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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Dec 12. 2024

공방 앞 길고양이들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공방 앞 길고양이들


 공방 문 앞에 앉아있는 길이를 발견하고 얼른 문을 열었다.

"길아~ 너 어디 갔다가 왔어? 에이그... 범이 때문에 못 왔어? 걱정했잖아! 얼른 들어와! 밥 먹자!"


 길이는 새로 등장한 고양이와의 싸움에서 진 후 목공방 근처는 얼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급식소를 찾은 뉴페이스는 공방 밥을 얻어먹는 주제에 건방지게 공방 아들 딸인 귀티와 꼬맹이에게 주먹을 날리고 급식소를 찾는 다른 고양들까지 몰아내고 있었다. 녀석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릴 적 은평구 살던 시절 힘 하나로 동네를 평정하려 했던 깡패 친구 범이가 생각났다. 험상궂고 흉터가 가득한 얼굴,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 다 이겨 먹을 것 같은 부리부리한 눈매. 깡패 고양이는 건방지고 오만한 것이 딱 범이를 닮았다. 나는 깡패 고양이에게 범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예뻐서 지어 준 것은 아니다. 악당도 이름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학교 앞 슈퍼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 대장은 길이었다. 길이는 못해도 8년은 살았고 몇 년 동안 대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집고양이 평균 수명은 15년이라지만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10년 정도다. 이미 노년에 접어든 길이가 청년 도전자에게 대장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아무리 왕년에 대장이었다 하더라도 쇠약해지고 몸까지 상했으니 혈기 왕성한 도전자를 이겨낼 재간은 없는 것이다.


 길이는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공방 앞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범이와 딱 마주쳤다. 범이를 발견한 길이는 발길 돌려 어딘가로 향했다. 이후로 한참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들의 서열싸움에는 참견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질서가 있는 것이고 사람이 참견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쫓겨 도망가는 길이의 초라한 뒷모습에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그새 또 길이에게 정이든 모양이다.


 길이에 대한 걱정은 범이에 대한 화로 바뀌었다. 웬만하면 참견하지 않으려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기다리는 길이는 보이지도 않고 엉뚱한 놈이 마당을 차지하고 앉아 다른 고양이들까지 위협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결국 화가 터지고 말았다. 급식소를 독차지하고는 여유롭게 밥을 먹는 범이에게 빗자루를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뭐야! 왜 길이를 내쫓았어. 어? 너 때문에 길이가 공방에는 오지도 못하잖아! 너는 급식소에서 밥 먹을 자격도 없어! 꺼져 이 새끼야! 이 깡패 같은 새끼. 하는 짓은 꼭 범이를 닮아가지고는. 이 못된 놈의 새끼 같으니라고. 빨리 가서 길이 데리고 와!!"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빗자루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범이는 저만치 물러나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뭘 봐! 억울하기는 네가 뭐가 억울해! 길이가 더 억울하지! 네가 길이를 내쫓아냈으니까 나도 너 내쫓아 낼 거야. 밥이라도 얻어먹고 싶으면. 얼른 가서 길이 데리고 와!"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쯤은 나도 뻔히 안다. 알면서도 이러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해야 길이에게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공방 급식소를 찾는 길고양이 손님들은 세 마리가 더 있다. 검은 단발머리를 뒤집어쓴 것 같이 생긴 철이와 철이의 단짝 치즈고양이 미애가 있다. 해마다 새끼를 낳는 암컷 미미도 있다. 녀석들은 범이가 오기 전에 얼른 밥을 먹고 도망을 치거나 한 발 늦게 나타나면 멀찍이 물러나 눈치를 보다가 범이가 허락해 주면 그제야 밥을 먹는다. 범이는 대장자리를 이미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길이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이 놈에 깡패 새끼를 두들겨 팰 수도 없으니 그저 길이만 불쌍하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고양이들은 사람처럼 감옥에 가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혼자 쓴웃음을 지어본다.


 똑똑한 길이는 공방에서 밥을 먹을 수는 없게 되자 슈퍼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지냈다고 한다. 길이는 원래 공방이 생기기 전에는 슈퍼에서 밥을 얻어먹는 고양이였다. 슈퍼에는 귀티와 꼬맹이처럼 자유롭게 바깥을 드나들며 보호를 받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슈퍼 아주머니는 그 고양이를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도 녀석을 슈퍼 아들이라고 부른다. 슈퍼 아들은 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머니가 길이에게 밥을 주고 슈퍼 안으로 들어가면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냅다 달려들어 길이의 얼굴을 후려갈기고는 내빼는 녀석이다. 길이는 범이에게 맞느니 슈퍼 아들에게 맞는 것이 백번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동네 사람들은 길이에게 관심이 많다. 순하고 너그러워 다른 고양이들과 잘 싸우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 대장 고양이가 아닌가. 그러니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을 수밖에. 슈퍼 옆 건물에 사는 할머니는 길이가 공방에서 지낸다는 말을 듣고 지나갈 때마다 밥값으로 만 원짜리 두장을 주고 간다. 가끔은 길이의 안부를 묻는 동네 사람들도 있고, 슈퍼 아주머니는 길이의 구내염 치료를 할 때 병원비를 보태기도 했다.




 밖에 나간 귀티가 몇 시간째 소식이 없다. 꼬맹이와는 다르게 공방 근처에서 놀다가 부르면 얼른 달려오던 녀석이 이상하게도 오늘은 불러도 대답이 없다. 가끔 이렇게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목걸이에 위치추적기를 달아 놓았다. 멀리 가지는 않았으니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한 시간은 더 지나 귀티가 절뚝거리며 공방으로 들어왔다. 오른쪽 앞발은 피범벅이다. 조심스레 붙들고 살펴보았더니 엄지발톱이 뽑히고 없다. 싸우다 다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 이런 걸까?

 귀티와 꼬맹이는 안 밖을 드나드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자유로움에는 위험이 따른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된다. 차에 치일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학대를 당할 수도 있다. 길고양이가 사람에게 학대를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러니 녀석들의 외출이 길어지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철이의 다리 상태가 좋지 않다. 싸우다 생긴 상처에 염증이 생겼다. 약을 지어다 먹였지만 허피스까지 걸려 염증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병원 치료를 위해 포획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밥 먹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뒤에서 맨손으로 잡으려다 뒷발로 할퀴는 바람에 팔뚝에 시뻘건 핏자국만 남기고 말았다. 역시 길고양이를 병원으로 데려가는 일은 쉽지 않다.


 며칠 째 철이가 보이질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무사하기를 바랄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길고양이의 삶은 그렇다.




 요즘은 지자체에서 길고양이 TNR(trap-neuter-return)를 실시하고 있다. TNR은 길고양이의 개체수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 인도적인 방법으로 포획을 한 뒤 중성화수술을 시키고 다시 풀어주는 활동을 말한다. 버려진 고양이들이 길생활을 하면서 개채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지자체에서는 예산을 들여 개채수는 조절하려는 것이다. 구청이나 시청에 신청을 하면 신청 순번에 맞춰 포획을 나온다. TNR 신청은 동네 캣맘들이나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데 신청수가 많아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1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태어나는 아깽이들의 피해자이기도 한 나는 길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이 그저 반갑다. 자주 보는 녀석들 중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고양이를 발견하면 얼른 시청에 TNR을 신청한다.


 출산이 잦은 미미와 아직 한 번도 잡힌 적이 없는 철이, 그리고 최근에 나타났지만 허구한 날 영역싸움을 벌이는 범이까지 신청을 해 둔 상태였다. 미애는 이미 중성화 수술이 되어 있었다. 암컷인줄로만 알고 있었던 미애는 수컷이었다. 철이와 단짝처럼 붙어 다녀 당연히 암컷인 줄로 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둘의 생김새는 전혀 다르다. 형제도 핏줄도 아닌데 수컷끼리 사이좋게 의지하며 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이름을 미애라고 짓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막 지어주었나 싶어 괜히 미안했다.

철이와 미애를 처음 발견했을 때

"야! 쟤는 꼭 단발머리를 뒤집어쓴 것처럼 생겼네? 가수 철이를 닮았네? 그럼 쟤는 미애야? 철이와 미애? 푸하하하! 아~ 나 이름 너무 잘 짓는 거 같아."


 TNR을 신청한 지 1년 만에 드디어 포획을 나왔다. 주말에 마이콜을 데리고 나와 설치된 통덫을 살피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사장님 뭐 해?"

휙 돌아보는 순간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팔뚝의 선명한 문신과 덩치. 조폭으로 의심받았던 위층 중국인이다.

'아이 씨! 깜짝이야! 무섭게 조폭 중국인이 왜 말을 걸고 그래?'

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는지 과할 정도로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위층 사시는 분이시죠? 저는 아래층에서 공방 하는 사람이에요."

"알아! 근데 여기서 뭐 해?"

'한국말은 제법 하는데... 존댓말은 못 배웠나? 이런 씨. 괜히 공손하게 대했네?'

반말은 심하게 거슬리지만 외국인이 아닌가. 일본 유학시절 많은 도움을 준 소바집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나도 누군가에게 소바집 할아버지가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다지 애정이 가는 대상은 아니지만 이참에 조폭 중국인에게 인심 한 번 써 보기로 했다. 짧고 쉬운 단어와 문장이면 될 것이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존댓말은 생략하고 천천히 대화하기로 했다.

"고양이를 잡으려는데...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보는 거야."

"고양이를 왜 잡아?"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이... 개채수가 많아서... 잡아서... 새끼를 못 낳게... 수술하는 거야."

"개채수가 뭐야?"

"아! 그 말도 어렵구나! 고양이가 너무 많다고... 중국에서는 이런 거 안 해?"

"중국에는 그런 거 없어. 나는 소련에서도 살았는데. 소련에서는 약 먹인 쥐랑 비둘기를 풀어놔."

"약 먹인 쥐? 그러면 고양이들을 다 죽여?"

"아냐! 아냐! 죽이는 거 아냐. 새끼를 못 낳게 약을 먹여."

"아! 약 먹은 쥐랑 비둘기를 고양이들이 잡아먹으면 중성화가 된다고? 근데 약이 효과가 있어? "

"나도 몰라! 소련에서는 그렇게 해."

"그래? 효과가 있나 보구나!"

"그런데... 고양이는 잡았어?"

"아직 안 잡혔어. 녀석들이 약아빠져서 잘 안 잡혀."

"약아빠진 게 뭐야?"

"어...... 눈치가 빠르다는 말이야. 근데 눈치 빠른 건 뭔지 알아?"

"알아! 눈치 빠른 거. 나도 눈치 개 빠르다고 우리 사장님이 칭찬했어. 그래서 알아. 고양이들이 눈치가 빨라서 안 잡히는 거야?"

"그렇지. 그래도 한국말 잘하네? 존댓말은 못해도 의사전달은 되네!"

"나 한국에서 3년 살았어. 사장님. 저번에 가계 보러 왔을 때 처음 봤어."

중국인이 나를 가리키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래? 나도 팔에 문신한 사람 지나가는 거 봤어. 그때는 되게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어."

중국인은 고개에 손까지 저어가며 정색을 했다.

"나 무서운 사람 아냐. 착한 사람이야."

"자기가 자기 입으로 착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부동산 사장님이랑 우리 사장님이 나한테 착하다고 했어. 나 착한 사람이야."

"그래? 착한 총각. 고양이 좋아해?"

"고양이 좋아해."

"그래? 다행이네! 고양이들 많이 예뻐해 줘~ 근데... 토요일에도 일하러 가는 거야?"

"아! 깜박했다. 늦었어. 또 보자."

'근데 재는 한국말을 누구한테 배웠길래 저렇게 짧아? 야메로 배웠고만?'

위층 중국인은 어려운 단어는 못 알아 들어도 대화를 해 보니 부동산 사장 말대로 착해 보였다. 이제 도끼 들고 쫓아 올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다음 날 통덫에 미미가 걸려 있었다. 겁이 많고 예민한 미미는 빠져나가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코가 다 깨져 피범벅이다. 못쓸 짓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미가 병원에 가 있는 동안 새끼들도 걱정이다. 어디 있는지 알아야 밥이나도 챙겨 줄 텐데... 미미는 급식소로 새끼를 데려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신청하고 대기만 1년이 걸리는데 시청에서 고양이들 일정에 맞춰 나올 리도 없다. 어미가 잡혀가면 남겨진 새끼들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꼬맹이와 귀티가 밥때가 지났는데도 들어오질 않는다. 공방 주변을 살피다 꼬맹이가 통덫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가까이 가보니 통덫 안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울음소리다. 통덫을 덮은 담요를 떠들었더니 귀티가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런 바보 같은 놈을 봤나! 너는 왜 거기 들어가 있는 거야?"

"꼬맹아~ 쟤는 왜 저기 들어가 있는 걸까? 저 바보 오빠를 어쩌면 좋니?"

통덫을 열고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얼른 나와! 딴 놈들 잡히는 걸 빤히 보고도 너는 거기 들어가고 싶니? 이 눈치 없는 놈아! 에이... 바보 멍청이 같으니라고! 걸리라는 놈은 안 걸리고. 엄한 놈만 들어가 있네!"

귀티가 나오자 꼬맹이가 벌떡 일어나 귀티 얼굴을 쓱 문지르고 지나간다.

"허... 너네 언제부터 그렇게 사이가 좋았냐? 이럴 때 보면 천상 남매라니깐? 근데... 이 와중에 꼬맹이는 또 뭐야? 기특하게? 오빠 갇혔다고 옆에서 지켜주고 있었던 거야? 의리 있네? 아이고~ 예뻐라!! 꼬맹아~ 이리 와! 바보 오빠는 밖에서 놀게 두고 꼬맹이는 템테이션 먹으러 가자~"



 다음날 시청에서 통덫을 수거해 갔다. 범이는 용케도 잡히지 않았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녀석은 통덫이 사라지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방 마당에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야... 저 약아빠진 놈 좀 봐라!"

밝은 햇살에 눈을 게슴츠레 뜨고 누워있는 범이 옆으로 가 배를 쿡쿡 찌르며 시비를 걸었다.

"야! 범이 너 어디 숨어있었어? 어? 용케도 안 걸렸네?"

"이 놈을 잡아서 수술을 시켜야 되는데... 이 깡패 놈의 새끼가 눈치까지 빠르네! 이 놈을 어떻게 잡지?"

범이는 내가 뭐라 하든 말든 잠만 잘도 잔다. 아쉬울 것 하나 없는 놈이다. 애교도 없는 놈이 불쌍한 척이라도 하면 측은지심이라도 생길 텐데 뻣뻣하고 당당한 것이 더 밉상이다.

"에이... 건방진 놈."


 병원에서는 미미의 수유 기간이 지난 것 같다고 알려 주었다. 다행이었다. 새끼들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다음 주에 옆동네 고양이들 포획하러 올 때 한 번 더 통덫을 설치하러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번에는 범이를 꼭 잡아야 할 텐데...


 미미가 치료를 마치고 돌아왔다. 잦은 출산으로 자궁에 염증이 많아 치료가 오래 걸렸다. 돌아온 녀석을 풀어주려고 케이지를 공방 앞에 내려 주었다.

"제가 풀어 줘도 되나요?"

"네. 그러세요. 지금 풀어 주실 거죠?"

"네!"

미미는 처음처럼 발버둥 치지는 않지만 여전히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밥 주는 사람이라고 나를 경계하지는 않는 눈치다.

"미미야! 치료 잘 받고 왔어? 아직도 무서워? 괜찮아. 이제 풀어줄 거야."

미미를 달래며 케이지의 문을 열어 주었다.

"이제 나와도 돼!"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미미는 후다닥 뛰어 저 멀리 도망쳤다.

"뒤도 안 돌아보고 튀는 거 봐! 놀라서 며칠 안 오려나? 밥은 먹으러 와야 할 텐데..."


 그날 저녁 한동안 보이지 않던 미애가 나타났다. 반가워 문을 열고 인사를 했다.

"미애~~ 어디 있다가 왔어. 숨어 있었어?"

어라? 뭔가 이상하다? 지자체 TNR 수술을 받은 길고양이들은 수술을 했다는 표시로 한쪽 귀 끝을 자르는데 진작에 수술을 받아 한쪽 귀 끝이 잘려 있었던 미애가 오늘 보니 두쪽 귀 끝이 모두 잘려 있는 것이 아닌가?

"미애야! 너 또 잡혀갔다 왔어?"

그렇다. 미애도 통덫에 걸려 잡혀가는 바람에 며칠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포획하는 사람들은 시청에서 일당을 받고 일을 한다. 아마도 마리당 포획 수당을 받는 모양이다. 기왕 잡혔으니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서 귀 끝을 자른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미 중성화 수술을 마친 고양이 귀를 또 자를 건 뭐람? 괜히 잡혀서 며칠 공포에 떨다 귀까지 잘린 셈이다.

"모르고 잡아갔으면 그냥 얌전히 데리고 있다가 보내줄 것이지. 귀는 또 왜 자른 거야?"

괜히 미안한 마음에 한마디 던져본다.

"괜찮아. 미애야. 두 귀가 똑같이 동글해져서... 꼭 곰돌이 같이 귀여워!"

"고양이한테 곰 같다는 말이 위로가 되나? 에이그... 내가 말해 놓고도 웃기네! 많이 먹어~"




 아침에 그쳤던 비가 또 내리고 있다. 비나 눈이 올 때면 공방 문을 닫고 고양이들을 내보내지 않는데 얼마 전 열린 문 틈으로 나간 귀티가 마당에 펼쳐놓은 우산 속에서 비를 구경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날 이후 비 오는 날이면 가끔 일부러 우산을 마당에 펼쳐 놓고 귀티를 잠깐 내 보낸다. 그러면 녀석은 멀리 가지 않고 우산 속으로 쏙 들어가 우산 끝에 맺혀있다가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을 앞발로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친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는 가만히 앉아 귀티를 감상하고는 한다.


철이와 미애 브로맨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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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계속 뒤숭숭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그곳에 마음이 가 있어 글에 온전히 집중하기도 어렵습니다.
여러모로... 네!!

장바구니에 야광 응원봉과 1인용 돗자리를 넣고 대기 중입니다.
몸은 책임져야 할 일들에게 붙들려 있고 마음은 여의도에 가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애국심이 넘쳤던가? 불안감인가? 분노인가? 아무튼 뒤숭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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