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상한 목공방 2]
오후 4시. 커피를 마셔도 나른함이 가시질 않는다. 벌떡 일어나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와 공방 마당을 쓸고 있는데 백발의 할아버지와 작은 개 한 마리가 모퉁이를 돌아 공방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뒷짐을 지고 팔자걸음을 걷는 깡마른 할아버지는 못해도 80은 넘어 보였다. 초록색 캡 모자에는 태극기 자수가 박혀 있었다. 목줄도 하지 않은 몰티즈는 자유롭게 요리조리 냄새를 맡으며 할아버지 뒤를 따라왔다. 짧게 민 털에 자주색 스웨터를 입고 신발을 신었다. 나는 개들에게 신발을 신겨 본 적이 없었다. 신발을 신고 총총거리며 걷는 몰티즈가 너무 귀여워 쪼그리고 앉아 말을 걸었다.
"안녕? 아이고 귀여워라! 신발도 신었네?"
몰티즈가 내 앞에 멈춰 서자 할아버지도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천천히 걸어오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는다.
"이뻐요? 산책 나가면 발 씻기기 귀찮다고 할멈이 자꾸 신발을 신겨. 개한테 뭔 신발을 신기고 옷까지 입히고 그러는지 원."
"이름이 뭐예요?"
"사랑이. 사랑이야."
"사랑아~ 이리 와 봐!"
사랑이는 경계하지 않고 총총 걸어와 꼬리를 흔들었다. 사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사랑이는 몇 살이에요?"
"몰라. 한 열일곱 살쯤 됐나? 데려다 키운 놈이라 몇 살 인지도 몰라. 누가 못 키운다는 걸 할멈이 주워온 거야."
금방이라도 부러 질 것 같이 마르고 약한 몸. 윤기 없는 털에 탈모까지 심한 것으로 보아 영락없는 노견이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데요?"
"늙었어. 나랑 같이 늙어가고 있는 처지지 뭐. 죽을 때 다됐어."
"사람을 잘 따르는구나! 간식 좀 줘도 될까요?"
"맘대로 해. 이 놈은 아무거나 잘 먹어."
"사랑아~ 들어가자! 간식 먹으러 갈까?"
사랑이를 데리고 공방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도 뒤 따라 들어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여기는 목공소요?"
"목공방이요."
"목공방? 목공소는 아니고?"
"네. 비슷한 거예요."
닭 가슴살 팩을 들고 나와 할아버지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거 사랑이 먹을 수 있어요?"
"몰라. 나는 밥 주는 건 잘 몰라. 먹겠지 뭐!"
닭 가슴살을 잘게 찢어 사랑이 코 앞에 가져다 대니 킁킁 냄새를 맡고는 냉큼 받아먹는다. 그러고는 더 달라며 자리에 앉아 입맛을 다신다.
"잘 먹네? 닭 가슴살 좋아해?"
사랑이와 사랑이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찾아왔다. 산책을 하다가 공방 골목으로 들어서면 사랑이는 할아버지를 앞질러 신나게 뛰어 와 문 앞에서 폴짝거린다. 매일같이 닭 가슴살을 먹고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즈음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멈이 공방 가서 폐 끼치지 말라고 하도 잔소리를 해서. 이제 며칠에 한 번씩만 올 거야."
사랑이는 3일에 한 번씩 저녁 산책길에 공방에 들렀다. 손님이 없는 퇴근 전에 주로 재단을 하고 있었다. 위험한 작업이니 만큼 사람이 없을 때 해야 했다. 사랑이가 오는 시간은 오후 6시였다. 재단 시간을 조금 앞당기고 사랑이가 오는 시간에는 가벼운 작업들만 하기로 했다. 사랑이의 계속된 방문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닭 가슴살이 아까운 것은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라도 반복적으로 방문하는 손님은 일에 제약을 주니 불편 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는 매번 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냅다 뛰어와서는 문을 열어 달라며 폴짝거린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말로는 귀찮다 하면서도 저녁 6시가 넘어서도 사랑이가 오지 않을 때면
"오늘은 왜 안 오지?"
"오늘은 사랑이가 늦나?"
하면서 기다리게 되었다.
사랑이가 공방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가할 때면 자연스레 할아버지와의 대화도 길어진다. 할아버지는 극우 성향의 보수주의자다. 사실 태극기가 새겨진 초록 모자를 보자마자 알아봤다. 나는 탄핵 집회에 참여할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진보주의자다.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면 할아버지와 나의 생각은 어느 한 부분도 일치하는 구석이 없었다. 그렇다고 매번 찾아오는 손님에게 얼굴 붉히며 따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리 할아버지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 반박을 해도 씨도 안 먹힐 소리였으니 할아버지와 나의 정치 이야기는 매끄럽지 못했다. 지지 성향이 다른 것은 어차피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할아버지의 말에 동조할 수 없었던 나는 늘 구시렁 대는 소심한 반항정도로 마무리를 했다.
할아버지는 고지식하고 답답한 사람이었다. 아빠와 꼭 닮았다. 은행 빚이 있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 눈 뜨면 조선일보 조간신문부터 펼치는 사람. 박정희를 영웅으로 여기고, 대화 불통에 자기만의 세상을 사는 사람. 뭐든 반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표현할 줄 모르는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사상적 견해와는 다르게 지식적인 이야기나 자신의 옛이야기를 할 때면 심심한 나물밥 같은 구수함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삼국지를 술술 꿰고 있었고 고서적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도 많이 알고 있었다. 세 살 때 전쟁으로 북한에서 넘어온 할아버지는 고난과 격정의 시대를 살았다. 지난했던 어린 시절과 바람둥이 아버지의 세 집 살림 이야기는 결코 만만치 않았던 삶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힘을 빼고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듯 술술 풀어놓았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저 모질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뿐이다.
사랑이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상하게도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어린 손녀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따뜻함과 푸근함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책을 많이 읽으셨나 봐요. 아는 게 많으시네요?"
"우리 할멈은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시끄럽다고 싫어해. 할멈이랑은 말이 안 통해."
"왜요? 저는 재미있는데요?"
"재미있어? 허허허!"
"할머니는 역사 이야기를 안 좋아하시나 봐요. 저는 좋아하는데."
"몰라. 내 말은 다 듣기 싫데. 나는 집에서는 말을 거의 안 해.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어. 내 말을 들어주는 놈은 사랑이 밖에 없어."
할아버지의 씁쓸한 미소 뒤에는 외로움이 감춰져 있었다.
"사랑이도 늙고 나도 늙었으니까. 나는 사랑이랑 같이 죽으면 돼."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올해로 여든 서이 됐지 아마? 근데... 나는 아픈데도 하나도 없어. 할멈은 까딱하면 병원 타령인데. 병원은 뭐 한다고 가자는 건지 몰라?"
"연세도 많으신데 아픈 데가 하나도 없으세요?"
"늙으면 다 여기저기 아프고 그러는 거지. 뭘 그런 걸 가지고 병원에 가?"
"그래도 아프시면 병원에 가셔야죠."
"늙으면 다 병들어서 죽는 거야. 병원은 무슨... 늙어서 아픈 거는 의사도 못 고쳐. 사람이 늙어서 죽는 거는 자연의 이치 아냐. 맨날 병원 다니고 약 먹는 노인네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조금만 더 살다가 사랑이랑 같이 죽을 거야."
할아버지는 사랑이를 쓰다듬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을 했다.
"사랑아~ 너는 할아비랑 같이 죽자!"
공방 바닥에 사랑이가 싸 놓은 소변이 이상했다.
"할아버지! 이거 피 소변 아니에요?"
"아냐! 늙어서 그래."
"아니에요. 소변에 피가 섞인 것 같은데요? 병원 데려가야 할 것 같아요."
"밥만 잘 먹는데 병원은 무슨... 개를 뭐 한다고 병원까지 데리고 가? 그냥 죽으면 산에다 묻으면 되지. 나는 개 데리고 병원에 가서 돈 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아니 그래도...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해야죠. 사람도 아프면 병원에 가잖아요. 개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얼마나 힘들겠어요. 개나 고양이들은 아파도 아픈 티를 안내잖아요."
"에이... 늙어서 그런 거라니까. 사람이나 개나 늙어서 죽으면 그만이지 병원은 뭐 한다고 가."
아빠는 무릎이 아프다. 잇몸이 붓고 이가 흔들린다. 일만 하면 삭신이 쑤신다며 가족들에게 수시로 짜증을 부렸다. 그래도 병원 한번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짜증은 부릴 것은 다 부려놓고 몸은 또 멀쩡하다고 우겼다.
할아버지는 아빠처럼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병원에 가지 않으려는 고집까지 꼭 닮았다. 나도 그런 아빠의 답답함이 싫었다. 할아버지의 가족들이 왜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지 않는지 알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는 사랑이가 죽으면 산에 묻으면 그만이라 하면서도 자랑할 때는 팔불출이 따로 없었다.
"우리 사랑이가 얼마나 똑똑한지 알아? 저쪽 길로도 산책을 다니는데... 이쪽 골목으로 안 들어오면 공방은 안 오는 걸 알아. 이쪽 골목으로 들어오면 저 뻔순이가 공방 오는 줄 알고 막 뛰어온단 말이야. 근데 아침에 지나갈 때는 또 공방 문 안열 거 알고 그냥 지나간다니깐."
"우와! 사랑이 엄청 똑똑하네요? 제가 아침잠이 많아서 늦게 출근하는데 사랑이가 그걸 어떻게 알았죠?"
"아침에 몇 번 와봤거든. 불 꺼져 있으니까 금방 알더라고. 엄청 똑똑해."
집에서는 소변을 보지 않고 밖에 나와야 소변을 본다며 또 자랑이다. 밖으로 나올 때까지 소변을 참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할아버지는 깔끔하다며 자랑했지만 나는 걱정스러웠다. 소변을 참는 것도, 소변 색깔이 좋지 않을 것도, 쉽게 싸지 못하고 뺑글 뺑글 돌며 찔끔찔끔 싸는 것까지. 사랑이는 어딘가 아픈 것이 분명했다.
"소변을 너무 찔끔찔끔 싸는데요? 아픈 거 아닐까요?"
"에이~ 영역 표시하는 거야."
"하루 종일 소변을 참으면 안 좋아요. 집에서도 소변을 보도록 가르쳐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오줌보가 길어서 괜찮아. 잘 참아."
할아버지는 역시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학대가 아닌가 싶어 답답하기도 했지만 내 개도 아닌데 계속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사랑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개고기를 먹던 사람이었다. 개는 묶어서 키우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를 산 사람이 아닌가? 옷 입히고 신발 신겨 산책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당신으로서는 넘치는 사랑을 주고 있다고 여길 것은 뻔하다. 그런 사람에게 나의 걱정은 잔소리일 뿐이었다.
사랑이와 할아버지는 2년이 넘도록 공방을 찾아왔다.
꼬박꼬박 출근 도장을 찍던 사랑이와 할아버지가 갑자기 일주일이 넘도록 보이질 않는다. 왜 보이지 않는 걸까? 오랜 시간 규칙적으로 찾아오던 손님의 발길이 끊기니 궁금하고 걱정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할아버지의 연락처도 주소도 모른다. 그저 동네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이요 산책길에 골목을 지나다가 들르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딱히 친하다고 볼 수도 없는 관계였으니 연락처를 물어볼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으레 스쳐가는 사람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며칠의 걱정은 사랑이와 할아버지가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며칠 뒤 사랑이가 왔다. 유모차를 타고 말이다. 반가움에 얼른 뛰어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는
"사랑아~~~ 왜 이제야 왔어? 걱정했잖아~~ 근데 오늘은 웬일로 유모차를 타고 왔어?
"아파서 못 걸어. 사고 나서 골반이 부러졌어."
"네? 왜요?"
사랑이는 할아버지와 산책을 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는 앞서 걸었고 사랑이는 목줄도 하지 않고 천천히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으며 할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다 트럭 바퀴에 머리를 쿵 박고는 잠시 멈추어 서있었다. 그때 트럭이 시동을 걸로 출발하려고 바퀴의 방향을 틀었다. 그 바람에 사랑이 뒷다리가 바퀴와 바닥 사이에 끼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트럭 운전자에게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트럭 운전자는 할아버지의 외침을 들었고 사랑이의 사고를 확인하고는 트럭 바퀴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 사랑이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간 할아버지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사랑이는 심부전 말기요 한쪽 눈은 실명된 상태고 골절 치료나 수술은 할 수는 있으나 수술을 한다 해도 가망은 없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는 혼자였다.
"할아버지. 사랑이는요?"
"죽었어."
"아...... 괜찮으세요?"
"괜찮아."
"사랑이 그렇게 예뻐하셨는데 너무 속상하시겠어요."
할아버지는 바닥만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했다.
"개야 뭐 죽으면 묻으면 그만이지 뭐. 괜찮아~"
사랑이도 없는데 할아버지는 왜 공방을 찾아온 걸까? 내게 사랑이 소식을 전하려고 온 것일까? 아니면 사랑이가 생각이 나서 걷다가 그냥 와 본 것일까? 표현하지 않으니 그 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괜찮아 보였지만 나는 조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후 6시만 되면 사랑이 생각이 났고 이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기다려졌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함께 했던 시간 못지않은 시간만큼 필요한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공방을 찾아오지 않았다.
한 계절이 다 지나간 어느 날 처음 보는 할머니가 공방 문을 빼꼼 열고 얼굴을 내밀며
"여기가... 우리 사랑이가 왔던 공방 맞아요?"
"아... 네!!! 사랑이 할머니세요? 할아버지는요? 할아버지는 요즘 왜 안 보이세요?"
할머니는 말없이 공방으로 들어와 주변을 휘 둘러보다가 내가 앉은 맞은편 의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가 싶더니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앉아도 돼요?"
"네! 앉으세요. 차 한잔 드릴까요? 커피는 안 드실 것 같으니까 둥굴레차로 드릴까요? 할아버지는 항상 둥굴레차만 드셨는데."
할머니는 의자를 한번 쓱 쓰다듬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커피포트에 물을 붓고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말을 했다.
"우리 영감은... 죽었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