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회사에서 되게 존재감 없는 사람였어. 비쩍 마르고 키도 작은 편이야. 술 담배를 안 하니까 남자들이랑 어울리지 않고 경리부 여직원들이랑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지."
"너랑은 정 반대 아니야?"
"그렇지! 나는 주로 남자 직원들이랑 어울렸거든. 남자들은 꼭 담배 피우러 나가는 장소가 있잖아? 나는 담배는 안 피워도 남자들 따라 나가서 옆에서 수다 떨고 그랬거든."
"남편은 여자들이랑 수다 떨고 너는 남자들이랑 수다를 떨었구나!"
"근데. 남편은 여자들 사이에 끼어있기는 했어도 같이 수다 떨고 그런 건 또 아니었어."
"근데 어떻게 그 사이에 끼어 있어?"
"여자들이랑 있는 게 편하데!"
"그래?"
"회사 끝나면 칼퇴근하는 사람이야. 남자들하고 어울리는 걸 되게 부담스러워하더라고."
"아! 그런 사람이구나!"
"나는 남자 형제들이랑 자라서 남자들이 오히려 더 편하거든."
"그래! 너는 어릴 적부터 왈가닥이라 남자들이랑도 잘 어울렸지!"
이야기가 끊어지면 베드로는 궁금한 것을 물었고 나는 답변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몇 살 차이야?"
"두 살 차이."
"회사 상사였어?"
"아니! 남편이 먼저 입사했고 내가 나중에 입사했는데 둘 다 직급은 대리였고 팀은 달랐지."
베드로는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근데 그렇게 다른 사람끼리 어떻게 사귀게 된 거야?"
베드로는 관객이 되고 나는 극의 주인공이자 해설가가 되었다.
극의 커튼이 오르고 무대 위로 배경이 펼쳐졌다. 두 남녀 주인공이 등장했다.
극장 전체를 울리는 해설가의 독백으로 연극이 시작되고 있었다.
"언제였더라? 아! 우리는 둘 다 영화를 좋아했는데... 나는 그때 주성치를 좋아했거든? 근데 남편도 주성치를 좋아하고 있었더라고, 여자가 주성치를 좋아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아무튼 나는 주성치를 좋아했어! 주성치가 나온 영화가 그때 막 개봉했을 때였어. 아! 남편 이름은 민재야. 안민재. 편의상 남편의 지칭은 '그'라고 할게."
건축회사 그래픽팀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지. 설계팀에서 넘겨받은 도면을 가지고 조감도랑 투시도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 오후 5시 정각이었어. 5시가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이 울리더라?
"여보세요?"
"저 설계팀 안민재인데요."
깜짝 놀랐지.
'이 사람이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지?'
회사 직원들 연락처가 공유되어 있기는 해도 친분이 없거나 일로 관련이 없으면 다른 직원들 연락처는 대부분 모르잖아? 그런데 이 사람이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거야. 순간 섬뜩했지. 그래도 같은 회사 사람이니까 전화번호 알아내는 게 어렵지는 않았겠지.
"네! 무슨 일이세요?"
"외근 나왔다가 일이 일찍 끝나서 영화 보려고 하는데. 같이 볼 사람이 없네요. 혹시 시간 되시면 영화 보러 가실래요?"
"네? 저랑 둘이요? 경리실 사람들 많은데 왜 저랑 영화를 보자고 그러세요?"
"(쿵푸 허슬)을 보자고 하니까 다들 안 가겠다고 그러네요? 여자들은 그 영화 별로 안 좋아하나 봐요?"
그는 내게 가장 먼저 전화한 것이 아니었어. (경리부 직원들한테 퇴짜 맞고 마지막으로 너한테 전화했다. 그러니 오해는 하지 마라)라고 말하고 있는 거였지.
"(쿵푸 허슬)이요? 그거 주성치 나오는 영화잖아요. 저도 주성치 좋아해서 보러 가려고 했었는데. 제가 주성치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몰랐는데요!"
그의 대답에 나는 민망함을 감출 수가 없더라고. 괜히 헛다리를 짚었던 거지. 빨리 수습하고 싶어서 아무렇지도 안은 척을 했지.
"아! 그렇구나! 뭐 어쨌든! 저도 보러 가려고 했던 영화니까 이참에 같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래요? 그러면... 제가 회사로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가 조금 애매해지니까. 나 대리님이 끝나면 극장 근처로 오실래요?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어디로 가면 돼요?"
6시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그가 기다리는 커피숍으로 향했지. 쓸쓸하게 혼자 창밖만 바라보고 있길래 "안 대리님!"하고 멀리서 불렀더니 반갑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더라고.
"오래 기다리셨죠."
"괜찮아요. 근데... 배가 너무 고픈데. 밥부터 먹으러 가면 안 될까요? 점심을 제대로 못 먹어서 무지하게 배가 고프거든요."
"왜 점심도 못 드셨어요?"
"못 먹은 건 아닌데. 일하다 보니까 정신도 없고 바쁘기도 하고. 그래서 대충 샌드위치로 때웠더니 배가 너무 고프네요."
"몇 시 영화인데요?"
"8시 영화 예매했어요. 밥 먹고 가면 될 것 같아요."
"벌써 예매했어요? 그럼 안 대리님이 영화 보여주시는 거예요?"
"제가 보자고 했으니까 제가 사야죠."
"그래요? 그러면 제가 밥 살게요."
커피숍을 나와서 식당을 찾는데 근처에 마땅한 식당은 없고 그날따라 걷기도 귀찮은 거야. 그래서 바로 앞에 있는 '24시 콩나물국밥'집을 가리키면서 말했지.
"콩나물국밥 좋아하세요? 저거 먹으러 갈까요?"
"네! 아무거나 괜찮아요."
당시 나는 음식에 욕심이 별로 없었어. 소박한 식사를 하는 편이었지. 직장 동료 끼리니 요란하고 거창하게 먹을 필요는 없잖아? 그저 점심 먹듯 가볍게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
그가 국밥을 다 먹고 먼저 슬며시 식당문을 열고 나가더라? 나더러 계산을 하라고 먼저 일어났나? 생각했지. 계산대로 가서 카드를 내밀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그러는 거야.
"아까 남자분이 계산하셨어요."
"네? 같이 있던 사람이요? 언제요?"
"손님 화장실 갔을 때. 먼저 계산하셨어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는 밖에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지켜보고 있더라고. 고맙다는 말을 기다리는 건가? 싶었지.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 질문을 던졌어.
"제가 밥 사기로 했는데. 왜 먼저 계산하셨어요?"
"다음에는 나 대리님이 사시면 되죠."
나는 생각했지.
'어라? 뭐지? 이 남자? 다음에 또 둘이 밥을 먹자는 건가?'
그렇게 말해 놓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자꾸 웃는 거야. 그러더니 또 말하더라.
"오늘은 제가 영화랑 밥이랑 샀으니까 다음에는 나 대리님이 맛있는 거 사주세요!"
"오늘은 가볍게 먹었는데 다음에는 맛있는 거 사달라는 거는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니에요?"
"그래요? 그러면 제가 다음에 더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왜요? 왜 자꾸 밥을 산다고 그러시죠?"
이런! 내가 또 급발진을 하고 말았네! 그가 나를 보고 피식 웃더니 말하더라.
"그럼. 나 대리님이 사시던가요?"
비싼 밥을 사라는 말에 나는 또 정색을 하면서 말했지.
"싫은데요! 그냥 안 대리님이 사세요!"
"거 봐요. 그러니까 제가 산다니까요."
기분이 이상했어.
'뭐지? 뭔가 낚인 거 같은 이 기분은?'
그 남자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어.
'이 남자. 정말 나한테 관심이 있나? 평소 하는 거 봐서는 그런 것 같지 않은데. 오늘은 조금 이상한데? 나는 저 사람한테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데. 싫은 구석은 없어도 좋은 구석도 없는 매력 없는 남자. 안 대리는 내 스타일은 분명 아니야. 물론 안 대리도 나를 좋아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럴까? 평소랑은 좀 다른데?'
나는 연애를 많이 해봤어. 근데 남자를 만나도 싸우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게 되더라고. 연애에 대한 환상도 깨진 지 오래였지. 세상살이에 눈이 밝은 나잖아? 그러니 깨달음도 빨랐던 거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상도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거든. 그 남자는 든든했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었어. 책임감도 강하고 제법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는데. 좀 고지식하고 이기적인 구석이 있었어. 그 사람은 내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여자로 집에서 살림만 하면서 예쁘게 늙기를 바랐어. 근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 그 남자는 나를 자기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지. 나는 원래 고분고분한 사람이 아니잖아?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없고, 그렇게 살기도 싫었어. 그 사람을 보면서 '내게 맞는 남자는 어떤 남자인가?'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더라고.
나는 생각했어.
'안대리는 멋은 없어도 나를 편하게 해 줄 사람이야.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성깔을 좀 부리더라도 웃어넘길 줄 아는 사람이야. 뜨거움은 없어도 이런 남자라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일주일이 지나고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또 그에게서 전화가 왔어. 평소 같았으면 그냥 받았을 전화인데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와서 전화를 받고 있더라고.
"아! 잠시만요...... 네! 여보세요."
"우리 오늘 밥 먹으러 갈래요?"
그의 목소리는 약간 들떠 있었고 평소보다 톤이 높았어.
"맛있는 거 사주시게요?"
"퇴근하고 시간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근데 뭐 사주실 건데요? 맛있는 거 아니면 안 갈 수도 있어요."
"하하! 뭐 드시고 싶은데요? 고기 좋아하세요?"
일부러 살짝 튕겨봤는데 그가 받아주더라? '요놈 봐라?' 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지.
고기라고 하길래 나는 또 말했지.
"삼겹살? 목살?"
"소고기는 어때요?"
소고기라는 말에 잠깐 멈칫했지. 내가 원래 계산이 빠르거든.
'그러면 나중에 내가 또소고기 사줘야 되는 건가?'
순간 살짝 부담스러웠어. 나는 늘 궁핍했으니까.
"소고기요? 비쌀 텐데요? 그렇게 비싼 거 안 사셔도 되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소고기 집이 저희 집 근처에 있는데. 거기 가서 먹을래요?"
'에이! 모르겠다. 이번만 얻어먹고 입을 싹 씻든가 하자!'라고 생각했지. 자기가 사겠다는 뭐!
"알았어요. 그러면 어디서 만날까요?"
"회사 근처로 갈 테니까 10분만 있다가 나오세요. 도착하면 제가 전화할게요."
또 뭔가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지. 나는 눈치가 엄청 빠른 사람이거든. 분명히 뭔가 있는데 그게 정확히 뭔지를 모르겠는 거야. 대 놓고 이야기했다가는 창피당할까 봐 말은 못 하겠고. 뭔가 있는데? 이건 뭐지?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스테이크집도 아니고, 한우 숯불구이집도 아니었어. 자기 집 동네 구석에 있는 정육식당이었어. 소고기 사준다길래 그래도 나름 기대하고 갔는데. 조금 어이가 없었지.
"이래 봬도 숙성 고깃집이라 이 집 고기가 부드럽고 맛있어요."
"누가 뭐래요? 또 얻어먹게 됐네요? 소고기 사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돈이 없어서 나중에 소고기 못 사드려요."
"하하하! 괜찮아요. 많이 드세요."
회식 자리에서는 술 못 마신다고 빼던 남자가 소주 한 병을 시키더라?
"사장님 여기 진로 한 병만 주세요."
"술 마시게요? 술 못 마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약해서 그렇지. 아예 못 마시는 건 아니에요.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마시기 싫으니까 그냥 못나신다고 한 거예요. 오늘은 소주가 당기네요. 소주 몇 잔 정도는 마실 수 있어요. 한 잔 하실래요?"
"그러면 저도 한 잔만 할까요?"
우리는 술 한 잔씩 따라놓고 이런저런 회사 내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는 경리 직원들에게 들은 회사 이야기들을 참 많이도 알고 있더라.
나는 생각했지.
'이 남자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내가 이 남자를 잘 모르고 있었나?'
소고기가 돌판 위에서 지글거리면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어. 그는소주 한 잔을 여러 번에 걸쳐서 아주 조금씩 나눠 마셨지.
나는 또 생각했어.
'저렇게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왜 굳이 술을 마시겠다는 거지?'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의 속내가 점점 더 궁금해졌어.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었는데 우리는 제법 말이 잘 통하더라고. 대화가 물 흐르듯 매끄럽게 흘렀갔지.
"나지아 대리! 우리. 말 좀 편하게 합시다."
"그럴까요?"
"제가 두 살 많으니까 오빠라고 불러요!"
"에이~ 두 살 밖에 차이 안 나는데 오빠는 무슨? 그냥 친구 해요."
"그럴까요? 그럼! 지아야! 나는 이렇게 부른다?"
"그래. 안 대리. 안민재! 말 놓으니까 좋네!"
소주 몇 잔 정도는 마실 수 있다던 그는 겨우 두 잔을 마시고는 얼굴이 잘 익은 감처럼 발간해지고 있었어.
그가 말했지.
"있잖아. 습...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더니.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답답하게 계속 뜸을 들이는 거야.
"음...... 오늘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내 눈을 피하면서 소주잔만 만지작 거리길래.
"뭔데? 왜 자꾸 뜸을 들여? 뭐 잘못한 거 있어?"
고개는 들지도 못하고 소주잔만 만지작 거리면서 그가 말했지.
"잘못한 건 아니고... 있잖아...... 우리 사귈래?"
"어??? 뭐라고?"
"사귀자고."
"......"
사귀자는 말에 나는 입을 벌리고 얼어 버렸지. 순간 모든 것들이 정지된 것 같았어. 내가 대답이 없으니까 그 사람은 얼굴은 점점 더 붉어지더니 귀까지 빨개지더라.
나는 생각했지.
'이 남자 겨우 소주 두 잔에 취한 건가? 아니면 부끄러워서 그러는 건가?'
그의 발음은 정확했고 눈빛도 사뭇 진지했지. 술주정을 하거나 허튼소리로 하는 말은 아니었어. 농담으로라도 함부로 사귀자는 말을 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제서 나는 그동안의 묘했던 느낌이 뭐였는지 알 것 같았어.
'이러려고 영화를 보자고 했던 거구나!
이러려고 밥을 먹자고 했고, 소고기를 사준다고 불러낸 거였어.
이러려고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소주를 시켰구나!
이 남자 나를 전부터 좋아하고 있었나? 경험상 저 정도로 순진하고 순한 남자는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사귀자는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 것 같은데? 눈빛을 보면 진심인 게 분명한데... 고백은 받았는데 가슴이 뛰지는 않네? 그래도 이 남자는 나랑 잘 맞는 거 같고 나쁘지 않은데 한번 사귀어 볼까?'
긴 침묵을 깨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을 했지.
"그럴까?"
그는 자기가 먼저 사귀자고 말해 놓고는 긍정적인 대답은 바라지도 않았나 봐!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거야. '진심이야?'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어. 그래서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살짝 끄덕여 줬지. 그랬더니 이내 얼굴은 밝아지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이는 거야. 입꼬리는 자꾸 올라가는데 억지로 웃음을 참는 표정 알지? 입은 씰룩거리고 콧구멍까지 벌렁거리는 거.
내 대답을 듣더니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갑자기 말 수가 확 줄어들더라. 좀 웃겼어. 그런 순수한 모습이 또 귀엽기도 했고. 그 사람의 설렘이 나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어. 참 기분이 묘했어.
"그랬어. 그래서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지."
베드로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오~~ 재미있어! 재미있어! 짧은 연극을 본 것 같았어!"
"사내 커플이라 대 놓고 말은 못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회사 사람들도 알게 됐거든? 근데 사람들이 다 놀라더라고! (재네 뭐야? 전혀 안 어울려! 얼마 못 갈걸?) 막 이런 반응들인 거지."
"그럴 만도 하지!"
"그런가? 아무튼 사람들은 얼마 못 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안헤어지거든! 그리고 결혼까지 한다고 하니까 더 놀라는 거지." "그럼 남편이 프러포즈한 거야?"
"글쎄? 딱히 프러포즈 같은 건 없었던 거 같은데?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 결혼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 나도 이 남자랑 결혼하겠구나! 뭐 그런 감이 오긴 했지."
"에이~ 뭐야 시시하게. 프러포즈도 안 하고!"
"야! 노총각이라서 뭘 모르시나 본데. 현실은 드라마랑 좀 다르거든요?"
"나는 꼭 프러포즈할 거야! 아주 멋지게!"
"그러시든가요! 근데. 상대는 있어?"
"없지! 갑자기 슬퍼지네!"
"걱정 마라! 내가 보기에 너는 결혼을 못할 것 같지는 않다. 근데 연애를 하려면 일단 직장부터 구하든가. 아니면 일을 하든가. 뭐든 해야 할 것 같지?"
"그래야겠지? 오! 친구 덕분에 삶에 의욕이 막 생기는데?"
"근데... 있잖아! 진짜 웃긴 건. 이 남자가 사귀자고 말한 지 이틀 만에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 거야."
"사귄 지 이틀 만에? 혼자 살았어? (라면 먹고 갈래?) 뭐 그런 거야?"
"아니! 어머니랑 살고 있었지. 자기가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고 싶었나 봐!
원래 회사에는 안 대리가 부잣집 아들이라고 소문나 있었거든? 그 당시에 40만 원짜리 패딩을 입고 다녔고, 보험도 되게 많이 들어놨다 그랬고, 안경태도 막 20만 원짜리를 끼고 다니고 그랬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안 대리는 부잣집 아들이다! 아니다! 그러면서 말이 많았지.
나야 뭐 남편한테 관심도 없었고. 40만 원짜리를 입던 20만 원짜리를 끼던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사람이니까.
근데! 집에 가 보고 아주 그냥 깜짝 놀랐지! 세상에~ 어머니랑 둘이서 단칸방에서 살고 있더라고."
"어???"
"이 남자가 일부러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 거였어.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렇게 산다. 이래도 사귈래? 그런 마음이었나 봐. 조금 어이가 없었지."
"야! 너도 대단하다. 그런데 어떻게 결혼까지 했어?"
"그러게! 그렇게 됐네?"
"아까부터 드는 의문인데. 그러면 사귀자고 말하기 이전부터 남편이 너를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
"어! 나중에 들어보니까 내가 자기랑 달라서 좋아하고 있었다고 그러더라고. 자기가 못 가진 걸 내가 가졌데. 당당하고, 씩씩하고, 사치 부리지 않으면서도 전혀 꿇리지 않는다고. 그 흔한 명품백 하나 없어도 당당해서 멋져 보였데. 아! 생활력 강해 보이는 것도 좋았다고 그랬어."
"그래. 지아가 그런 매력이 있지!"
"음... 너도 나를 좀 아는구나! 이 자식 사람 볼 줄 아네?"
"에이~ 어릴 적부터 봐온 친군데. 그럼! 잘~ 알지! 근데 내 타입은 아니야!"
"야!!! 너도 내 타입 아니거든? 습... 그렇게 함부로 말했다가는 나가는 문은 없을 수도 있어. 말을 잘해야 할 거야! 말 한마디에 생사를 오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니?"
"허~~ 나 오늘 생매장당하는 거야? 뒤뜰에 숨겨놓은 냉동고 있는 거 아니야? 냉동고를 열었더니 시체가 막 가득해! 겁나 이상한 목공방! 알고 봤더니 무서운 곳이었어! 들어간 사람은 있는데 아무도 나간 사람은 없어!"
"잔혹 동화냐? 꼭 그거 같다? 호랑이 굴로 들어간 발자국은 있는데 나간 발자국은 없는 거? 호러물 같기도 하고? 재미있겠다. 나도 스릴러 호러물 그런 거 좋아하는데!"
베드로는 일부러 초등학생 책 읽듯 딱딱한 말투로 말을 했다.
"네! 네! 무섭습니다. 아름다우신 여왕 공주 마마! 제가 못 알아 뵙고 말을 함부로 지껄였습니다. 제발 용서하시고 살려주십시오! 저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맛이 없습니다. 냉동실에 처넣거나 잡아먹지 말아 주십시오!"
"말투가 왜 그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데? 일부러 나 놀리는 거야? 야! 그리고 여왕, 공주 그런 건 내 취향 아니거든?"
베드로가 눈을 히번득 뜨고는 말했다.
"그럼. 마녀??"
나는 조각도를 책상 위에 힘껏 꽂는 시늉을 했다.
"죽고 싶니? 다시 갈까? 잔혹 동화?"
베드로는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동그라미를 만들어서는 자기 눈에 가져다 대고 오버하며 말했다.
"오케이~ 당당하고 씩씩한 꽤 멋진 친구 정도로 타협하자!"
"그래! 그 정도는 마음에 든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한 거야?"
"신났네? 너 굉장히 즐거워 보인다?"
"어! 무지하게 재미있어! 나는 연애 소설이나 로맨스 드라마 뭐 그런 건 시시해서 안 보거든. 근데 남의 연애사가 이렇게 재미있을줄은 몰랐네! 계속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