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상한 목공방 2]
"남편은 막내야. 형, 누나랑은 나이 차이가 많아서 어릴 적부터 항상 혼자 놀았데. 소심하고 혼자 노를 것에 익숙한 그런 아이 있잖아?"
"연애사는 끝나고 과거사로 들어가는 거야? 아쉽네!"
"어! 과거사도 재미있어. 그리고 어머니는 굉장히 부지런하신 분인데. 항상 일하느라 바쁘셨데. 남편은 혼자 심심하니까 맨날 만화책만 보다가 만화 그리면서 놀았다고 하더라고."
"그래? 그럼 남편도 그림을 잘 그려?"
"아니! 그건 아니야."
"어? 그림 그리는 건 좋아하는데. 그림은 못 그려?"
"손재주가 좋은 편은 아니라서. 보통 그림 조금 그리는 사람들은 계속 그리다 보면 실력이 느니까 잘 그릴 것 같잖아? 근데 우리 남편은 못 그려. 과일도 잘 못 깎아."
"반전인데?"
"심심하니까 그냥 시간 때우느라고 그렸던 거지. 가족들은 다 각자 바쁘니까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무료했겠어."
"너랑은 많이 다른데?"
"응. 나는 밖에서 뛰어놀았으니까. 나랑은 많이 다르지. 남편 어릴 적에는 집안 분위기도 단란하고 형편도 괜찮았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힘들어졌데. 아버지가 늦바람 나서 집을 나갔거든."
장난스럽기만 하던 베드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냥 나간 것도 아니고 바람나서 여자 끼고 나갔는데 돌아 올리가 있나? 그래도 어머니는 계속 기다리셨데.
봐봐?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보통 상황이 아니잖아? 남편이 바람났어. 여자랑 집을 나갔어. 얼마나 화가 나고 기가 막히겠어? 갑자기 혼자서 애들을 책임져야 되고. 거기다가 더 웃긴 건 남편이 빚보증을 서서 그걸 또 갚아야 되는 상황까지 된 거야. 어머니는 이혼은 죽어도 못하겠고, 그냥 두자니 자식들한테까지 빚이 돌아갈 것 같으니까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또 그걸 갚느라 죽어나는 거지.
먹고살기도 힘든데 빚까지 갚았으니 가난에 시달렸겠지? 그래서 남편은 고3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데."
"대학은 안 갔어?"
"갔어.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도 했데."
"공부도 힘든데 고3이 일까지 했어?"
"그래. 그래서 일찍 철들었데. 그때 X도날드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인 것 같은데. 거기서 일을 했데. 근데 고등학생이 일 해봤자 얼마나 받겠어? 용돈이나 벌었겠지. 대학은 가고 싶은데 자기 힘으로 대학 등록금은 마련할 힘을 없고. 그래서 어머니한테 등록금만 마련해 달라고 사정을 했데. 어머니는 또 빚을 내서 아들 등록금을 마련해 줬겠지?
남편은 대학 다니면서 학비도 벌어야 되니까 놀 틈도 없었지. 자기는 술, 담배, 연애 그런 건 여유로운 놈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데. 한 눈 팔 여유도 없었던 거야. 학생 때는 맨날 집, 학교, 아르바이트. 직장 다닐 때는 집, 회사. 그렇게 사는 게 익숙한 사람이야.
나 만날 때까지도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데. 아! 그러고 보니까 여태까지도 일을 쉰 적이 없구나! 직장도 잘 안 옮겨. 힘들어도 그냥 꾹 참고 일해. 미련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야.
총각 때는 회사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거든.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 주시면 여직원들이랑 같이 앉아서 먹는 거야. 여직원들이 (안대리는 왜 혼자 먹어? 이리 와! 같이 먹자!) 그랬겠지? 그래서 여직원들이랑도 친해졌던 것 같아."
"어머니가 빚을 좀 갚았다 싶으니까 큰 형이 결혼을 하겠다고 했데. 어머니는 또 어려운 형편에 큰 아들 전세를 얻어 줬지? 여자 이름으로 전세를 얻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 줬데. 근데... 그 여자가 얼마 못 가서 같이 못살겠다고 형을 내 쫒았데. 그 여자는 한두 번 그런 게 아니었던 거야. 꽃뱀이었나 봐!
거기다가 하필이면 또 딸도 결혼해야겠다고 한 거야. 그래서 어머니는 또 있는 돈 없는 돈 다 내주고 단칸방으로 이사 와서 막내아들이랑 둘이서 살고 있었던 거야.
남편이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갔을 때 그때가 그때였던 거야."
"어휴......"
베드로는 내내 답답했던지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도 나는 남편 만나고 많이 안정적인 사람이 됐어. 시댁 식구들은 서로 싸우는 일이 거의 없어. 내 입장에서 보면 답답할 정도로 조용한 사람들이야. 남편 말로는 어머니도 그렇고, 아버님도 자기 어릴 적부터 크게 소리 한 번 지르는 법이 없었데.
우리 집이랑 정 반대지? 우리 아빠는 맨날 술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엄마는 아빠랑 허구한 날 싸우고, 아빠는 오빠 두들겨 패고, 오빠는 또 동생들 두들겨 패고... 폭력적이고 시끄러운 집안이었지.
아빠는 엄마 속 엄청 썩이고, 엄마는 또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조용할 날이 하루도 없었어."
"한 번은 아빠가 술을 많이 먹고 방에서 잠들었는데 엄마가 칼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 거야."
"어??? 칼을???"
베드로는 미간은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오빠랑 나는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는구나! 싶었지. (엄마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서 둘이 바짝 긴장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너무 조용한 거야. 방 문에 귀를 바짝 대봤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려. 조금 있으니까 엄마가 문을 열고 나오더라? 그래서 오빠가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아빠를 살폈지? 나는 차마 들어갈 용기가 없더라고. 조금 있다가 오빠가 나오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러더라. (야! 아빠 요기 목에 피 아주 쪼금 났거든? 근데 아빠가 뭐라는 줄 아냐? 쳇! 또 신문기자 부르랜다.)
우리 아빠는 되게 웃긴 게. 엄마랑 막 싸우다가도 결정적으로 일이 터질 것 같으면 이상한 유머를 던졌어. 그러면 또 엄마는 피식 웃으면서 싸움을 끝내. 아빠는 그 상황에서도 또 유머를 던진 거야. 아니! 부인이 칼 들고 와서 자기 죽인다는데 그 상황에서도 유머가 나오냐고.
(얘들아! 엄마가 나 죽일라고 그런다! 얼른 신문기자 불러라. 마누라가 남편 죽인다고 대문짝 만하게 신문기사 내야겠다!) 그러는 거야. 아니! 경찰도 아니고 왜 신문기자를 부르냐고. 그러고 결정적일 때 막 엄살을 부리니까 엄마는 또 어이없어하면서도 싸움을 끝내는 거야. 진짜 어이가 없지? 나는 그때 둘 다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 근데 커서 보니까. 아빠가 조금만 엄마한테 맞춰줬어도 덜 싸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엄마가 성질을 좀 죽였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더라."
"야! 너는 무슨 그런 말을 그렇게 담담하게 하냐?"
"뭐! 둘이 싸우긴 했어도 매번 그렇게 끝났으니까. 그러니까 나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거겠지? 그래도 나는 맨날 술 먹고 싸우는 걸 보고 자라서 '우리 아빠 같은 사람 만나면 안 되겠다' 생각을 하고 있었지."
"그래서 남편을 만난 거구나!"
"그런가 봐!"
"그래... 잘 만났네."
"남편은 그럼. 지금도 친구가 없어?"
"거의 없어. 한 번은 친구를 만나고 온다길래 깜짝 놀랐지. (너도 친구가 있어?) 그랬더니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이혼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만나고 온다는 거야. 그래서 (그래? 너도 친구가 있긴 있구나!) 그랬지. 그 정도로 친구가 없어."
"남편은 누굴 닮은 거야?"
"습... 생활력은 어머니를 닮은 것 같은데. 조용히 회피하는 건 아버지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남편은 내가 화를 내면 자리를 피해. 그래서 싸움이 잘 안 나기는 하는데. 아... 대화로 풀어야 되는데 자꾸 도망을 치니까 내가 속이 터지지."
"야! 근데 너는 그런 상황에서도 결혼을 결심했네?"
"나는 그냥 시댁 사람들이 편했어. 시끄럽지 않아서 좋았고. 남편 성격도 나랑 잘 맞았고."
"감추지 않고 솔직히 말한 게 통한 건가?"
"그런 것도 있겠지."
"근데 또 웃긴 이야기 하나 있는데. 나는 내 힘으로 벌어서 공부하고, 결혼할 때도 혼수까지 다 내가 벌어서 해 갔거든? 근데 나 결혼할 때 우리 엄마가 질투를 하는 거야."
"엄마가 딸을 질투해? 왜? 뭘 질투해?"
"다! 다 질투했어. 자기는 공부할 환경도 아니었고 그럴 생각도 못했는데 나는 혼자 벌어서 공부를 하니까 부러워했었거든. 근데 내가 내 손으로 벌어서 혼수도 다 해가고, 순하고 조용한 남자 만나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니까 그것까지 질투를 하더라고. 우리 엄마는 남편이 딸 예뻐하는 것도 질투했던 사람이야. 좀 어이가 없었지? 딸 시집가는데 축하는커녕 질투를 하고 있으니. 나는 그런 엄마 보면서 오만 가기 생각이 다 들더라.
'자식을 남으로 여기나?'
'우리 엄마는 모성애가 아예 없는 사람인가?'
'나이를 저렇게 먹고도 어떻게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애 같지?'
보통 엄마들은 못해줘서 미안하고 자기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잖아? 근데 어떻게 딸이 자기보다 나은 삶을 산다고 질투를 하냐고! 나라면 안 그랬을 것 같거든? 그런 게 부모 마음 아닌가?
그때부터 나는 엄마랑 확실히 멀어졌던 것 같아. 그리고 너도 알지? 우리 엄마 여호와증인인 거?"
"알지. 너희 엄마 대단하셨지."
"어릴 적에야 힘없고 모르니까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았지만 커서 엄마 나이가 되니까 엄마를 평가하게 되잖아? '우리 엄마는 왜 자식들에게 그렇게 밖에 못했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분노가 치밀더라고. 그런데 또 사과도 안 해. 그래서 나는 이제 엄마랑 아예 연락도 안 하고 살아."
"어휴..."
"너 오늘 한숨 많이 쉰다?"
"그러게... 남일로 이렇게 한숨 많이 쉰 것도 처음이네."
"그래. 나는 그렇게 살았고, 남편도 그렇게 살았고, 우리는 그렇게 결혼을 했지."
"고생 많이 했네. 너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둘이 다른 것 같은데 또 닮았네."
"닮았다고?"
"둘 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착실하고 씩씩했잖아!"
"그렇네?"
"그리고 둘 다 착했네."
"남편은 그렇다 쳐도 나는 착한 거랑은 거리가 멀지 않냐?"
"아니야. 너도 착해. 말은 막 하고 성질은 부려도. 너도 착한 거야."
"그런가? 착한 건 별로 내 스타일은 아닌데. 난 착하다는 말 별로 안 좋아해!"
"그래? 그럼 멋지다고 해야 돼?"
"또 멋져? 다른 표현 없어?"
"응! 없어. 너무 많은 걸 바라지는 말고! 근데...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간 직장인데 왜 그만두고 일본까지 간 거야?"
나는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일어섰다.
"오늘 베드로가 궁금한 게 많네? 커피 한 잔 하고 이야기할까?"
"어! 그럴까?"
"뭐 마실래? 믹스? 블랙?"
"아무거나."
"아! 드립커피 있는데 그거 마실래?"
"그래."
베드로는 고개를 돌려 마당을 뛰노는 고양이들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고양이들이 멀리 안 가고 밖에서 잘도 노네! 저 녀석들은 되게 행복해 보인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드립커피 위에 살살 부어가며 커피를 내렸다. 진한 커피 향이 공방 안을 가득 채웠다. 두 잔의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몇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회사생활이 힘들었어. 내가 원래 타협을 잘 못하는 성격이잖아. 그러다 보니까 상사들하고도 자주 싸우게 되더라고. 상사들이 부하직원한테 지시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나는 그게 그렇게 싫더라. 상명하복 그런 거랑은 안 맞는 사람인가 봐!
처음에 대학 갈 때는 '건축가' 그러면 되게 멋져 보였거든! 나도 잡지에 나오는 건축가들처럼 멋진 건축물을 디자인하고 싶었지. 그래서 건축디자인학과를 갔는데... 졸업을 하고 막상 취업을 하고 보니까 현실은 그게 아닌 거야.
뭐! 물론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노력하다 보면 내가 바라던 건축가가 될 수도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름 창작의 꿈을 가지고 취업을 했는데. 맨날 시키는 일만 해야 되고, 남이 그려주는 설계도에 투시도만 그리고 있으려니까 그 일이 점점 싫어지더라.
창의성이라고 눈곱만큼도 없지, 시키는 대로만 하자니 가슴은 답답하지, '내가 이렇게 살려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를 했나?' 싶기도 하고,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맞나?' 싶으니까 자괴감이 들더라.
할 수 있는 창작이라고 해봐야 색깔 아주 살짝 바꾸는 정도? 그 정도가 다였어. 몇 년을 참고 다녔는데 갈수록 지겨워지니까 견딜 수가 있어야지. 결국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했지. 그래서 '일본으로 유학 가야겠다' 생각을 한 거고."
"그래서 일본에서 시각디자인을 배운 거구나! 야! 그런데 너네 남편도 참 대단하다. 그렇다고 어떻게 와이프를 일본으로 보낼 생각을 다 했데?"
"그래. 나도 그 점이 되게 고마웠지. 근데... 일본에서 생활비랑 학비는 또 내가 다 벌어서 충당했어."
"야... 너도 참 대단하다! 어떻게 또 그렇게 살 생각을 했냐?"
"내가 가겠다고 했으니까. 내가 벌어서 다니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힘들지 않았어?"
"당연히 힘들었지. 내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일본 유학 시절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