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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본심

소설 [이상한 목공방 2]

by 온벼리

노인의 본심


할머니의 충격적인 한마디에 순간 모든 것이 멈추었다. 이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인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 아픈 곳 하나 없던 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갑자기 왜???

슬픔의 당사자에게 왜냐는 질문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묻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다. 어쩌면 할머니도 물어봐 주기를 바랄 것이다.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쩌다가 돌아가신 거예요? 어디 아프셨어요?"

"사랑이 따라갔지요. 뭐!"

'사랑이를 따라갔다고? 설마... 그 나이에 자살은 아니겠지?'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번 물었다.

"어떻게 돌아가셨는데요?"

"아이고~ 놀랐구나! 내가 갑자기 와서는 영감 죽었다. 또 사랑이 따라갔다. 그러니까 놀랐어요?"

"네... 많이 놀랐죠."

"말이 좀 길어요. 여기 오래 앉아 있어도 돼요?"

"그럼요. 당연하죠. 그냥 가신다고 해도 제가 잡을 참인데요."

"그러면 아까 준다던 차 한 잔만 줄래요? 천천히 마시면서 이야기합시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커피포트 전원을 눌렀다. 숨 막히는 정적의 시간은 모든 것을 느린 동작으로 움직이게 하는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머그잔에 둥굴레차 티백을 넣고 물을 쪼르르 따랐다. 뒤돌아 할머니 앞에 차를 내려놓고 마주 앉았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드세요."

할머니가 앉은 의자는 할아버지가 늘 앉던 자리였다. 할머니의 시선이 왜 그 의자에 멈추었는지 알 것 같았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내 귀에서 울렸다. 할머니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영감이랑 사랑이가 너무 자주 와서 힘들지 않았어요?"

목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데 마른땅에 겨우 보슬비라니. 딸꾹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할아버지랑 말도 잘 안 통하고 엄청나게 부담스러웠죠. 저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데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막 화를 내시니까... 한 번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셔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죠. 그래도... 역사 이야기 들려주실 때는 재미도 있고 좋았어요. 저는 역사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아이고 그래요? 나는 맨날 듣기 싫다고 시끄럽다고 그랬는데... 공방 사장님이 자기 말을 잘 들어주니까 여기 오는 걸 그렇게 좋아했구려."

"여기 오시는 거 좋아하셨어요?"

"그럼! 좋아했지요. 사랑이도 그렇고."

"그러셨구나! 저기... 근데...... 죄송하지만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것부터 좀 알려주시면 알 될까요?"

"내가 너무 빙빙 돌려서 얘기했나? 아이고 미안해요."

"괜찮아요."

"우리 영감은... 사랑이가 사고 난 이후로 엄청나게 힘들어했어요. 수술을 못하고 치료만 다니니까 사랑이가 엄청나게 힘들어했거든요. 그걸 지켜보는 영감도 힘들어했죠. 사랑이는 한... 한 달 정도 아프다가 갔나 봐요.

사랑이 죽고 나니까 영감이 밥도 안 먹고 누워만 있더라고요. 노인네가 밥을 안 먹고 누워만 있으니, 기운을 못 차리죠. 그래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신부전 말기라고 하데요."

"신부전 말기요? 사랑이도 신부전 말기 아니었어요?"

"그러니까요. 내가 참.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영감은 사랑이 죽고 나서 5개월 만에 죽었어요."

"그러면... 계속 식사를 거부하신 거예요?"

"안 먹었어요. 제발 일어나서 밥 좀 먹으라고. 왜 맨날 누워만 있냐고 그러니까. 다 귀찮다고. 밥 먹으라는 소리도 하지 말고 일어나라는 소리도 하지 말라고 하데요.

원래 사는 게 재미없는 양반 아니에요. 그래도 사랑이 산책시키는 재미로 운동도 하고 그랬는데. 사랑이 죽고 나니까 꼼짝을 하지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사는 게 재미가 없어서 그런가? 그랬죠.

우리 영감은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 안 하는데 말해도 오히려 반대로 말하는 사람이에요. 예쁘면 예쁘다, 좋으면 좋다 말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걸 못하고 왜 그렇게 속을 자꾸 감추는지 원... 맨날 밥도 안 먹고 누워만 있길래 막 뭐라 그랬죠. (죽을 작정이요? 늙어서 안 먹고 안 움직이면 없던 병도 생겨요.) 그랬더니 영감이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병원에 빨리 데려갔으면 사랑이가 살릴 수 있었을까?

피소변이라고 이상하다고 그랬는데... 진작에 병원 좀 데려갈걸... 늙어서 그냥 여기저기 부딪히는 줄로만 알았지. 한쪽 눈이 실명된 줄도 모르고... 눈이 안 보이니까 사랑이가 트럭 바퀴 밑으로 기어들어 간 거 아냐.

진작에 치료해 줬으면 사고도 안 났을 텐데..."

"이양반이 생전 안 하던 소리를 하데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사고도 사고지만 신장이 안 좋아서 죽은 거잖아요."

"그러게... 신장이 그렇게 나빠지도록 왜 몰랐을까? 사랑이가 죽은 건 다 내 탓이야."

"에그! 그런 소리 말아요. 몰라서 그런 걸. 이제 와서 뭘 어쩌라고."


"나는 그 양반이 자기 탓하는 거 처음 봤어요. 생전 남 탓만 하지 자기 탓은 안 하는 사람이었는데... 사랑이 사고 나던 날도 사랑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얼굴이 허옇게 질려가지고서는 손을 벌벌 떠는데. 말까지 더듬더라고요. 나는 영감이 어디 잘못되었나? 했어요. 너무 놀라서 그런 거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수술비가 400만 원이나 든다데요? 근데 신부전 말기라고 얼마 못 산다고 골절 치료만 다니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영감한테 어쩔 거냐고 물었더니 영감이 하는 말이 (수술해서 살 수만 있으면 나는 400만 원이 들더라도 수술해 주고 싶어) 그러는 거예요. 깜짝 놀랐지요. 돈 아깝게 개를 왜 병원에 데려가냐고 그러던 양반이 그러니까 '이 양반이 미쳤나?' 그랬죠.

나는 영감이 사랑이를 그렇게 사랑하는 줄 몰랐어요. 사람이 맨날 반대로만 말하니까 처음에는 왜 밥도 안 먹고 맨날 누워만 있나? 그랬는데. 말을 안 하니까 사랑이 때문에 그런 건 줄도 몰랐죠. 슬프면 슬프다 하고, 힘들면 힘들다 하면 얼마나 좋아요? 근데 왜 아닌 척하면서 말까지 반대로 해서는 사람 헷갈리게 하는지 원..."

"그러면 할아버지는 일부러 식사를 안 하신 거네요?"

"살기 싫었으니, 입맛도 없었을 테고. 일부러 안 먹은 것도 있겠죠. 고집을 부리는데 별 수 있나? 젊어서부터 그놈의 고집은 아무도 못 말렸어요."

"연세도 많으신 분이 식사를 안 하시면 몸이 견딜 수 있나요?"

"그러니... 따라 죽으려고 그랬던 게지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양반이 우울증이 아니었나 싶어요."

"아... 우울증..."

"왜. 우울증 오면 살기도 싫고, 입맛도 없고, 막 죽고 싶고 그런다잖아요."

"그렇죠."

"자기 말로는 (개새끼 하나 죽을 걸 가지고 뭘 그렇게 대수롭게 구나?) 그러더니만은 이놈에 영감탱이. 말하고 마음이 영 딴판이니. 사랑이가 죽어서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하면 될 거를 왜 마음을 숨겼는지 당최 알 수가 있어야지."

"할아버지도 자기 속 마음을 잘 모르셨던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 원체 자기 속도 모르고, 마누라 속도 모르고, 자식 속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사랑이 죽고 나서 할아버지가 한번 오셨었어요."

"영감이 여기 또 왔었어요?"

"네! 사랑이 쓰던 샴푸 주고 가셨어요. 그때는 (괜찮아! 개는 죽으면 산에 묻으면 그만이야!)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셔서 정말 괜찮으신 줄 알았죠."


"사람들이 그러다 영감 죽는다고 똑같이 생긴 강아지라도 한 마리 들이라고 하길래. 강아지 파는 데 가서 사랑이랑 꼭 닮은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왔죠. 그놈 이름도 사랑이라고 지어 주고 영감한테 보여주니까 좋아하긴 하데요. 근데 너무 늦었나 봐요. 얼마 못 가서 병원에 실려 갔는데 가망이 없다고 잘 보내주라고 하데요. 참나! 얼마나 기가 차던지... 맨날 (사랑아~ 너는 나랑 같이 죽자!) 그러더니만 어쩜 그렇게 똑같은 병에 걸려서 따라가는지 원! 같이 죽자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어요. 병원 갔다 와서 치료도 못 하고 한 달을 누워 있다가 갔어요.

평생 그렇게 고집부리면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더니만 죽을 때까지 고집스럽게 갔어요. 그놈에 영감이."

"할아버지는 아픈 거 못 느끼셨데요?"

"몰라요. 생전 아파도 아프다는 소릴 안 하는 사람이니까. 원체 병원은 싫어하던 양반이라 아프다는 말도 안 해요. 아팠는지 안 아팠는지도 모른다니깐."

"할아버지가 집에서는 말이 없으셨나 봐요?"

"맨날 자기 잘난 체만 하는 양반이라. 입만 열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니 누가 좋아했겠어요? 영감이 말을 안 하니까 나는 세상 편하고 좋았죠. 젊어서는 엄청나게 싸웠어요. 나는 맨날 (왜 당신은 겉과 속이 달라? 당신 속은 도대체 뭐야?) 그랬네요. 당최 말이랑 행동이 다른 사람이라. 맨날 싸웠는데 말 안 하고 사니까 오히려 편하고 좋더라고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많이 외로우셨던 거 같은데."

"마누라나 자식들이 자기 말을 들어주지를 않으니 외로웠으려나? 맨날 큰소리만 치는 사람이었으니 외로울 거라는 생각은 못 했네..."할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진작 알았으면 그래도 죽기 전에 들어주는 척이라도 했을 텐데... 가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미안하고 저것도 미안하고... 괜히 나만 나쁜 사람 된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인데. 영감 죽고 나서 사랑이 무덤 옆에다가 영감 사진을 태워서 같이 묻어 줬어요. 그런 거 아무 의미 없다는 거 알면서도 그렇게 했네요. 내가. 남편이 사랑이한테 같이 죽자고 했던 말이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같이 있게 해 줘야 할 것 같았어요."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에그... 내가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참 주책이죠?"

얼른 일어나 티슈를 뽑아 내밀며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희 아빠도 그러셨어요. 할머니 마음 이해해요. 저도 아빠랑 대화하는 게 싫었어요."

"그래도 우리 영감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영감이 공방 다녀오면 얼굴이 한결 밝아지고 좋아 보였는데 폐 끼친다고 자주 가지 말라고 그랬어요. 내가."

"저도 일이 있으니까 자주 오시면 힘들죠. 그래도 저는 할아버지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좋았어요. 사랑이도 많이 예뻐했고. 할아버지도 그렇고 사랑이도 그렇고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나도 몰랐던 우린 영감 마음을 알아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저도 할아버지 마음을 알아주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이야기만 들어 드렸어요."

"영감한테는 얘기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거예요. 공방 사장님이 그걸 해 줬으니 정말 고맙지요."

할머니는 일어서더니 검을 봉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에그... 주책 그만 떨고 이제 가 봐야겠어요. 오다가 과일이랑 떡 좀 사 왔는데. 나는 갈 테니까 먹고 또 일 봐요."

"네? 벌써 가시게요?"

"내가 가야지 사장님도 일을 하죠. 갈게요. 나오지 말아요."

할머니는 가고 작업대 위에는 검은 봉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사랑이가 죽고 나서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으레 모든 일에 괜찮아야 했던 습관 같은 말일뿐.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얼마나 후회했을까?

그날 그 길을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남들처럼 목줄을 하고 다녔더라면...

공방 사장 말을 들었더라면...

조금만 더 살피고 관심을 가졌었더라면...

진작에 병원에 데려갔더라면...

평생 고집스럽게 자신의 판단이 옳다 여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개는 그저 개일 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었으니 사랑이를 사랑한다는 것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무심한 척 아무렇지도, 아닌 척 털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빈자리가 클수록 후회도 컸을 것이다. 우울증의 깊은 골짜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남편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데 사람이 들어와도 몰라?"

"어??? 언제 왔어?"

"좀 전에 왔지. 왜 그러고 앉아 있어?"

"어?? 어... 뭐 좀 생각하느라고."


퇴근하는 차 안에서 나는 내내 시무룩했다. 운전하던 남편이 나를 쓱 돌아보더니 아무 말이 없다. 집에 도착해서 저녁을 차리고, 밥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말이 없었다. 계속 눈치를 살피던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어?? 응... 사랑이 할머니가 왔다 갔어."

"그래? 사랑이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데."

"갑자기? 왜?"

"사랑이 죽고 나서 식사도 안 하시고 누워만 계셨데. 그런데 알고 봤더니 할아버지도 신부전 말리였다더라.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할머니가 오늘 그러시더라고."

"그래?"

"근데 있잖아... 할아버지는 사랑이 죽었을 때도 나한테 괜찮다고 그랬었거든? 그리고 맨날 개야 죽으면 산에다 묻으면 그만이라고 말하고 그랬었는데... 오늘 할머니 말을 들어 보니까 그게 아니었더라고.

할아버지는 사랑이를 너무 사랑하면서도 반대로 말했던 건가 봐. 근데 할아버지도 사랑이 죽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자기가 사랑이를 사랑했다는 걸 아신 모양이야. 그러면서 막 후회하시더래. 사랑이가 여기저기 아팠는데 몰랐던 게 너무 미안하다고. 내가 그렇게 병원 데려가 보라고 말했었는데 할아버지는 들은 척도 안 했었거든."

"어! 그랬지."

"그랬으니까... 사랑이 죽고 나서 너무 후회됐겠지?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맨날 반대로 말하니까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그러시더라고... 나도 할아버지가 사랑이 죽었다고 말할 때 솔직히 속으로 '그러게. 내 말 좀 듣지.' 그러면서 욕했거든. 그리고 '사랑이가 죽었는데도 괜찮네?'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그게 아니었더라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할아버지가 사랑이 죽었다고 말할 때 내 눈을 못 쳐다보고 땅만 보고 있었거든. 근데 그게... 슬퍼서 그런 거였어. 할아버지만의 슬픔 표현법이었나 봐. 할머니 말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그때 할아버지 눈이 너무 슬펐던 거였어! 이제 알 것 같아.

할아버지는 사랑이를 예뻐하면서도 말로는 자꾸 "개야 뭐 죽으면 그만이지!" "개를 왜 병원에 데려가서 돈을 써~" 그러니까. 나도 할머니처럼 '저 할아버지 속 마음은 도대체 뭐야?' 그랬었거든.

근데 얼마나 슬펐으면 먹지도 못하고 누워만 계셨을까? 사랑이 죽고 5개월이나 누워 계셨데. 그렇게 오랫동안 아파하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또 '사랑이 죽고 나니까 발길을 뚝 끊는 고만!' 그러면서 혼자 욕했네?"


아빠도 그랬다. 할아버지처럼 반대로 말하고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표현할 줄 모르고 모든 일을 술로만 해결하려는 것이 답답하고 싫었다. 자신이 우울증 환자인 줄도 모르고 우울증은 한가한 사람들이나 걸리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마음에 슬픔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품어 줄 수 없었다. 아빠로 인해 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서 아빠를 보았다. 고지식한 보수주의자. 앞뒤가 꽉 막혀 대화가 안 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빠에게도 들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들어주는 것쯤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 보았다. 볼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왜 울어. 그렇게 슬퍼?"

"내가 너무 무심했나 봐! 할아버지는 사는 게 재미없다고 그랬었는데. 사랑이가 죽고 나니까 살아서 뭐 하나 싶었을 거 아냐.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남편이 울먹이는 나를 안고 토닥였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위로 때문이었을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래도 따뜻한 분이었는데... 사랑이도 할아버지도 영영 볼 수 없게 돼 버렸네.

근데 나는 왜 이렇게 미안하고 슬픈 거지?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인지, 아빠에 대한 감정인지, 아니면 나에 대한 연민인지 알 수 없었다. 마냥 속상하고 슬펐다. 어느새 나는 남편 품에서 울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이 흘렀다. 다 울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내 얼굴을 떼어내며 말했다.

"근데... 지아야! 얼굴 좀 들어 봐! 너답지 않게 왜 그래? 그만 울어."

"왜! 그냥 내버려 둬!!"

"저기... 내 어깨가 다 젖었어. 이 콧물 좀 봐! 이거 어쩔 거야~"

"야!! 뭘~ 콧물 좀 묻은 걸 가지고 그래?"

"눈물이랑 콧물을 좀 다르지 않냐? 콧물은 좀 더럽잖아~"

"이 씨... 이런 상황에서 꼭 그렇게 홀랑 깨는 소리를 해야 하겠어?"

"근데... 나! 너 이렇게 우는 거 처음 본다? 딴 사람인 줄? 성질부리니까 이제 좀 너 같기도 하고."

빈정대는 말투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티슈를 뽑아 코를 팽~ 풀고는 등짝을 세게 후려갈겼다.

"위로는 못 할망정 꼭 더럽다는 말까지 해야 하겠어?"

"나는 나름 위로한다고 한 건데? 봐 봐! 눈물 쏙 들어갔잖아!"

"무슨 위로를 이런 식으로 해? 열받아서 눈물이 쏙 들어간 거거든! 죽고 싶니?"

남편은 몸을 후다닥 피하고는 조동아리를 가벼이 놀리며 명을 재촉한다.

"에이~ 코 찔찔이 같으니라고~~"

한껏 신이 나서는 혀까지 메롱 내밀고 촐싹대는 잰걸음으로 도망을 친다. 어찌나 꼴사나운지. 너는 오늘 나를 위로하기 위해 네 한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하구나.

"그래! 원한다면 죽여줄게! 이리 와 봐! 잡히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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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상한 목공방 2" 연재를 목요일 오후 2시 --> 화요일 오전 10시로 변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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