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첫 책 출간기
처음,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 '브런치'를 우연히 발견하고 벅찬 마음이 들었다. 그 두근거림에 이끌려 너무도 당연하게 브런치에 가입하고 글을 썼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은 마치 오랫동안 내 안에 갇혀 있던 이야기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 숨을 쉬게 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쓰고 싶은 것을 의식의 흐름대로 펼쳐갔다. 새하얀 화면을 해묵은 이야기들로 채우는 통쾌함 속에서, 글쓰기는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가족, 상실, 그리고 내면의 자신과의 감격스러운 해후를 선물했다. 나의 글은 마치 물 밖에서도 죽지 않고 파닥거리는 싱싱한 생선처럼 요란하게 제 숨결을 증명하고 있었다.
세 개의 글을 완성하고 제대로 된 수정도 없이 '맞춤법 검사'라는 기본 검사만 거친 뒤 그대로 작가 심사를 신청했고, 며칠 뒤 승인됐다는 축하 메시지가 메일로 날아왔다. 나는 그렇게 운명처럼 마흔이 넘은 나이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브런치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브런치 작가 승인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단번에 승인받은 나는 글쓰기 재능을 타고난 것인가?'라며 잠시 우쭐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넓고 넓은 브런치의 바다에는 수많은 작가가 활동하고 있었고, 감히 넘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구독자를 보유한 이들도 많았다. 내 구독자 수는 수개월이 지나도록 겨우 두 자릿수가 전부였고, 천 단위가 넘는 그들의 존재는 감히 꿈꿀 수조차 없는 아득하고 높은 봉우리처럼 느껴졌다. 한때는 그들의 인기가 부러워 동경하며 '구독자 수'라는 외적인 기준으로 초라한 내 브런치를 평가한 적도 있었지만, 그 잣대가 진정한 글쓰기의 가치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글쓰기를 계속할수록 처음의 마음과는 다른 것이 생겨났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내 안의 아픔들과 다시 마주해야 하는 일은 통쾌함보다 힘겨움이 크다는 것이 점점 명백해졌다. 잊고 싶었던 아픔을 다시 들춰 가슴속 깊이 자리한 상처와 마주했다. 그때의 감정을 세세히 들여다보고 글로 써내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고, 나는 그 고통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 시절의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견디지 못해 글쓰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방향 전환이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한 쉼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회피하려 했던 현실과 마주했던 경험, 그것은 결국 나를 아프게 했던 과거의 인물에게 그 아픔에 대해 직시하고 말할 용기를 주었고, '힘들었고, 원망스러웠다'라고 내 안의 응어리를 풀어내듯 고백할 수 있게 했다. 돌이켜보면 내게 그 1년은 '회피'가 아닌, 온전한 성장을 위한 '숙성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일 이후 1년의 공백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지난날들과 대면할 용기를 얻었고, 브런치로 돌아와 더욱 진솔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를 오래 괴롭혔던 아픔들이 아직 내 안에 상처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것만 꺼내면 치유되고 울지 않아도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글쓰기만으로는 온전히 해소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눈물이 줄고 아픔에 무뎌진다 해도, 과거는 여전히 그 자리에 깊은 상처로 남아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글쓰기가 나를 숨 쉬게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끊임없는 글쓰기는 내게 새로운 통찰을 안겨주었다. 나는 가장 먼저 나 자신을 향한 '화해와 용서'가 있어야 함을,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내면의 치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치유는 아픔을 아는 것,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을 끌어안을 때 비로소 그 무거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진정한 치유의 경험이야말로 다른 이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힘들 줄로만 알았던 고통은 실은 내 삶을 성장시키는 귀한 거름이었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존재인지, 때로는 짐이라고 느꼈던 내 가족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임을 깨달았다. "나의 글쓰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오랜 질문이 결국 나를 자기 치유를 넘어선 '내 글이 다른 이의 아픔을 위로하는 다정한 온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어 그 역할과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또 다른 세상으로 확장되었다.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소설은 나의 삶에서 나오고 또 누군가의 삶을 거쳐 글로 만들어진다. 나의 에세이 지필은 소설가가 되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아이 이야기를 쓰면서 엄마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았고, 남편과의 갈등을 이야기로 풀며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또 소설을 창작하며 내 안에 숨어 꿈틀거리는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시를 새로운 형식으로 들였다. 시는 내게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장르였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통해 메마른 눈으로 지나쳤던 평범함 속에서 숨 쉬는 것들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힘을 기르고, 글에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을 더해가는 법을 배웠다. 소설, 에세이, 시를 넘나드는 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도전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다양한 면모를 끌어내고 세상을 다채롭게 이해하는 통로가 되었다. 그렇게 글쓰기를 통해 나의 한계와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끊임없이 확장해 가는 중이다.
글쓰기의 깊이에는 끝이 없다. 쓸수록 어렵고 알면 알수록 버겁다. 그 끝없는 깊이와 넓이가 부담스러울 때도 많지만, 오히려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글쓰기는 내게 숨 쉬는 것과 같고, 벅찬 감동으로 자신을 온전히 피워내며 자아라는 무한한 우주를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당신의 글쓰기는 어떠한가?
작가의 한마디
오늘 프로필 사진 찍었습니다.
금손의 보정을 거친 것이지만, 넵!!
그래도 처음 찍어 봅니다. 프로필 사진. ^---^
가족의 반응입니다.
큰 아이: 아유! 깜짝이야!
작은 아이: 엄마 아닌데?
남편: 실물이 더 나은데? ("네가 눈이 삐었다"라고 대답해 주었지만 기분은 좋았다는...ㅋ)
인천 송도의 "바리스냅" 사진작가님, 예쁜 사진 감사합니다~ ^---^