오랜 바깥생활로 몸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구내염이 쉽게 낫지를 않는다. 아직은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녀석이다. 문을 살며시 열고 앉아 눈으로만 녀석의 상태를 살폈다. 비쩍 마른 몸에 등과 엉덩이에 듬성듬성 털이 빠져있다.

"못 먹어서 많이도 말랐네! 탈모까지 있어서 어떻게 하니? 영양 결핍인가? 피부병인가? 불쌍한 놈. 배 고파서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구걸이라 하니까 다행이다. 캔 준거 다 먹었어? 어디 보자."

박스 안에 넣어준 그릇을 싹싹 핥아먹었는지 찌꺼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깨끗하게 다 먹었네! 그래! 너 밥은 챙겨주고 가야겠다. 배고플 테니까 많이 챙겨 줄게~"

공방으로 다시 들어가 햇반 빈 그릇에 대용량 캔을 담고 또 하나에는 물을 담아 박스 안에 넣어 주었다. 길이는 구내염 때문에 사료를 먹지 못한다. 씹기 힘든 녀석은 캔을 먹을 때도 천천히 아주 조금씩 힘들게 삼킨다.

"날이 점점 추워지네. 겨울이 오면 박스에서 지내기는 힘들 텐데 어떻게 하지?"

겨우 바람만 막아주는 박스에서 길이가 겨울이 보냈다가는 얼어 죽기 십상이다.


 하필 그날 밤 비가 내렸다. 아침에 출근해서 보니 길이는 보이지 않고 박스는 밤새 내린 비에 젖어 볼품없이 찌그려져 있었다. 비를 생각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책임지기 싫어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일까? 젖은 박스 대신 새 박스를 구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박스를 새 걸로 갈아주는 일은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이가 박스에서 내내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젖어 찌그러진 박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보기 싫어 어쩔 수 없이 박스와 밥을 챙겨주기는 했지만 나는 길이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될 것을 꼭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길을 내주는 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쓸데없이 오지랖 부리는 사람들에게 예전처럼 휘둘리지는 않을 것이다.


 공방 앞에 길이가 머물 수 있는 길고양이용 플라스틱 집을 놓아주었다. 바람을 최대한 막기 위해 입구는 작고 보온이 잘 유지될 만한 것으로 골랐다. 한겨울에는 입구에 바람막이용 투명 비닐 커튼이라도 쳐주어야겠다 생각을 하고 나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폭신한 이불도 깔아 주었다. 직접 돌보지는 못해도 곧 닥칠 추위를 따뜻하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길이가 따뜻하게 지낼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도 푸근해졌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밥그릇 받침도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자투리 나무를 잘라 틀을 만들고 밥그릇을 넣어 집 앞에는 놓아주었다.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편히 먹을 수 있도록 가림용 입간판도 세워주었다.

"쳇! 옛날 급식소랑 별반 다를 게 없네? 거기다 집까지 설치했으니.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왜 맨날 이러고 살지? 에이~ 나도 모르겠다. 마음 가는 대로 하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다. 눈에 밟혀서 불편한 걸 어떻게 하냐고.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한 걸."




 오후 한 낮. 하늘은 맑고 평소보다 유난히 햇살이 따뜻한 날이다. 공방 안까지 깊숙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기분 좋은 나른함이 느껴진다. 새로 이사 온 공방은 입구는 좁아도 해가 잘 들어 실내가 밝고 따뜻하다. 커피 한잔으로 나른함을 깨우며 여유롭게 오븐렉을 조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불청객이 등장했다. 검은색 승용차가 공방 앞마당에 주차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겨우 한 두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마당에 주차를 하면 출입구를 가린다. 그러니 되도록 다른 곳에 주차를 하고 자리를 비워두는데 허락도 없이 남의 가계 앞에 주차를 하다니.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니! 누가 허락도 없이 남에 가계 앞에다 맘대로 차를 대는 거야?"

운전석을 노려보며 운전자가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고 서니 고개까지 저절로 삐딱해진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누구지?'

팔짱을 풀고 기억력을 풀가동 했다. 금세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누구더라?'

남자가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어! 지아야! 어떻게 알고 나와있어?"

생각났다. 베드로였다.

"어?? 베드로야? 베드로 맞아?"

"너는 별명으로만 불러서 내 이름도 까먹었지?"

인상을 풀고 반색하며 대답했다.

"네가 여기 웬일이야?"

"잘 찾아왔네! 그동안 잘 있었냐?"

"여길 어떻게 알고 왔어?"

"야! 너는 가게 주소를 블로그에다 그렇게 다 공개해 놓고. 뭘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어?"

"아! 그렇지! 근데 웬일이야? 놀러 온 거야?"

"어...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너 여기 있다고 들었던 게 생각나서. 검색해 봤더니 주소 나오더라. 목공방이 이렇게 생겼구나! 어이~ 사장님! 차 한잔만 주십시오."

"어! 그래... 들어와!"


 베드로는 은평구에서 국민학교를 함께 다녔던 동창이다. 어릴 적부터 엄마를 따라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친구였다. 부활절이나 성탄절만 되면 친구들을 교회를 끌고 가 초코파이를 나눠준다는 소문이 있길래 비꼬듯 한마디를 던졌다.

"야! 네가 무슨 베드라도 되니? 왜 때만 되면 애들을 교회로 끌고 가고 그래?"

"전도하려고 그러지."

"너나 열심히 다녀."

한 친구가 물었다.

"베드로가 누구야?"

"어! 있어.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 시몬 베드로라고."

"그래?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교회 가면 초코파이 얻어먹을 수 있어서 좋던데? 크리스마스 때 가면 선물도 준다고 그러던데?"

"너는 얻어먹으려고 교회에 가니?"

이후로 친구들은 녀석을 베드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연락도 없던 녀석이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것이 얄미워 쏴 붙이듯 말했다.

"야! 너는 잠수 탔었어? 연락해도 답장도 없더니 갑자기 뭐야?"

"그래... 보고 싶어서 왔다."

"내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아~~ 닭살!!"

"왜?? 안돼???"

"안될 건 없지만... 너답지 않은데?"

"그런가? 그래도 그냥 보고 싶어서 왔다고 치자!"

"왜? 요즘 힘들어?"

"어우~ 귀신이네?

음... 힘들지... 백수 된 지 2년이나 됐으니 먹고사는 것도 힘들고,

나한테 맞는 직장 구하는 건 왜 또 그렇게 힘든 거야?

부모님 눈치 보여서 독립하고 싶어도 돈이 있어야지... 밥만 축내는 늙은 아들이 어른들 보기에 좋을 리도 없고, 아... 살기도 싫고, 딱! 죽고 싶은데 죽기도 힘들고... 집에만 처박혀 있자니 답답하기도 하고...

야! 너무 오래 처박혀 있었더니 정신이 이상해지더라. 그래서 이제 좀 기어 나와서 돌아다니는 중이다.

굴에서 2년 동안 마늘만 먹고 썩었으니 이제 그만 썩어야지. 이제 좀 사람처럼 살아 보려고!"

"2년이나 밥 축내면서 집에서 썩고 있었어? 욕먹을 만하네!"

"어! 밖에도 안 나가고. 미친놈처럼 아주 얌전하게 집에만 있었어."


"근데 너는 요즘 바빠? 뭐 하고 있었어? 이거 만들고 있었어? 이게 뭐야?"

"야! 질문은 한 개씩만 해! 그래! 바쁘고, 주문 들어온 거 만들고 있었고, 이건 오븐렉이야. 주문자가 오래 기다려서 얼른 조립해서 보내줘야 돼."

"그래? 바쁘구나! 좋겠다. 나도 바쁘게 살고 싶다."

"그것도 적당히 바빠야 좋은 거지. 너무 바빠도 안 좋다."

"그래. 무슨 소린지 알아. 근데... 오븐렉이 뭐야?"

"빵집에서 오븐에 빵을 굽기 전이나 후에 층층이 끼워두는 건데 바퀴 달아주니까 이동도 가능해. 스테인리스로 된 것도 많은데 요즘은 나무도 많이 찾아."

"아!! 그거? 나 아침 일찍 빵집에 갔을 때 본 거 같은데?"

"그래. 그거 만드는 거야."

"오~ 멋지네! 그런 것도 만드는구나!"

"별 걸 다 만들어."

"바쁘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너 하던 일 해! 구경하면서 방해 안되게 조용히 있을 게."

녀석이 그리 말은 했지만 처음 방문한 친구를 두고 혼자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일이 없을 때는 올리브나무를 잘라 숟가락과 젓가락을 깎았다. 올리브나무는 깎기는 힘들어도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해 작은 소품들을 만들기에 좋다. 수저를 다 깎고 버터칼을 깎던 중이었다. 잘라놓은 나무 조각중 하나를 꺼내 조각도와 함께 건넸다.

"야! 너 그냥 있지 말고. 이거라도 깎아 봐! 이거 만들어 놓은 거 보고 똑같이 깎으면 되거든."

"그래? 재미있겠다!"

"칼을 이렇게 잡고 살살 밀어가면서 깎으면 되는 거야. 한번 해봐!"

"이렇게?"

"오! 잘하는데? 그래. 그렇게 하면 돼!"

베드로는 집중해서 버터칼을 깎기 시작했다. 사각거리며 나무 깎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조각도로 나무를 깎으면 그렇게 사각사각 소리가 나거든. 나는 그 나무 깎는 소리가 그렇게 좋더라! 잡생각도 없어지고 마음도 편해져."

"그래? 잡념이 사라져?"

"나는 그렇더라고. 재미있어!"


 나는 오븐렉을 조립하고 베드로는 버터칼을 깎았다. 우리는 각자의 작업을 하면서 느리고 조용한 대화를 나누었다. 한참 일하다 녀석이 깎은 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야! 너 왜 이렇게 잘 깎아? 이런 거 해봤어?"

"아니! 처음인데?"

"그래? 근데 어떻게 이렇게 잘 깎지? 너 원래 손재주가 좋아?"

"내가 원래 어릴 적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지. 뭐든지 안 배워도 웬만한 건 다 따라 하거든!

크... 아주 그냥. 못하는 게 없어요. 내가."

"웃기시네! 너 공부 못했잖아."

"야! 천재라고 공부를 다 잘하는 건 아니거든?"

"괜히 칭찬했네!? 닥치시고 마저 깎으세요."

베드로가 버터칼을 깎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배우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잘 깎는 거야? 잘하니까 신기하기는 한데 묘하게 기분이 나쁘네?"

"미워하지 마라! 내가 눈썰미도 좋고 손재주도 좋아서 그래."

"그래. 인정!"


 작업대 위에 누워서 자고 있는 귀티를 쓰다듬으며 베드로가 말했다.

"지아야!"

"왜?"

"한 오백만 원 정도 있으면 집 얻어서 이런 고양이 키우면서 혼자 살 수 있을까?"

"왜? 혼자 살고 싶으세요?"

"그럼~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아무리 노총각이라도 이 나이에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게 좋을 리 없잖아?"

"나는 오백만 원으로 네가 살만한 집을 구하는 건 힘들다고 본다. 이 나이에 불쌍하게 단칸방에서 살려고?"

"그렇지? 어휴... 돈이 없어서 독립도 못하겠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웃으며 말을 했다.

"여보게 친구! 부업해 볼 생각은 없나? 버터칼 하나 깎는데 이천 원씩 쳐 줄 테니까. 집에서 노느니 이거라도 깎아보는 것은 어떻겠나?"

베드로도 농담을 능청맞게 받아치며 말했다.

"그래 친구! 칼 한 자루만 있으면 되는 겐가?"

"그렇지! 내가 나무 잘라주면 너는 이렇게 깎기만 하면 되는 거야."

"오~~ 하루에 열 개 깎으면 이만 원이야? 너는 하루에 몇 개정도 깎을 수 있어?"

"하루에... 두세 개 정도?"

"오~~ 하루에 세 개면 일당 만원도 안 되는 거야? 웃긴다."

"노느니 만원이라도 벌면 좋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눈에 힘을 잔뜩 주고 고개를 홱 돌려 베드로를 보며 말했다.

"습! 이거 배워서 너네 동네다 공방 차리면 죽는다."

죽는다는 말에 눈도 깜하지 않고 베드로는 대답했다.

"그러면 이거랑 똑같이 깎아서 더 싸게 팔아야지~"

"음... 없던 일로 하자!"

"그러자!"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들했던 녀석의 얼굴빛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처음 공방을 차릴 때는 친구나 지인들이 약속 없이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취미생활은 아니지 않은가? 작업 중에 누군가 오래 머물게 되면 일에 방해가 된다. 여유 있을 때 방문하면 좋으련만 시간의 여유는 곧 목공방의 운명과 직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이라 불편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댈 곳이 필요한 친구에게 따뜻한 쉼터는 제공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각자의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이 고요하고 평온했다.


 버터칼을 다 깎은 베드로는 오븐렉 조립 과정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옆으로 와 보조 역할을 자청했다. 눈치까지 빠른 녀석이다. 녀석의 도움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또 장난스럽게 또 한마디를 던졌다.

"자네! 일하는 거 꽤 마음에 드는군! 무보수 보조로 일해 볼 생각은 없나? 내가 보수를 지급할 형편은 못 되고 점심은 제공하겠네!"

"사양하겠네! 무보수로 일하느니 그냥 집에서 놀면서 욕이나 처 드시고 사는 게 백번 낫겠네!"

"크... 눈치도 빠르고 일도 잘하는데... 아쉽네!"

"아닐세! 그 부담스러운 제안은 넣어 두게!"

나는 손을 들어 알겠다는 표시를 하고는 입을 한껏 벌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윙크를 했다.

"오케이~"

베드로는 큰 소리로 웃었다. 녀석의 웃음이 반가웠다.




베드로가 물었다.

"너는 공방 차린 지 얼마나 됐어?"

"2년 정도 됐지?"

"일본 갔다 와서 바로 차린 거야?"

"아니! 한국으로 들어와서 목공 하기까지 좀 헤맸던 시간이 있었지."

"그래... 근데 일본 유학 가서 뭘 배워온 거야?"

"시각디자인."

"근데 왜 목공을 하고 있어?"

"아... 사연이 길다."

"그래? 사연이 길고만! 유학 간다고 할 때. 나는 네가 이혼하고 가는 줄 알았어."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당연한 거 아니야? 남편이 기다려 준 게 신기한 거지. 남편이 되게 착한 사람인가 봐?"

"음... 그래... 착하기는 하지."

"남편은 어떻게 만났어?"

"직장에서 만났지."

"아! 건축회사 다닐 때?"

"응."

"몇 살 차인데?"

"뭘 알고 싶은 거야? 왜 자꾸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 들지? 너 집에 안 가? 언제 갈 거야?"

"응. 백수는 남는 게 시간이야."

"내가 바쁘거든요?"

"그래서 내가 도와주고 있잖아요. 도움이 되고 있지? 보조하라면서?"

"농담이야~ 왜 정색을 하고 그래?"

"네가 먼저 정색했거든요?"

"그래? 내가 그랬어?"

"응! 그래서. 다시 질문! 누가 먼저 프러포즈했어!"

"야~ 너는 남자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 궁금한 것도 많고!

손재주도 있고 눈치도 빨라서 좋기는 한데.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자네는 보조에서 탈락일세."

갑자기 약간 시무룩해진 얼굴로 베드로가 말했다.

"은둔생활을 너무 오래 했더니 사람이 그리워서 그래. 오랫동안 입을 닫고 살아서 그런가 봐!"

녀석의 진지한 대답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야! 너는 또 농담을 진담으로 받고 그러니?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아픈 데를 찌른 것 같아서 미안해지잖아!

에이 불쌍한 놈! 괜히 울컥하네."


 베드로는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씩씩하게 혼자 살았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학업과 돈벌이를 병행해야 하는 삶이 봄날이었을 리 없다. 나는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씩씩하게 이야기한들 가볍거나 추억으로 포장할만한 이야기들이 아니다. 따듯함도 즐거움도 찾아보기 힘든 치열함이었다. 듣는 이도 즐겁지 않을 스토리를 뭐가 좋다고 시시콜콜 늘어놓겠는가?

베드로는 그런 이야기가 왜 궁금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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